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하반기 <문학의 곳간> 주제를 ‘가난이라는 주름’으로 묶어보았던 것은 알게 모르게 접어둔 것들을 펼쳐보면 좋겠다 싶어서였습니다. 다시 펼쳐봐야겠다 싶어 책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두는 것처럼 기억을 접어두는 경우도 있지만 저마다가 놓인 형편 탓에, 또 갖은 이유로 접어두어야만 했던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스스로도 잊고 있던 접힌 기억을 펼쳐보는 자리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 그런데 그 자리를 솔직한 고백만이 아니라 탐구와 탐색도 함께 하면 좋지 않을까 했습니다.
가난은 우리를 움츠려들게 만들고, 멈칫하게 하고, 뒷걸음질치게 하죠. 거기에 접힌 기억과 시간이 주름져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빈곤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가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질적인 것보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움츠려드는 것, 멈추게 되는 것, 뒷걸음질치게 하는 것이 몸과 마음에 남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몸과 마음에 두껍게 쌓인 가난이라는 주름은 마음을 먹는다고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 생각해요. 하지만 움츠리는 것, 멈칫하는 것, 뒷걸음질치는 건 뭔가를 하지 못한 순간이 아니라 뭔가를 하려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뭔가’가 있어요. 하고 싶은 것, 이끌리는 것이. 그리고 주어진 형편 속에서 방법을 찾으려 애쓴 것, 궁리한 것들 또한 몸과 마음에 쌓인다 여겨요. 가난이라는 주름을 마주해 접힌 기억과 시간을 풀어보면 좌절된 것들이나 상처 뿐만 아니라 의욕, 욕망, 시도, 뜻, 기운, 다짐, 바람 같은 힘도 펼쳐볼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가난이라는 주름> 다섯 번째 자리를 최현숙 작가가 쓴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회 곳곳에 접힌 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듯한 소수자에 대한 뜨거운 호기심으로 탐구과 탐색을 이어가는 동력을 자신이 느꼈던 모멸감 덕이라고 말하며 “모멸감은 내 생애의 자산이자 내 밖으로 나아가는 내 속 출발지다”(164쪽)라고 외치는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각자가 접어둔 기억과 시간을 펼쳐도 좋다는 응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접혀 있던, 혹은 짐짓 접어두었던 몸과 마음을 펼쳐보면 좋겠습니다. 문제해결이 아니라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다른 자세를 취해보는 것처럼요.
“제도정치에 희망을 접고 탈당한 후, 나는 남은 인생이 아주 간단해졌다. 가고 싶은 곳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즐기다 죽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가고 싶다. 게다가 그들과 어우러지는 동안의 촉감이 더 없이 좋다.”(최현숙,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문학동네, 2023, 350쪽)
각자가 깃든 대피소에서, 희망 없이, 하염없이. 백한 번째 <문학의 곳간>에선 이 말에 기대어 찢기고 마모되고 너덜너덜해진 후에도 ‘내가 (계속)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면 좋겠습니다.
백한 번째 <문학의 곳간> 사귐시간 주제_2024년 1월 27일 부산 중앙동 <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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