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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용

아마존의 스핑크스

by 종업원 2018. 5. 22.

2018. 5. 22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물었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 이 시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우리 사냥 동료들이 그랬듯이 어떻게 해야 올바로 응답하는 것인지를 알아내야 했다. 스핑크스가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위치에서 물었던 이 수수께끼에 대해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고 답했다. 이것은 스핑크스의 질문에 비추어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무엇인가'를 묻게 하는 응답이다. 

그 비인간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선을 맞추고 응답해야 하는 '인간적이지 않은' 스핑크스는 인간적인 것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를 의문시하도록 만든다. 나아가 스핑크스의 질문은 우리의 답에 대해 무언가를 드러낸다. 처음에는 네 발, 다음에는 두 발, 그다음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그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네 발 달린 동물성과 우리를 특징짓는 이족보행의 인간성이라는 두 가지 유산을 상기할 뿐만 아니라, 유한한 삶을 더듬거리며 헤쳐가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내고 우리 자신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온갖 종류의 지팡이를 떠올리게 된다―카자 실버만(Silverman 2009)이 말했듯이 우리의 삶이 유한다하는 사실이 궁극적으로 다른 모든 유한한 존재들과 우리를 연결시킨다.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의 발이 되어주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지팡이는 죽을 운명의 연약한 자기self와 그 앞에 펼쳐진 세계를 매개한다. 그리하여 지팡이는 자기에게 세계의 무언가를 어떤 식으로든 표상한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세계의 무언가를 표상해 준다는 점에서, 수많은 부류의 자기들에게 지팡이가 되어주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 이 모든 존재들이 인공물인 것도 아니며, 이 모든 부류의 자기들이 인간인 것도 아니다. 유한성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재규어를 비롯한 여타의 살아있는 자기들―박테리아, 꽃, 균류, 동물―과 공유하는 것은, 우리가 주변 세계를 표상하는 방식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존재 자체를 구상한다는 사실이다.

 

_에두아르도 콘, 차은정 옮김, 『숲은 생각한다』, 사월의 책,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