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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한 사람, 한 발짝

by 종업원 2015. 1. 1.

2015. 1. 1

 

 

이따금 잊을만하면 구-우-웅-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근래 내 생활 중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일러를 켜는 일일 것이다. 집이 추운 것은 여전하나 차가운 몸을 비비며 두꺼운 옷을 껴입고 버티던 지난 날과 달리 추운 곳을 조금이나마 데워보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월동 준비도 했고 이제 나는 혼자서도 보일러를 트는 사람이 되었다. 겨울이 추운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추위를 피해 들어온 곳까지 똑같은 추위여서는 곤란하다. 벌벌 떠는 몸에 익숙해지면 말도, 글도, 버릇도, 생활도, 관계도 벌벌 떨게 된다. 더군다나 가끔이나마 지인들이 방문하는 이곳이 한결 같은 추위에 익숙해져 있어서는 더욱 곤란하다. 집 또한 기운이라는 게 있어 자신에게 익숙한 기운을 뿜어낸다. 이곳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벌벌 떠는 기운을 뿜어내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미약한 온기라도, 작은 불씨 하나라도 애써 지키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일러를 튼다. 3시간 주기로 맞춰놓은 기름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는 이곳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는 안부 같기도 하고 지금 이러고 있어 되겠냐라고 질책 하는 애정어린 타박 같기도 하다. 보일러를 트는 시절동안 조금 더 읽고, 조금 더 써서 나누어야 할 것들 단단하게 준비하고 싶다. 

 

지난 해, 나는 '곳간'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걸음을 떼었고 그 이름 덕에 즐겁고 힘차게 조금 더 걸을 수 있었다. 한 해 삶의 동력이 되어주었고 관계의 버팀목이 되어준 곳간이 고맙고 감사하다. 곳간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만났던 이들이 잡아주었던 손길과 다가와 주었던 발길이 고맙고 감사하다. 오고 가며, 주고 받으며 돌보고 키워낸 것들로 곳간은 풍성했고 아낌없이 나눠 가졌던 애씀으로 곳간은 따뜻했다. 곳간의 풍성함과 따뜻함이 증여와 환대의 문화가 일군 텃밭에서 수확한 밀알들의 가치와 온기를 가리키는 것임을 배워 갔던 한 해이기도 했다. 2015년, 새해도 나는 '곳간'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걸음을 뗀다. 내가 잠시 빌려 쓰는 '곳간'의 이름으로 유일한 바로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발짝 다가서고 싶다. 한 사람을 만나며 알아가는 시간이 배움과 나눔의 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한 사람이 없다면 알 수도, 나눌 수도, 배울 수도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한 사람을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만난다는 것, 나는 그것이 사람을 사귀고 키우는 일이라 믿고 있다. 그런 만남 속에서만 한 발짝이라는 걸음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두려운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한 발짝이라는 무한한 걸음의 척도로 바지런히 걸어가며 배우고 싶다. '곳간'을 '곳간'일 수 있게 지켜주는 이들이 애틋하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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