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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곳간

대피소에서, 곁의 사람에게-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 2005)

by 종업원 2015. 1. 28.

 2014. 11. 29

 

 

 

 

 

 

 

 

 

1. 

  

편지의 알짬은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내밀한 내용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 건네고 싶다는 마음의 촉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 수신자라는 단 한 사람이야말로 편지의 알짬인지도 모릅니다. 편지에 ‘무엇을 쓸 것인가’나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는 부차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보다 편지를 쓴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러니 세상의 모든 편지엔 누군가에게 가닿고 싶다은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담는다니요. 그것이 가능할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편지를 쓸 때 멋지고 화려한 문장보다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문장을 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마음을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마음은 마음속에서만 마음일테니 마음 밖에서 그것은 속절없습니다. 편지는 마음을 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그런 이유로 편지는 쓸 수 없는 것을 쓰려는 시도입니다.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으려는 애씀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도리 없는 글쓰기입니다.

 

 

이 도리 없는 문장, 마음을 담으려는 시도와 애씀으로 점철되어 있는 문장을 우리는 읽을 수 있는 것일까요? 편지를 읽는다는 것이 문장의 연쇄로 조형한 내용이 아니라 번역된 문장 속에 쟁여져 있는 마음이라면 그것을 읽는 것 또한 가능할 리 없습니다. 단 한 명의 수신자조차 온전히 읽을 수 없는 것일진대 혹여나 누군가의 편지를 엿본다고 한들 읽을 수 있는 것은 그저 문장일 뿐입니다. 편지는 단 한 명의 수신자에만 읽기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편지를 쓴다는 것은 마법처럼 깃든 마음을 풀어보려는 시도이고 편지를 읽는다는 것은 마법과 같은 마음의 암호를 푸는 시도입니다.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다시 묻겠습니다. 편지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에 도착하는 것일까요? 마법에 걸린 이들의 불가능한 글쓰기와 읽기. 이 복된 불가능성 아래에서 마음이 지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편지란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는 것이라는 이 불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자명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불가능함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써야 하지만 아직 쓰지 못한 편지가 있으며 써두고 보내지 못한 편지 또한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직 쓰지 못한 편지의 발신자라는 이 자명한 사실의 뒷면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이 가닿지 못한 편지의 수신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편지는 아직 쓰지 못했어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도, 아직 읽어내지 못했다고 해도 ‘이미’ 깃든 마음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마음을 건네고 싶다는 바람이 마음을 지키고 마음을 키우는 동력인 것입니다. 편지를 써내려가는 지면(紙面)과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지면이야말로 마음의 텃밭(地面)이지 않을까요. 그런 이유로 한 통의 편지 속에서 우리는 마음의 생태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세상의 모든 편지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글입니다. 오직 한 사람을 경유해서만 개창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단 하나의 문장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징검돌을 건너듯 하나의 문장을 쓰고, 하나의 문장을 딛고 당신의 마음으로 향합니다. 문장이라는 발자국으로 걷는 길, 세상의 모든 편지는 마음이 도착하는 오솔길이겠지요.

 

 

편지를 쓴다는 것은 쓸 수 없는 것을 쓰려는 시도이자 애씀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도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가닿을 수 없다는 바로 그 불가능성을 조건으로, 그 불가능성을 발판으로 도약하는 행위, 이 복된 불가능성을 바장이다가 저는 편지가 기도와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전한다는 것, 마음에 가닿고 싶다는 것, 돌이킬 수 없이 깃든 마음을 풀어내려는 노력 속에 어떤 ‘염원’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음이라는 텃밭은 결국 어떤 염원을 키우는 곳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편지는 염원을 키우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편지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하고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씁니다. 이 불가능을 지복이라 감각할 수 있는 것은 수신자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편지의 수신자를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지의 수신자가 있기에 버텨낼 수 있는 삶이 있습니다. 당신께 가닿을 수 있으리라는 염원을 담아, 당신께 가닿고 싶다는 염원의 힘으로 길어올리는 내가 알지 못했던 목소리를 내는 순간. 편지는 지금 이곳에서 부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편지를 쓴다는 것, 기도를 한다는 것, 노래를 부른다는 것, 그것은 마음의 텃밭을 가꾸는 쟁기질이며, 신께 올리는 제사이며, 풍요를 기원하는 바람인 것입니다.

 

 

 

ⓒ<문학의 곳간> 13회_송도 암남동

 

 

 

 <문학의 곳간> 13회(2014. 11. 29) 별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