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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용

의도 없이, 욕심 없이

by 종업원 2016. 2. 24.

2016. 2. 24

 

 

 

"듣고 있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원수를 사랑하시오.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며 헐뜯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오.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는 다른편 뺨마저 내밀고,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마시오.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한테서는 되찾으려 하지 마시오. 사람들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똑같이 사람들에게 해 주시오. 사랑해 주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까? 죄인도 사랑해 주는 사람은 사랑합니다. 잘해주는 사람한테만 잘해준다면 무슨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까? 죄인도 그만큼은 합니다.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준다면 무슨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까? 죄인도 고스란히 되받을 성싶으면 자기네끼리 꾸어줍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잘해주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시오."

「루가 복음서」 6. 27~35, 『신약성서』, 분도출판사, 1998, 199~200쪽.

 

 

얼마 전부터『신약성서』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짜투리 시간과 읽던 책의 챕터가 끝날 때 한번씩 펼쳐서 반 시간정도 읽는 수준이다. 종교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입회하는 방식을 '성당'이 아닌 '성경'으로 삼고자 한 것이 그런대로 괜찮은 선택이었던듯하다. 개신교와 다르다고는 하나 성당 또한 강성 매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의 접근이 낯선 세계로 진입하기 직전의 어떤 조급증으로부터 거리는 두는 데 생각지 못한 효과 또한 있는 듯하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들어봤던 구절의 본래 모습을 확인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그 중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처음 만나는 것처럼 찬찬히 더듬어보고 들여다보는 순간도 있다. 오늘 버스에서 읽은 구절 또한 그렇다.

 

열두 제자들과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기적'을 행하는 예수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저 말은 실로 행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강령처럼 기계적으로 주억거릴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에 박힌 훈계인 것도 아니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행하기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자신의 '말의 힘'을 믿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야말로 그 어려운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믿음'은 내 안에 있는 내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내게 도착하는 '건너온 힘', '건네 받는 힘'인지도 모른다. '사랑해 주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까? 죄인도 사랑해 주는 사람은 사랑합니다.' 이 단순하고 명징한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힘. 그건 의도 없이, 욕심 없이 할 때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아무런 의도 없이, 욕심 없이 사랑하는 일이 정녕 이 생에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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