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9
곰곰 생각해보면 ‘모임’이야말로 잘 가꾸고, 잘 꾸리고 싶은 살림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그럴듯한 성과를 내기 위한 워크숍이나 프로젝트, 널리 알려진 이를 좇고 기대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강연은 모임과 그야말로 다른 결을 가집니다. ‘모임’은 특별히 이끄는 힘도, 대단한 무엇도 없는 작고 느슨한 이름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 힘으로 가득합니다. 모임은 ‘모으다’에서 왔겠지요. ‘여러 사람을 한 곳에 오게 하거나 한 단체에 들게 하다’는 뜻 안에 ‘한데 합치다’, ‘쌓아 두다’, ‘한곳에 집중하다’라는 갈래와 이어집니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어떤 일을 하려고 자리를 열어 사람을 모은다는 뜻도 있지만 ‘무언가에 이끌려 한 자리로 찾아오다’라는 갈래로도 풀 수 있습니다. ‘모임’을 ‘모이다’라는 눈길로 풀어본다면 말이죠. 누군가가 ‘이끄는 힘’과 스스로 ‘이끌리는 힘’이 만나는 자리가 ‘모임’이 아닐까 해요. 한 사람이 이끌 수도 없고, 이끄는 사람이 없어도 안 됩니다. 모임은 기관이나 조직에 비해선 느슨해보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살피고 돌보지 않으면 이어나갈 수 없습니다.
예전부터 저는 모임이 가위바위보 놀이와 닮아 있다 여겨왔습니다. 모임은 더 많은 선택지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선택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힘을 배울 수 있는 드문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가위. 바위. 보. 이 세 가지 선택지가 부딪치며 나타나는 우연성이 어떻게 새로운 길을 펼치는 데 이바지 하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때 그곳에 자리한 이들만이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가위를 내거나 바위를 내거나 보를 냅니다. 더 많은 선택지나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 ‘뻔함’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배워왔습니다. 모임 또한 생명과 같아서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숨을 다하고 맙니다. 그렇다고 모임을 돌보는 데 애를 쓰는 것이 모임을 독점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건 아닙니다. 누구도 독점할 수 없지만 누구나 애를 쓰는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긴장감이 모임을 ‘우리끼리’로 귀착시키지 않고 그 안에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낯선 자리를 기어이 내어놓습니다.
모임 바깥에서 보면 가위바위보 밖에 없는 선택지가 좁아 보이고, 또 뒤늦게 가위바위보를 내는 사람이 늘 이기는 것처럼 시시하고 좁은 곳에서 아웅다웅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누가 무엇을 내어놓느냐에 따라 모임 방향과 흐름이 결정되지요. 누군가가 내어놓는 첫 마디가 그날 모임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빌런(악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망할 때도 있지만 모두가 스스로 짓고 잇는 힘으로 모임을 꾸리고 가꾸기에 저마다가 뿌듯함과 기쁨을 넉넉하게 누릴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모임은 계약이 없고,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기에 다음을 위해 오늘을 미루지 않아요. 그래서 언제라도 흩어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소중히 여기겠지만 또 누군가는 쉽게 여깁니다. 저는 모임이 살림과 닮았다 여깁니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기어이, 기꺼이 하는 일이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한없이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크고 놀라운 일로 가득하니까요. 오늘 뿌듯하다고 해도 내일 와르르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그날그날, 그때그때 돌보고 가꾸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무더웠던 여름 내내, 징검다리 목요일 저녁 7시, 진주문고 4층 한쪽에서 열었던 ‘살림글쓰기’ 자리를 어떻게 열고 닫으며 ‘모임’으로 가꾸고 꾸리셨나요? 이 작은 모임 안에서 무엇을 누리고 또 어떤 이바지를 하셨나요? 두 달 남짓 가꾸고 꾸린 살림이 이 모임이 닫히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몸과 마음에 쌓여 저마다가 새롭게 펼치는 자리에서 이어가길 바랍니다. 모임이 제게 알려준 것 가운데 하나가 ‘잘 헤어지는 일’입니다. 모임을 한다는 건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고 모임을 하는 한 늘 헤어짐과 함께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잘 헤어진다’는 게 어쩐지 이상하게 들리지만 기꺼이 잘 헤어질 수 있어야 한다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모임을 하는 동안 늘 그 안에 헤어지는 눈길이 흐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모임을 하며 배운 게 또 하나 있어요. 작게라는 낱말입니다. 작은 것을 눈여겨보고, 허리 숙여 들여다보는 일. 작은 것에 이끌려 그 곁에서 함께 작게 움직이고 작게 말하는 일. 그래야 어울릴 수 있고 이을 수 있다는 것. 작게라는 살림. 작게작게라고 하면 시가 되고 작게작게작게라고 하면 노래가 된다는 것을요.
*
작은 고장에서 작은 사람들과 작게작게 적은 글을 묶은 책 끄트머리에 덧붙인 글을 여기에 옮겨 씁니다. 마침내 이 글을 제대로 알아보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하지만 왠지 모를 슬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읽었어요. 어딘가에 이 글을 읽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눈물동무가 있으리라 여기며 즐겁게 옮겨 적었습니다.
엮고 나서
내 어린 시절
이영희
내 어릴 적 시절은
배고프던 시절
보리밥과 갱시기도
실컷 못 먹던 시절
그러나 지나고 보니
즐거웠던 시절
학교 가는 길에
버드나무 잎 훑어
누가 더 질기나 내기하고
버들피리 꺾어 불기
찔레 꺾어 먹기
멱감기
밀서리와 콩서리
목화서리
내 어린 시절은
꿈이 있었던 시절
마음엔 언제나 시가 꽃피던 시절
―‘푸른 마음’(청리 22회 1반 동창 소식지) 1998년 12월 제3호에서.
가을밤
정부교
서산에 해지네
오색빛 저녁노을
밝은 세상 암흑의 세계로
밀리어 드네
가을의 찬 바람 고독한 바람
귀뚜라미 자장가
들리어 오네
―‘까만 새’에서 13년 뒤인 1982년 정부교가 부암에서 엮은이 앞으로 편지와 함께 보내 온 시.
이 시집에 시를 쓴 아이들은 지금 거의 모두 40대의 장년이 되어 우리 역사의 가장 힘겨운 고비를 넘기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 어린 시절에 자연 속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살던 그 몸과 마음을 잃지 않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온갖 어려운 일들을 잘 이겨내면서 바르고 착하게 살아가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것은 이들을 가끔 만나 살아 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 믿지 않을 수 없었고, 역시 시를 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비록 시는 안 쓰더라도 시를 마음 속에 지니고, 몸으로 시를 살아가게 되는구나 싶어 한없이 기뻤습니다. 시의 마음이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고, 생명의 귀중함을 생각하는 마음이고, 동정할 줄 아는 마음이고, 가난한 우리 것, 내 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건강하게 일하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마음입니다.
작품이 모두 272편입니다. 쓴 때는 1952년 것이 한 편 있고, 그 밖에는 죄다 1958년에서 1977년까지 20년 동안입니다. 학교별로 보면 대곡분교가 149편, 청리 국민학교(이하 ‘국민학교’ 줄임)가 68편, 공검이 21편, 김룡이 15편, 길산이 7편, 경주가 4편, 이안서부가 4편, 비산, 동신, 모암, 문경이 각각 한 편씩입니다. 이렇게 작품 수가 많이 다른 까닭은, 대곡분교에서는 제가 3년 동안 교사로 있었고, 청리는 2년 반, 공검은 1년 9개월 동안 있으면서 아이들을 맡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김룡, 길산, 이안서부도 2년 또는 3년씩 있었지만 관리직(교감, 교장)으로 근무했기에 아이들을 제대로 맡아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경주서는 교사로 한 해 동안 학급을 맡았지만, 그 때 그 학교의 특수한 사정으로 노상 교실을 비우고 교무실에서 사무를 보아야 했습니다. 그 밖에 한 편씩 나온 네 학교 중 비산은 겨우 한 달만 있었고, 동신은 한 학기 있으면서 문집까지 냈는데 그것을 간직해 두지 못했습니다. 모암은 가르쳤던 아이가 전학을 가서 쓴 작품을 보내 준 경우이고, 문경은 글짓기 대회의 심사를 맡았을 때 뽑은 작품입니다. 이러고 보니 이 책이 바로 저의 이력서가 되었습니다.
2002년 4월 이오덕
* 이오덕 엮음, 『일하는 아이들』, 보리, 2022(고침판 / 초판 1978)
살림글쓰기(진주문고_2024. 6.20~8.29) 마지막 모임날 나눈글
지난주 이응모임에서 최종규 선생님이 <일하는 아이들>에 시를 썼던 이들 가운데, 그러니까 이오덕 선생님 제자들이 꾸리는 모임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간 이가 농협직원이라는 이야길 해주셨다. 그 분을 뵌적도 있다는데, 바른 사람이었다는 말씀과 함께. 도시로 나가 성공하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나고 자란 곳에서 스스로 삶터를 짓고 가꾸며 돌보는 삶을 살기를 바란 가르침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흥 어귀를 걸으며 이른바 ‘지방소멸’이란 괴담에 가까운 위기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일찌감치 알려주신 게 아닐까란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6월 중순부터 진주문고에서 열었던 ‘살림글쓰기’ 모임을 마치는 날 <일하는 아이들>을 다시 펼쳐보았다. ‘머릿글’인 줄 알았는데, 다시 펼쳐보니 ‘마치는 글’이었다. 이제서야 ‘엮고 나서’에 적힌 글자 하나하나를 알아보고 (속으로) 눈물을 쏟으며 거듭 읽었다. 시를 썼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시를 마음 속에 지니고, 몸으로 시를 살아가게"되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에 자연 속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살던 그 몸과 마음을 잃지 않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온갖 어려운 일들을 잘 이겨내면서 바르고 착하게 살아가리라 굳게 믿습니다"라는 글귀를 읽으며 글쓰기가 어떤 길을 트고 일구는지 마침내 뚜렷하게 알아차렸다. 모임을 꾸린 발자취가 내 이력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까마득해서 쓸 수 없는 문장을 떠올려보았다.
살림글쓰기 자리에서 에세이가 아니라 살림글을 쓰자고 했지만 ‘잘 써야 한다’는 욕심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했구나라는 것도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알아차렸으니 천천히 나아가자고 애써 마음을 붙들었다. 글이든, 말이든, 눈길이든, 몸짓이든, 마음이든 고치고 다듬어야 할 게 끝없이 보인다. 철퍼덕 주저 앉아 마음껏 신세 한탄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고 오늘 고칠 수 있는 만큼, 손볼 수 있는 만큼, 다듬을 수 있는 만큼 고치고 손보고 다듬으려면 훌훌 털고 일어서야 한다. 다시 만날 땐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반갑게 맞이하자고 속으로 인사하며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회복하는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숲―『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최종규, 스토리닷, 2017) 곁에 손수 지은 이름을 펼쳐보다 (1) | 2024.10.08 |
---|---|
달리며 펼치는 살림―<진주 쓰깅> 자리를 열며 돌아본 달리기 살림 (2) | 2024.10.05 |
사소한 결별_2018년 여름 (0) | 2023.09.26 |
길 잃기와 살림 잇기 (0) | 2023.08.06 |
긁어내고, 벗겨내고, 지우는 글쓰기 (0) | 2023.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