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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용

건네 받는 것의 힘

by 종업원 2016. 3. 6.

2016. 3. 5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무릎꿇고 간청했다. “선생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측은히 여겨 손을 펴서 만져 주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 그러자 곧 나병이 물러가고 깨끗해졌다.

—「마르코 복음서」 1:40-42.

 

 

당시의 나병환자는 지금의 한센병 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피부병 환자까지를 두루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배제되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사람들이 다가오면 “불결, 불결”하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정양모 역주, 『마르코 복음서』, 분도출판사, 2000) . 김규항은 『예수전』(돌베개, 2009)에서 ‘측은히 여기시고’를 중심에 두고 예수의 면모와 그가 전하고 있는 복음의 결을 살피고 있다. ‘측은히 여기시고’는 그리스어 ‘스플랑크니조마이’를 옮긴 것인데 ‘창자, 내장’을 뜻하는 ‘스플랑크논’의 동사형이며 한국어의 ‘애끓다’는 말과 정확하게 조응한다는 것이다. 그의 문장을 옮겨둔다. “그런데 예수는 난생처음 만난 나병환자에게 애끓는다. 바로 이것이 예수라는 사람의 속내이며 행동의 원천이다. 예수의 모든 행동은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끓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의 분노 역시 애끓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중략) 우리가 예수를 따르거나 예수에게서 배우는 일 역시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끓는 마음’을 갖는 일에서 출발한다.”(38∼39쪽)

 

 

버스에서 신약성서를 읽다 이 대목에 밑줄을 치며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예루살렘과 기타 성곽도시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른 곳에서 따로 살아야했던 나병환자가 (감히!) 예수에게 다가가 거두절미하고 간청했던 행위와 예수께 고한 말이야말로 놀라운 것이지 않을까. ‘선생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어디로부터 연유하는 것일까? 어쩌면 나병환자 또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다니며 행했던 기적의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을 맴돌아야 했던 이 이방인이 ‘난생 처음 만나는 예수’를 향해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명징하게 전하는 그 힘이야말로 놀라운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가 손을 펴서 그를 만져주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라고 하자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것을 예수가 행한 기적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나병환자가 예수를 향해 '건넨 믿음'이 옮겨가 마침내 실체적인 힘으로 구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꿇고 간청하는 행위는 절대자 앞에서의 호소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믿음을 상대에게 건네는 행위라 읽게 된다. 그렇게 믿음이 누군가에게 건네질 때, 오랜 시간동안 마음속에서 발아한 그 씨앗이 바깥으로 나와 싹이 트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닐까. 믿음은, 그리고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오직 누군가에게 건네질 때만 잠재되어 있던 힘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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