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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무덤이 이끄는 발길 2017. 4. 16 송도에서 장림으로 삶터를 옮긴지 반년이 다되어간다. 그 흔한 공원 하나 없는 동네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 아이들로 넘쳐난다. 아이들의 몸짓을 눈으로 쫓다보면 퍽이나 애잔한 마음이 들곤하지만 인간적인 세속에 침윤되지 않은 것 같아 작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아이들을 등뒤로 하고 뒷산을 오른다.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아 동네 어귀만을 몇번 맴돌다가 매번 걷기를 포기했었지만 이 봄볕만큼은 외면하기가 힘들다. 당연히 산책로나 이정표 따위는 없어 길은 자주 끊어져 왔던 길을 돌아나가야 하는 일이 잦다. 이쯤되면 길을 따라 걷는 것을 포기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파른 언덕 쪽으로 발길을 무심히 돌려본다. 한낮의 뒷산이긴해도 인적도, 인기척도 없는 곳에서 길을 .. 2017. 4. 28.
다음 날 2015. 4. 17 ‘다음 날’은 돌이킬 수 없는 무력한 날의 모습으로 도착한다. 그런 다음, ‘다음 날’은 무너져버린 바로 그 날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명령으로 거듭 도착 한다. 비극 다음 날, 우리는 아직 무사하다는 안도감이 아닌 더 큰 비극이 오고 있음을 예감해야 한다. 하여, ‘다음 날 ’ 우리는 슬픔을 어금니로 물고 다시 물어야 한다. 서둘러 폐쇄된 문으로 다가서야 한다. 더 큰 비극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다음 날’은 우리를 심문하고 심판하는 날이기도 하다. 구조 요청에 응답 하기를 실패한 다음 날은 우리가 구조 요청을 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다음 날은 구조 요청을 해야 하는 날이면서 실패했던 구조 요청에 다시 실패할 수도 있는 날이다. 다음 날은 구조 요청이 계속 되는 날이다. 구조 .. 2015. 4. 19.
오늘 각자의 윤리-절망하기(4) 2015. 4. 16 2015년, 다시 돌아온 4월16일.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잠깐 머금는 기일(忌日). 금식(禁食)하다. 음악을 듣지 않고, 소리내어 웃지 않고,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상복을 갖춰 입고 종일 벗지 않았다. 유별난 일도, 유의미한 일도 아님을 알면서 무용한 애도를 했다. 홀로 무용함의 목록을 늘려가는 일, 아니 채워가는 일에 집중해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기껏 내가 할 수 있는 애도가 '하기’(행위)가 아니라 '하지 않기’(금지)의 방법에 기대고 있음을. 하지 않음으로써 하기. 그런 것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네 시간 수업을 했고 조금 읽고 겨우 메모 했다. 글쓰기 또한 '하지 않음으로써의 하기'임을 선명하게 알게 된다. 무용함을 조건으로 하고 있는 일들의 목.. 2015.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