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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queer) 생태⏤퀴어, 자립, 독립

by 종업원 202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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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의 어느 저녁, 부산 남구 대연동 재개발지구에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백무산의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창비, 2012)에서 몇 편의 시를 추려 그날의 참석자들에게 선물로 건넸고 시를 건네 받은 이들은 오래된 선풍기 곁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천천히 낭독했다. 시 낭독과 함께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에 관한 것은 아니었고 조금은 엉뚱하고 쓸모를 찾을 수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백수들의 유쾌한 실험실’이라 자신을 명명했던 이상하고 특이했던 모임,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2013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도시재개발로 인해 퇴거 통보를 받았지만 이를 ‘재(능)계발’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변주해 하고 싶은 작당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한달간 주변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그 장소를 분양했다. 그때 생활예술모임 <곳간>의 문도 열 수 있었다.

 

삶의 낮은 곳이면서 가장 생생한 곳이기도 한 ‘가장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만남을 백무산의 시편을 매개 삼아 작은 모임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장자리로 예배드리러 가겠다는 시인의 목소리가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당도한 이들을 향한 환대의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얼핏 ‘시’는 일상의 낮은 자리가 아닌 일상 너머의 먼 곳에서 홀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말과 글을 누군가에 애써 건넬 때 작은 등불이 된다는 것, 그 등불이 비추는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각자의 삶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해석’이라는 것이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음의 방식에 좌우되는 것임을 잠시 배웠다.

 

  

“빈터에서 시작된 공간에 문틀을 만들고, 페인트를 바르며 누군가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둘 만들어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손님이자 친구들이 그 공간을 가꿔나갔습니다. 그렇기에 다방은 다방의 생활(역사)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생활(역사)도 함께 기록되어 두 가지의 생활(역사)이 함께 교차합니다. 장소와 사람이 만나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놀이로서의 문화, 특별하거나 뛰어나지 않아도 자신의 재능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더욱 풍성한 것으로 만나는 다방. 이런 실험들이 겹겹이 쌓여서 지금의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우리가 만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듯합니다. 다방이 일기라는 형식으로 블로그에 기록을 시작했듯이, 어떤 특별한 삶만이 기록되거야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삶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방식으로 매순간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곳간>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지만 생생한 생활이 담긴 저장소, 우리 모두의 <곳간>을 열자」 모임 후기(2013년 9월)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대연동에서 칠산동으로, 다시 대신동으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지금은 상상해보지 못한 이상하고 독특한 모임을 꾸준히 열다가 2016년에 해산했다(2011~2016 생각다방산책극장 연표 https://blog.naver.com/beluckysuper/220885047693). 2015년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던 어느 날, 칠산동 시절을 마무리 하는 자리에서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보살피던 ‘히요’는 백무산의 시 <마당이 없는 집>을 낭독했다. <곳간>을 열 때 ‘히요’에게 선물했던 시였다. 철거되었던 대연동에서 칠산동으로 챙겨온 문짝 옆에서 히요가 그 시를 낭독했을 때 나는 한 시절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건 아쉽거나 쓸쓸한 느낌이라기보다 안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함께 있(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그건 같은 배를 타고 있어서가 아니라 넘실거리는 물결에 각자의 몸을 맡기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마다가 느끼는 넘실거림의 감각은 조금씩 달랐고 물살을 헤치거나 타고 넘는 방식 또한 달랐지만 시차는 크지 않았다. 여전히 서로가 낯설었던 저마다의 우리는 하나의 사실만큼은 공유하고 있었다. 여기 이상한 사람이 (또) 있다는 것. 그 반가움과 안심의 정서 속에서 다르지만 함께 있는 동시대인이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물결에 몸을 맡겨 한 시절을 유영했던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맞이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느끼고 배우고 나누는 일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결로 이어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맘대로 MAP>_생각다방 산책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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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도 좋다는 표지로 가득했던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누군가는 놀이터로, 누군가는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로, 또 누군가는 공연장이자 무대로 삼았을테지만 그곳은 모두에게 ‘안전구역’이었으며 그런 이유로 서식지가 되기도 했다. 누구도 홀로 이를 악물거나 서로를 향해 독기를 뿜어내지 않고도 자기다움을 드러낼 수 있었던 장소, ‘제도 바깥’이 아니라 제도와 관련이 없는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희귀종 같았던 이들이 모여들었던 <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 ‘이상함의 생태’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각각의 사람들은 그 자체로 ‘고유한 장르’이기도 했다. 

 

예외적인 존재(의 양태)를 알아보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동안 장르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새로운 장르를 가리키는 명명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착취의 장치가 되기도 하고, 고정된 정체성으로 대상을 감금해버리는 통치술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사라진 문화예술잡지 ⟪B・Art⟫에 ‘하나의 장르, 바로 그 한 사람’이라는 인터뷰 기획을 시작했던 것 또한 ‘별종’이라 불리며 나타났다가 ‘희귀종’이라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이상함의 생태’를 어떻게든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김비 소설가를 <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 처음 만났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지만 어느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응답하며 곧장 동료가 되었다. 자립음악가 한받의 공연을 처음 본 곳도 <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였다. 2014년 10월 ‘홈메이드 콘서트’에서 한받은 클래식 기타와 개러지밴드를 오가며 ‘아마츄어증폭기’에서 ‘야마가타트윅스터’로 변신(도약)했고 칠산동 ‘생각다방 산책극장’엔 이상한 플로우(flow)로 넘실대었다. 2017년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 씨네소파를 단박에 알아보고 주목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상함의 생태’ 속에서 체득한 안목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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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서사가 한국문단에 광풍처럼 몰아쳤을 때 김비 소설가 또한 여러 문학 잡지로부터 청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이 김비 소설가에게 요청한 건 (자기고백적인) 에세이였다. 이 소설가에게 누구도 소설을 청탁하지 않았다! 웹진 <젠더・어펙트> 2호에 김비 소설가의 중편 소설 「강철과 이슬의 집」을 연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언제나 읽는 이를 꼼짝없이 정동되게 하는 강력한 소설적 설정과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으로 가득한 「강철과 이슬의 집」이 <젠더・어펙트>에 머물다가 더 먼 곳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인디’를 거부하고 ‘자립’을 주창했던 음악가 한받이 자립음악의 근황을 전해주었다. 이 글은 자립음악 분투기이거나 생존 신고서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읽어야 하는 건 누구보다 급진적이었던 그이의 자립음악 행보로 써나간 선언문인지도 모른다. 독립영화배급을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는 <씨네소파>와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 지역과 청년이라는 키워드에 기대지 않고 대의를 품은 슬로건을 내세우기보다 ‘착취하지 않는 직장 문화’를 구축하고 여러 예술가들과 협력하며 오늘의 세상에 영화를 전하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많은 배움을 구할 수 있었다. 

 

별종이자 희귀종처럼 보였던 터라 자연스레 보호종이라 생각했던 그들이 사실 ‘해적’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국적이나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고, 종착역이 정해진 레일 위가 아니라 목적지 없이도 힘차게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나간 이들. 이들에게 파도란 고난과 견뎌냄의 표지가 아니라 멀리서부터 오고 있는 것, 어느 순간 넘실대며 눈앞에 도착하는 존재들을 두려워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기꺼이 휘말리고 부대낄 수 있는 에너지를 의미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원문 : 이상한(queer) 생태⏤퀴어, 자립, 독립(https://genderaffect.tistory.com/42)

 

 


 

 

올해 봄부터 웹진 <젠더·어펙트>를 함께 만들고 있다. 어떤 일이든 기대와 포부를 품게 되면 그 곱절의 부담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는데, 이 부담감이 꼭 생산성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고작 2호를 냈을 뿐이지만 이상하게도 많이 지쳐버렸다. 이 웹진이 매체로서의 독립성을 가져서 작은 의미를 조형해나갔으면 하는 바람과 그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내 안에서 출렁이며 섞여버리기 일쑤다. 걱정과 바람이 구분되지 않은 채 뒤섞이다보면 차츰 진이 빠지게 된다. 연구소의 상황과 연동되어 있다는 게 생산적인 긴장과 탄력이 되기도 하지만 괜한 일에 너무 애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와 애씀이 외려 주변을 힘들게 만드는 건 아닌가하는 염려와 검열이 뒤따르게 된다. 그 염려와 검열이 관계의 긴장으로 이어지지 않을 땐 내부를 소진시켜버린다. 

 

내겐 무엇을 만드는가 만큼이나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가 여전히 중요하다. '함께 만들고 있다'고 할 때 중요한 건 함께의 방식과 함께 속의 역할에 있다. '함께'란 여럿을 가리키는 말만이 아니라 탐구하고 또 탐험하면서 배워야 하는 미지의 영역임을 새삼 되새겨본다. 모두가 공평하고 만족하는 함께란 불가능하다. 그런 것이 가능한 건 '계약'이다. 기울어지되 완전히 기울지는 않는 상태가 함께의 균형이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고, 한쪽이 너무 소외되지 않는 상태. 한쪽이 기울어져 있음을 인지하고 그런 이유로 한쪽이 소외되고 있음을 감각하는 일. '함께'란 모두가 각자의 줄타기를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주 높고 위태로운 곳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작 무릎높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경우가 줄타기라는 이름으로 지칭된다 하더라도 동일한 것이라 치부할 수 없고, 높이나 위험함의 정도로 줄타기의 노력이 환원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함께하는 일에서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건 '함께'의 경험을 나누는 일이다. 각자의 줄타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서로의 줄타기에 대한 비평. 

 

2호의 원래 기획은 '독(毒, 獨, 讀)'이었는데 원고 필자를 섭외하고 인터뷰를 진행 하면서 '독'이라는 의미만으론 이들과 이들이 일구어온  세계를 설명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두언을 쓰면서 퀴어, 자립, 독립을 '이상한(queer) 생태'라는 테마로 묶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기획안을 제안 했다. 마이너하다는 건 배려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표시만이 아니라 주류 생태계를 교란하는 힘이면서 세상의 문법을 새롭게 써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이기도 하다. 그 저력을 오늘과 내일의 문맥으로 잇질 못하고 어제에 기대어서 쓴 글이다. 요즘 이런 일이 잦다. 조금은 한심한 일이지만, 그게 지금의 나의 상태이자 스코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함께를 고민하지 않고도 너끈히 함께 했던 시간. 내 것만도 아니고 네 것만도 아닌 그 시간에 기대어서 조금 쉬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