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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생활-글-쓰기 모임> 1회

by '작은숲' 2015. 6. 22.

2015. 6. 23


 

design by yks

 

 

벼랑 끝의 생명을 살리는 일

 

 

오래된 <보수아파트>의 낡고 벌어진 틈 사이에 길고양이 가족이 잠들어 있다. 다가가도 깨지 않고 이미 깨어 있는 고양조차 도망가지 않는 것은 미숙하고 둔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동네 사람들이 지금 잠들어 있는 고양이 가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세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하부에 저런 알 수 없는 틈이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도시 하층민들과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 안에도 어쩌면 저런 틈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집이 없는 모든 것들이 잠깐이라도 쉴 수 있었던 곳은 ‘틈’이지 않았던가. 납득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 속에도 ‘살림’이 꾸려진다. 납득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는 살아가고 그 살림이 또 누군가를 살린다. 


어느 날 저 고양이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디론가 떠난 게 아니라 생명이 다한 것일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가난한 동네의 벌어진 상처와 같은 틈에서 살아가고 있는 고양이 가족을 먹이고 재울 수 있는 곳이 이 도시에 또 어디 있을까.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보수아파트>가 아니라면, 벼랑 끝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생명의 끈을 겨우 물고 있는 이 작고 연약한 것들을 먹이고 키울 수 있는 곳을 나는 떠올릴 수 없다. ‘살림’이란 매일 매일 쉼없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볼 수만은 없어, 보았기 때문에 매만지는 일이 살림이다. ‘어루만짐’과 ‘쓰다듬’은 연인이 아닌 살림에 더 익숙한 언어다. 벼랑 끝의 생명들과 함께 사는 일, 그것이 ‘살림’이다. 잠깐 들여다보지 않으면, 매만지기를 거르면 금새 사라지고 마는 벼랑 끝의 장소. ‘살림’은 그 이치의 수락 속에서만 지켜질 수 있다. 


‘생활-글-쓰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틈’ 속에 잠들어 있는 저 고양이 가족을 들여다보고 매만지는 일과 다르지 않다. 차마 다가가 어루만지지 못해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것, 그런 '망설임' 또한 살림의 일이다. 쓰레기로 덮여 있는 낡고 해어진 곳을 들추며 작고 연약한 것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연신 확인하는 '겁쟁이들의 몸짓' 또한 살림의 일이다. 생활-글-쓰기는 망설임과 겁쟁이들의 몸짓 틈에서 고양이 가족을 키우는 일이다. 망설임일지라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겁쟁이의 몸짓일지라도 아주 작은 행위 하나가 벼랑 끝의 생명을 지킨다. 오늘 내가 쓰는 작고 미약한 문장 하나가 벼랑 끝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 그 희망이 우리가 오늘도 ‘생활-글-쓰기’를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생활-글-쓰기 모임> 1회 여는 글_광복동 <잠> 게스트하우스_201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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