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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이별례(3)-독신(獨身)하다

by '작은숲' 2015. 6. 7.

2015. 6. 7




백현진(+방준석 +김오키)의 공연을 보고 돌아와 그의 솔로 앨범 <반성의 시간>(2008)을 찾아 듣는다. 3시간 가까이 이어졌던 공연은 적막하고 기괴하고 담담하며 절절했다. 위악과 절망을 섞고 쌓아도 오랜 시간동안 단련된 쓸쓸함의 바탕 위라면 쓸데 없이 번지거나 언거번거 하지 않는다. 백현진의 공연은 쓸쓸함과 처연함의 세계에 버티고 서서 의지와 의욕을 길어올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 ‘흥’ 속에서 나는 ‘단 한번만 허락되는 경험’이라는 구절을 새겼다. 예술은, 음악은, 사람은, 생활은, 삶은 ‘단 한번만 허락되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어떠한 반주도 없이 홀로 담담하게 노래를 부르던 모습, 말과 노래가 섞여 넘나들던 오프닝을 되새기며 알게 된다. 그건 어떤 메시지를 전하거나 표현하기 위한 형식(도구)이 아님을. 적막해서 기괴했고 절절함만이 오롯했던 그 노래에서 나는 그의 단단해진 기억과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은 그 기억 위에 쌓아올린 단단한 현재를 들었다. 무대 위에서 제 목소리만으로 선다는 것, 독신(獨身)한다는 것. 나는 그것이 선물처럼 도착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별은 마지막에 도착하는 선물이다. 죽음은 남은 자들에게 남기는 사자(死者)의 유일한 유산이다. 운명은 만남의 언어가 아니라 이별의 언어다. 이별은 엉키고 번져 실체를 알아보기 힘든 사귐의 시간을 내려치는 죽비처럼 계류되어 있던 상념들을 한꺼번에 깨단하게 한다. 그 힘으로 비로소 독신(獨身)하게 된다. 


‘단 한번만 허락되는 경험’, 이별은 독신을 선물한다. ‘연인들의 공동체’라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그 환상이 보이지 않는 불평등과 인지 하지 못한 위계와 암묵적으로 돌려 쓰는 왜곡된 권력을 밑절미로 번진다는 것을 환하게 알게 된다. 부재(不在)가 알려주는 진실과 끝이라는 영도(零度)의 자리가 여는 문은 독신 하기를 통해서만 마주할 수 있는 선물이다. 독신은 ‘애인’의 유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만 허락되는 경험’을 삶의 시간으로 수락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 유무에 달려 있다. 하여, 나는 도리없이 독신 하다. 가끔 노래 하다. 뒤늦게 말 하다. 무용하게 글 쓰다. 드물고 귀하게 만나다. 그렇게 담담(단단)해져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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