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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생활-글-쓰기 모임> 3회

by 종업원 2015. 7. 22.

201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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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한

 

 

 

그저 ‘외모’에 대한 인상이나 자기 생각으로 침윤된 ‘고백’에 기댄 대화 속에서라면 “당신은 조금 이상하군요”라는 말이 무척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질 것이 분명하다. 이 말은 비평은 커녕 손쉽게 비난으로 호도되어 정말인지 ‘이상한 사람’쯤으로 치부될 것임을 겪지 않아도 훤히 알 듯하다. 그런데 ‘당신은 조금 이상하군요’를 무례한 말이 아닌 무릅쓴 말이라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무례함을 무릅쓰면서까지 ‘당신의 이상함’을 알리고 있다면 관심을 ‘이상하다’는 규정이 아니라 이상함이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옮겨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의도야 어떻든 간에 타인을 향해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 무례함을 범하는 일임을 모르지 않지만 우리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이상함’에 있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이상함이 없었다면 지금의 만남 또한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함’은 만남의 조건이기도 하다. 

 

이상함을 만남의 조건이라고 하니 얼핏 그것이 ‘취향’과 비슷한 것이라 오인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취향’은 ‘문화적 아비투스’의 산물인 것에 반해 ‘이상함’이란 사회문화적인 집적물인 것은 아니다. 이상함이란 옷처럼 자연스레 몸과의 구분을 없애고 감쪽같이 내려 앉은 것이 아니라 어색하게 걸쳐 있거나 몸과 잘 맞지 않아 버성기며 돌출해 있기 마련이다. 이상함이란 늘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가끔 드러나며 전달될 뿐이다. 어떤 ‘만남’은 그렇게 가끔 도착하는 이상함을 매개로 성립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화를 서로의 이상함에 대해 말을 거는 일이라 바꿔 말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서로의 이상함을 알아보고 그것에 말을 거는 일은 이상함을 재단하여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상함을 수락하면서도 궁금해 하는 일이다. 달리 말한다면 그것은 이상함을 지키거나 돌보는 일이기도 하며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상하다’는 말 또한 돌봄과 비평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상한 것’을 꺼려하고 불안해 하지만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이상한 일’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심지어 각자의 일상과 생활을 잘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이상함이야말로 일상과 생활을 추동하는 동력이자 강력한 원칙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더 이상해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영 이상하게 되어버리는 것은 피해야 하는데, 그것은 이상함을 이상한 것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상함 그 자체에 과도하게 집중하거나 이상함을 일상적인 것으로 방치 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 이상해져버린 상태 또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연인들의 고착된 사랑, 세속의 종교, 이데올로기적인 숱한 믿음들. 문제는 이상한가, 이상하지 않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함을 감지하고 그것과의 거리(긴장)를 매번 조절하며 ‘들고-나는’ 일관성에 있다고 해도 좋다. 가령, ‘프로’란 이상함에 함몰되어 버린 이라면 ‘아마추어’는 이상함에 익숙해지지 않고 쉼없이 안과 밖을 들락날락 하는 이라 바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말하자면 글을 쓰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다. 더군다나 생활-글은 정말로 이상한 글이다. 생활을 생소하게 바라보며 ‘들고-남’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밥먹고 똥싸는 일을 메타화할 수 있을 때라야만 그것에 관해 쓸 수 있다. 거꾸로 말해 밥먹고 똥싸는 일 속에 깃들어 있는 이상함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글을 쓸 수 없다. ‘들고-남’의 운동 속에서 잠깐 발견되는 이상함을 흘려버리지 않고 잡아 채는 일, 끈덕지게 기록 하는 일, 그렇게 지키고 나누는 일에 ‘생활-글-쓰기’의 요체가 있다. 생활-글-쓰기를 지속한다는 것은 들고-남의 운동을 지속하며 이상함이라는 감각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일상과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이상함의 에너지를 잘 지키고 돌보는 일, 그러한 연습과 연마를 통해 ‘이상함’은 한 순간의 기분이나 변덕이 아닌 삶의 영토를 단단하게 다지는 힘이 될 수 있다. 생활-글-쓰기는 일상 속에 잠재해 있는 이상함의 힘을 발견하고 길어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아, 우리는 줄곳 이상한 것에 빠지고 이상한 것에 이끌려 왔지 않은가. 내가 사랑했던 연인들의 공통점은 죄다 이상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상함에 고착되었으며 오직 이상한 것들만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이상형이란 이상함의 변주였던 것!]. 헤어짐의 이유는 그/녀의 이상함 때문이었지만 만남의 이유 또한 바로 그 이상함 때문이지 않았는가. 그러니 결별과 실패의 원인은 ‘이상함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함과의 거리, 이상함과의 긴장, 이상함과의 노동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데 있다고 해야 옳다. 이상한 것엔 아무런 죄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도 알지 못한 사이에 영 이상해져버린 나와 너의 오만과 게으름에 있다. 그러니 “당신은 조금 이상하군요”라는 무릅쓴 비평의 말, 개입의 말 속에 오만과 게으름으로부터 우리를 이끌어낼 구원의 계기가 놓여 있다. 영 이상해지지 않고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매순간 느낄 수 있을 때, 오늘의 사랑을 지킬 수 있다. 연인이든, 국가든, 종교든, 생활이든 들고-남의 운동을 지속함으로써 조금 이상하며, 계속 이상하다는 긴장을 유지하는 일. ‘생활-글-쓰기’가 하는 일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생활-글-쓰기 모임> 3회_여는 글_광복동 <잠> 게스트 하우스 1층 '딱 봐도 카페'_201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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