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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말이라는 열매

by 종업원 2015. 1. 6.
2015. 1. 6


말에는 정말 말(馬)처럼 달려나가는 속성이 있어 말하는 이가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말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말의 가속력이 ‘제어될 수 없음’이라는 어리석음의 자질로만 귀착되는 것도 아니다. 말을 하다보면 내가 한 말 스스로가 추진력을 가지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끌어내거나 길어올리는 순간도 종종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은 그 순간 조금 더 성실히 말 할 때만 제 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좋은 청취자, 대화자와 함께 할 때 말의 생산력은 더 좋은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말의 추진력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생산력이란 말이 가지고 있는 가치 중에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호기 있게 말의 등에 올라타는 이들은 로데오 경기처럼 내남없이 10초도 안 되어 바닥에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말하는 이는 말이 말하는 자신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그러니 말의 추진력은 말의 가속력 속에서가 아니라 외려 말을 멈춰세우는 힘을 기르고 단련하는 것 속에서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달리는 말을 달래고 제어하여 멈춰세우는 힘이란 고백을 하지 않는 태도를 버릇과 습관으로 내려앉히는 일과 다르지 않다. 

고백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향해 짱돌을 던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게 거두절미 하고 던진 고백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을 리 없다. 그렇게 전해도 되는가, 그렇게 전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런 방식이 아니면 전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고백은 감당하려고 하지 않는다. 고백은 말의 주고 받음 속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축복의 순간, 말의 주고 받음 그 자체의 발열을 통해 켜지는 희미한 등불과는 무관하다. 무관할 뿐만 아니라 말이 우리에게 선물로 도착하는 그 드문 순간까지 파괴해버리기도 한다.

차마 하지 않고 묵혀두었던 말, 참고 참았던 말, 곁이라는 세계가 있었기에 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던 말이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이 아니라 선물 같은 말로 돌아오는 시간. 내 발 아래에 떨어진 열매와 같은 말을 어루만지며 말하고 싶었지만 말 할 수 없었던 시간을 돌이켜본다. 말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게 지지해준 이 토양에, 무관심의 관심으로 촘촘하게 직조된 이 관계에, 작고 연약하지만 생생한 이 텃밭에, 허리 숙여 절한다. 말이 성숙할 수 있는 복된 시간, 마모되거나 쓸려내려가지 않게 머금어 성실하게 말을 키워준 토양의 정직함, 그 무엇도 아닌 말이 모두가 나누어가질 수 있는 열매로 영글어가는 시간, 바로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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