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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시작을 시작하기

by 종업원 2015. 6. 28.

2015. 6. 10

 

  

 

조금은 어색하게 이어져 있는 모임 이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글쓰기 모임’이라고 해도될 걸 굳이 ‘생활글’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생활과 글을, 글과 쓰기를 떼어놓고 ‘-’로 잇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그 이유를 몰라도 문제될 건 없습니다만 이런 기회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조금 이어가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생활글’이란 어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름입니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노동자들이 썼던 숱한 글들, 그리고 지금도 몸의 정직함으로 삶을 일구고 있는 곳곳에서 희미하게나마 이어지고 있는 글들, 조금은 미숙하고 조금은 거친 그 글들, 형식도 내용도 온전하지 못한 그 글들을 ‘생활글’이라 불러오고 습니다. ‘생활글’은 야근 마치고 새벽에 돌아와서도 빠트리지 않고 꼭 썼던, 써야만 했던 그 글들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그 글들을 노동자들은 나눠 읽으며 서로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문집으로 묶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 무거운 의미를 이 자리에서 다시 새길 필요는 없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생활글’에 담긴 역사를, 아니 그저 희미하고 작은 얼룩(굴)을 이곳에서 잠깐 불러보았습니다. [기회가 될 때 7-80년대 ‘생활글’ 몇 편을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모임으로 돌아옵시다. <생활-글-쓰기 모임>. 마치 밧줄로 동여매듯 ‘생활’과 ‘글’을 묶고, 다리를 놓듯 ‘생활’과 ‘쓰기’를 ‘글’이 잇고 있다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활-글-쓰기를 이끌어주겠지요. 그래서 모임엔 별다른 표기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를 품고, 또 애써 쥐고 생활과 글을 잇고, 생활과 쓰기를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생활-글-쓰기 모임>은 보이지 않는 호흡으로 천천히 한 자 한 자 끊어 불러야 하겠습니다. 생활이라는 것이, 또 글쓰기라는 것이, 아울러 작은 모임이라는 것이 그런 보이지 않는 호흡으로, 천천히 한 자 한 자 소중하게 매만지는 손길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생활-글-쓰기 모임>이란 평범한 이름은 생활과 글이 분리되어 있고, 쓰기와 생활이 분리되어 있는 지금의 환경을 되비추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어가기(지속) 위해, 어딘가에 가닿기(접속) 위해 글을 씁니다. 글쓰기란 결국 ‘잇기’입니다. 잠깐 동안이라도 ‘생활-글-쓰기’를 품게 될 이 모임이 짚을 운지(運指)와 잡게 될 파지(把持)가 일구어갈 장소를 만나게 되겠지요. 그 장소에서 생활을 텃밭 삼아 각자의 자리에서 가꾸고 보살핀 생활의 이력을 나누고 싶습니다. 생활을 새긴 활자라는 ‘곡물’과 어휘라는 ‘종자’를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생활-글-쓰기’라는 평범한 이름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일, 낮은 곳을 찾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일을 모여 함께 한다는 것. 저는 우리가 함께 가닿게 될 그 낮은 곳을 모두의 도약대로 삼는 일이라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고 한다고 해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 생활-글-쓰기가 꼭 그런 일입니다. 왜 안 해도 될까요, 어째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까요. 쓸모없는 ‘글쓰기’를 ‘생활’이라는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생활-글-쓰기 모임’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꽤나 분명해보입니다. ‘무용함의 쓸모’, 그것은 ‘청소’와 비슷합니다. 안 해도 되고 해도 표가 안 나는 것 중 청소만한 것도 없습니다(우치다 타츠루).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뒤로 미루게 되죠.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매일 청소(글쓰기)를 하면 알게 되는 게 있습니다. 무용함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쓸모 말입니다. 각자의 마당을 쓸(쓰)고 닦으면서 자연스레 다른 이의 마당을 방문하는 일. 걸레(지우개)를 들고, 빗자루(펜)를 들고 방문한 7명의 사람. 글쓰기는 청소처럼 무언가를 완성하거나 마치는 일이 아닙니다. 글쓰기(청소)는 시작의 운동입니다. 아침에 하는 청소가 하루의 시작이고 저녁에 하는 청소가 내일의 시작을 예비하는 일인 것처럼 생활-글-쓰기는 오늘 다시 시도되는 시작의 걸음입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맞이하는 아침은 모두가 나누어 갖는 공평한 시작이겠지요. 글쓰기는 두 번째 시작입니다. 생활을 도약대로 삼아 시도 하는 두 번째 시작. 그 두 번째 시작을 함께, 그리도 다시 나누기 위해 이 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생활-글을 쓰고 문밖을 나서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있는 사람, 오늘 당신의 첫 번째 독자입니다. 그러니 생활이라는 낮은 자리에서 쓰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 다시 시작하세요. 제가 첫 번째 독자가 되겠습니다.

 

 

<생활-글-쓰기 모임> 예비 만남 / 중앙동 <백년어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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