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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내밀함의 풍경

by 종업원 2015. 3. 23.

2015. 3. 23



아침 7시, 드릴 소리에 놀라 잠 깨다. 무언가를 뚫고 부수는 소리가 집 전체를 흔드는 것만 같다. 이 소음을 '리모델링'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니 몇 달 꾹 참고 넘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난 데 없이 '멱살을 잡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음이 아니다. 무언가를 짓고 부수는 방식의 탐욕스러움 속에 사람살이의 가치과 존중 또한 무너지고 뚫리는 중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간 옮겨다녔던 집들이 예외 없이 공사의 참사를 겪었음을 알게 된다. 쇠락한 지역을 전전하며 나름 알뜰하게 생활의 터전을 잡아갔으나 그 알뜰함이라는 것이 건물주와 자본가들에겐 누가 낚아채기 전에 서둘러 독식해야 하는 눈 먼 보따리처럼 보였나보다. 내가 살았던 집들이 죄다 재개발과 리모델링의 대상이 되었다는 홀로살이의 이력이 도시에서의 내 삶의 자리, 위치, 계급, 상태를 선명하게 비추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겠다. 말하자면 영문도 모른 체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혀 살아왔던 셈이다.  


집을 때려 부수는 곳에서 반복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는 상실감이란 긴 시간 가꾸어온 타인의 생활 터가 여지 없이 파괴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이 생활의 터를 부수는 일을 조건으로, 남김없이 쓸어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할 때 그 드릴이 뚫고 있는 것은, 포크레인이 내려치고 있는 것은 낡고 쇠락한 건물의 외형이 아니라 누군가가 정성을 다해 쌓았던 생활의 두께일 것이다.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멱살 잡이 소음처럼 세입자의 위치로 흘러드는 처연한 감정에 젖어 있을 수만 없어 애써 무심히 창을 활짝 연 뒤 음악을 틀고 된장을 끓였다. 나라는 한 개인의 생활이 훼손되는 것에 조금은 무심해지려 애를 쓰니 되려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영문 모를 멱살잡이 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을 '사람'말이다. 지금, 오늘, 이 순간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이 어디 나 한 사람의 생활 뿐이겠는가.  


복층으로 되어 있는 이 집을 새 건물주는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개조한 뒤 원룸이라는 간판을 내 걸고 세입자를 받을 요량인 듯하다. 이 리모델링 공사로 낡고 오래된 건물 외관이 조금은 세련되어질 수도 있겠다. 내 어머니조차 낡은 집이라며 혀를 내두르셨지만 그럼에도 집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취가 전해지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을 두고 '운치'라고 말해도 좋을지, 품위나 품격이라 한껏 과장해도 좋을지 자신 할 수 없지만 낡고 누추한 외관과 달리 집 안에 들어서면 전해지는 기품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쌓아온 생활의 이력이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일 테다. 이 집에서 살았던 세입자들과 세간은 떠나고 없지만 그들이 쓸고 닦았을 생활의 동선, 보이지 않는 그 흔적만큼은 이사할 수도, 리모델링 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리라. 집이란 옮길 수도, 거덜낼 수 없는 생활의 더께가 쌓이는 장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려 있는 곳간처럼 마음껏 나누고 채워 넣음으로써 내내 풍성한. 그러니 그 더께가 쌓여 있는 이 집의 오래되고 낡은 흔적을 일러 '시간의 주름'이라는 추상적인 이름보단 '생활의 결'이라 부르는 것이 더 마땅하지 않겠는가. 


시간을 다투며 무너지고 부서지는 이 집에서 멱살을 잡혀도 흐트러짐이 없는 생활의 기품이 자아내는 고운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밖에서는 결코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이 풍경은 오직 안에 들어가서 생활을 하고 있을 때라야만 집 스스로가 열어서 보여주는 내밀한 풍경일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오롯할 사람살이의 내밀한 풍경이라면 언젠가는 파괴되고말 것이라는 이 집의 운명에 화내거나 증오하기보다 그간 이곳에서 살았던 이들이 쌓아온 생활의 이력을, 다름 아닌 생활의 곳간을 열고 남김 없이 나눌 일이다. 정성을 다해 성실히 생활을 하는 것이 나 한 사람의 일상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살이의 가치를 지키고 존중하는 일의 작은 일환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집의 고운 풍경을 아낌 없이 누리며 지켜가는 일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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