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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입구가 좁은 깡통, 된장국, 호마이카상

by 종업원 2015. 3. 17.

2015. 3. 17



봄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곳이 아닐까, 이곳은. 고개를 숙이고 열심이 무언가를 적고 있는 사람과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해 연신 두리번 거리는 사람과 학교에 있을 수도 없고 학원으로 갈 수도 없어 이곳으로 온 애띤 사람들을 스쳐지나며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봄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곳일 수도 있겠구나, 이곳 시립도서관은. 봄볕 아래에 내어 말린 성긴 의욕은 투명해져가고 나는 아무런 조바심 없이 글을 읽고 메모를 한다. 서고를 뒤지다 유물처럼 감춰져 있는 친구들의 글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나 같이 단호한 표정으로 단단한 문장을 쓰고 있지만 천천히 읽어가니 말랑한 감정의 과육이 흥건하다. 그 마음들을 애써 감추고 단호해져야만 했던 스무살, 단단해지고 싶었던 그 시절이 괜히 서글프다. 


여섯살 무렵, 나는 연산동 <동신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고 내 어머니는 그때도 파출부 일을 하고 계셨다. 다대포로 체험 학습 가는 날 아침, 나는 아침이 되어서야 갯벌에서 쓸 깡통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했고 내 어머니는 급히 작은 깡통 하나를 구해오셨다. 나는 그 깡통이 지금은 단종된 '쌕쌕' 캔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 나는 그 누구보다 큰 게를 잡았고 저금통에 오백원 짜리를 넣을 때의 뿌듯한 마음으로 그 '대'게를 쌕쌕 깡통에 넣었지만 돌연 등장한 수수께끼가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내가 잡은 게를 나는 내가 가진 깡통에 넣을 수 없었다. 쌕쌕 깡통의 입구는 좁았고 내가 잡은 게는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사소한 표정 하나 기억나지 않는 그 선생님은 조금 망설인 후 말없이 내 게를 입구가 커다란 다른 아이의 깡통에 넣고 돌아서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꽤나 통통한 볼을 가지고 있던 그 아이의 커다란 오뚜기 케찹 깡통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던 기억.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선 발견할 수 없는 오뚜기 케찹 깡통. 우량아가 입맛을 다시며 엄지 손가락을 들고 짓던 미소가 새겨진 오뚜기 케찹 깡통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갯벌을 뛰어다니며 그 누구보다 날쌔게 잡았던 게들은 덩치가 작아서인지 다음 날 다 죽어버렸고 그걸 그냥 버렸는지 된장국에 넣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나는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미리 말하지 못하고 당일 아침에서야 말하곤 했는데, '아침마다 돈!'이라는 타박이 두려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어머니의 기분(상황)에 따라 매서운 손지검을 당하는 날도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나서서 두 탕에서 세 탕까지 허드렛 일을 해야만 했던 내 어머니에게 준비물이 필요하다는 말을 나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돈이 드는 일이나 품이 드는 일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거 같다. 내 유년 시절의 등교길이 어쩌면 그런 이유로 어둡고 무거웠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내 어머니의 아침을 생각해본다. 밤늦게까지 일하다 돌아와 몇 시간 자지 못한 채 다시 일어나 맞이해야 했을 그 아침을. '아침마다 돈!'이라는 타박에 서린 날선 기운이,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난한 살림을 짐짓 모른 척, 다만 하루하루를 정성을 다해 성실하게 맞이해온 증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새삼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일 아침 나를 향해 욕이 섞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혼내주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젯밤, 열 시.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처음으로 된장국을 끓였다. 멸치로 육수를 내고 모시조개를 소금물에 재워놓고 애호박 반 개와 땡초 다섯 개, 양파 반 개와 버섯을 썰어넣고 마늘을 찧은 뒤 집에서 받아온 된장 한 스푼을 넣고 끓였다. 된장국이 끓는동안 계란 두 개를 풀어 후라이를 하고 김 두 장을 구워 저녁 식탁을 완성했다. 뚝배기가 너무 작아 냄비에 옮겨담으면서 된장찌게는 된장국이 되었지만, 무척 맛있었다. 선물로 받은 작은 상을 펼쳐 푸짐한 저녁을 먹기 직전, 상의 다리가 갑자기 접혀지는 바람에 된장국을 모두 쏟고 말았다. 흡사 누군가가 밥상을 엎어버린 것처럼 내팽개쳐진 된장국의 참상. 내 첫번째 된장국은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여섯 시가 넘었는데도 볕이 남아 있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께 전화를 해 된장국 이야기를 했다. 밥상을 차리는 중이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도서관으로 들어와 읽던 책을 덮고 시집을 펼쳤다. 김태정의 첫번째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의 서시를 읽으며 지금 떠오르는 기억들을 적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용할 수도 있는 이 기록이 봄이 가장 늦게 도착할 것만 같은 이곳에 봄의 도착을 재촉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뜬금없는 마음을 품게 했기 때문이다.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네가 낡아서가 아니야

싫증 나서는 더더욱 아니야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해온

네가 이젠 무서워졌다

무서워졌다 나의 무표정까지도 거뜬히 

읽어낼 줄 아는 네가,

반질반질 닳아버린 귀퉁이만큼 노련해진 네가.

너를 펼쳐놓은 순간부터

시를 쓸지 책을 읽을지

아니면 밥을 차려 먹을지

내 행동을 점칠 줄 아는 네가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네 앞에선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이십년 전이나 이십년 후나

변함없이 궁핍한 끼니를 네가 보여야 한다는 것이 

불편해졌다

책상도 되고 밥상도 되는 네 앞에서

시도 되지 못하고 밥도 되지 못하는

나의 현재가 문득 초라해졌다

시가 밥을 속이는지

밥이 시를 속이는지

죽도 밥도 아닌 세월이 문득 쓸쓸해졌다

이 초라함이,

이 쓸쓸함이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발바닥이 되어버린 자존심

아무래도 이 시시한 자존심 때문에 

너를 버려야 할까보다

그래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김태정, <호마이카상> 전문, 『물푸레나무가 있는 저녁』, 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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