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루세 미키오 영화 속의 물을 뿌리는 여자들
<번개(稻妻, Lightning)>(1952)
<만국晩菊 Late Chrysanthemums>(1954)
<흐트러진 구름 乱れ雲, Scattered Clouds>(1967)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예정대로 6회 지방 선거가 진행되었고 예상처럼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 정확하게 말해 바다에 빠진 수백 명의 아이들 중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체념과 덧없음을 외투처럼 입고 그 이물감을 견디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진짜 절망은 바로 그 체념과 덧없음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모두를 무력감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저 체념과 덧없음이라는 구조와 싸워야 한다. 싸워 버텨내야 한다.
얼마 전 <영화의 전당>에서 기획전으로 열린 나루세 미키오(成瀬巳喜男, 1905∼1969)의 영화들을 보면서 섬세하고 유려하게 묘사하고 있는 도저한 비애와 삶의 무상함을 탐닉할 것이 아니라 그 감각을 버텨내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약한듯하지만 강단 있고, 한없이 여성스럽지만 지면을 딛고 있는 두 발의 결기를 느낄 수 있는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선을 숨죽이고 따라갈 때 마주하게 되는 삶의 경이로움에 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열심히 살지만 궁핍함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런 이유로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삶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비애와 쓸쓸함이 깊어질 때 ‘관조’는 체념과 덧없음으로 기울어져버린다.
<번개>(1952)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소리 없이 두 차례 내려치던 마른 번개처럼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인 바닥에 물을 뿌리고 있는 한 여자를 떠올려본다. 주인공도 아니고 조연도 아닌 한 엑스트라 배우가 바닥에 물을 뿌리는 짧은 장면은 나루세 미키오 영화 전편에 걸쳐 반복해서 나온다. 여자가 집(가게) 앞에 물을 뿌리는 이유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식히거나 흩날리는 흙먼지를 가라앉히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니 청소를 하고 남은 물을 낭비하지 않고 바닥에 뿌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물을 뿌린다고 해도 바닥은 금세 달아오르고 거리는 곧 흙먼지로 뒤덮인다. 바닥에 물을 뿌리는 여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닥에 물을 뿌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은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만으론 살아갈 수 없는 세계에서 매순간을 성실하게 산다는 것의 귀함, 나루세 미키오 영화 속의 인물들은 바닥에 물을 뿌리는 여자를 닮아 있다.
마른 바닥에 뿌려지는 물은 곧 마를 테지만 물을 뿌리는 일상을 반복할 때 삶이라는 토양은 조금씩 비옥해져 간다. 보통 사람들의 성실한 일상이 이 땅의 토양을 바꾼다. 매일매일 정성을 다한다는 것. 나루세 미키오 영화에서 유독 바닥에 물을 뿌리는 장면이 깊게 다가왔던 것은 그가 ‘물을 뿌리는 행위’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물을 뿌리는 여자가 있는 세계’를 지켜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 같은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이 세상이라는 극장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며 그들이 정성을 다 하는 일상을 지속하고 또 지켜가는 일이다. 나 또한 그런 일에 힘을 더하고 싶다. 오늘도 어김없이 보통 사람들이 뿌린 물로 충만한 바닥을 딛고 우리가 산다. 그러니 그들이 뿌린 것은 이내 증발해버릴 물이 아니라 바닥에 단단한 뿌리를 내릴 씨앗이기도 하다.
바닥에 물을 뿌리는 장면을 보기 위해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다시 봤을 때, 무더운 여름날 두 자매가 걸어가는 부박한 길 위에 물이 흥건하게 뿌려져 있는 것이 뒤늦게 보였다. 누군가가 뿌려놓은 물로 충만한 바닥을 딛고 두 자매가 꿋꿋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 그 짧은 순간, 두 다리에 괜히 힘을 들어갔다. 불끈, 힘이 솟았다.
<번개(稻妻, Lightning)>(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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