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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용

선생!(1)

by 종업원 2016. 1. 4.

2015. 11. 6 / 2016. 1. 4




“소설을 쓰는 것만으론 지루하지. 어떤 작가, 시인, 사상가를 정해 놓고 그 사람의 책, 그리고 그 사람에 관한 연구서를 3년 동안 계속해서 읽도록. 자네는 소설가가 될 것이니 전문 연구자가 될 필요는 없네. 그러니까 4년째엔 새로운 테마를 향해 나가도록 하게.”


저는 그 말씀대로 계속해왔습니다. 올 4월부터 열다섯 번째 3년째에 들어갑니다.

-오에 겐자부로, 아마추어 지식인, 『회복하는 인간(서은혜 옮김, 고즈윈, 2008, 77-78쪽)



시코쿠 에히메현에서 일곱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난 오에 겐자부로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이와나미 신서로 나온 와타나베 가즈오의 책을 읽고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동경대에 진학 하여 와타나베 가즈오를 만났고 이후 소설가가 되었다. 소설가가 되었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의 오에는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어지러운 상태였다. 학교에 한번 다녀가라는 와나타베 선생의 엽서를 받고 그를 찾아간 오에는 선생으로부터 들은 말을 평생 잊지 않고 실천하며 작가 생활을 해오고 있다. 오에는 그때 선생이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를 여러 글에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건 반복이라기보다 선생의 말씀을 50년 가까이 실천하고 있는 한 노 작가의 존경을 담은 보고에 가까운 것이다. 선생의 조언을 평생의 지침으로 삼아 실천해온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 그 배움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보고의 연대기 속에서 누군가에게 선생이고자 하지 않았지만 오에는 어느새 누군가에겐 돌이킬 수 없는 선생이 되었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선생과의 만남. 끝(없이)까지 배울 수 있는 사람. 그 배움의 이력이 또 다른 배움으로 번져가는 일, 그것을 알리며(보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 ‘선생(과의 만남)’은 내 삶의 테마이자 동시에 숙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음을 수락하지 못하고 돌이켜 무언가를 바로 잡으려 했기 때문일까, 돌이켜 제 자리에 놓아두려 애썼기 때문일까, 그렇게 ‘나’라는 ‘꼴’이 번성하는 것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선생 앞에서 ‘꼴갑’을 떨고 있었기에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도, 보고할만한 것도 없는 궁핍한 백면서생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선생이 없다는 것은 내 ‘꼴’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틀’이 없다는 것을 가리키며 그런 이유로 지금과는 다른 꼴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기대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벤야민식으로 말해본다면(<이야기꾼>) 조언을 구할 수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누군가의 지혜를 귀담아 듣는 능력을 배양할 길이 없음을 뜻한다. 내가 읽고 쓰는 것들, 듣고 말하는 것들의 ‘꼴’이 누군가에게 ‘틀’은 커녕 꼴갑(자아의 번성) 떨고 있는 짓을 비켜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끝내 나를 누르지(죽이지) 못하고 어딘가에 있었을 선생(들)을 홀로 떠올려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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