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4
군대에 끌려가서 축구나 족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언제부터 달렸나를 떠올려보다가 어지간히도 ‘운동’을 하지 않은 내가 어쩌다 달리고 쓰는 모임을 열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강원도 철원 산골짜기에서 해가 질 때부터 해가 뜰 때까지 철책선 앞에서 보초 근무를 서야 했기에, 집합 명령이 있었음에도 누가 족구장에 나오지 않았는지 자세히 살필 겨를이 없어 나는 보일러실에 숨어 시집을 읽으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소대 단위로 떨어져 지낸 부대 특성 때문에 축구를 할 일도 없었다. GOP 근무를 철수하고 바깥 부대로 돌아가서는 계급이 조금 높아져서 축구나 족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만큼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낸 내가 숨 가쁘게 몸을 움직이게 된 건 2016년 늦가을에 이사한 동네를 걷다가 보게 된 권투 체육관에 들어서게 되었기 때문이다(2018년 봄). 대학 강사 일을 하는 동안 무언가를 안간힘 쓰며 가르쳐보려고만 했지 무언가를 배운 기억이 까마득했던 까닭도 있고,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이 똑같이 흐르던 나날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2018년 늦봄, 매해 열어온 <회복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한 글벗이 ‘러너스 하이’에 대한 살림글(그땐 생활글이라 불렀다)을 썼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럿이서 광안리에서 열린 10km 러닝 대회에 참여한 게 뜻밖에 일이었지만 뜻깊은 걸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 즈음 권투 체육관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운동을 해온 터라 링 위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로드웍(길 위를 달리며 몸을 푸는 기초 운동)을 많이 하면 된다는 조언을 듣고 더 ‘열심히’ 달렸던 거 같다.
더 빨리, 더 멀리 달리고 싶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평생 하지 않던 운동을 몸이 괴로울 정도로 몰아붙였기 때문이었을까. 자가면역질환처럼 보이는 이상한 반응이 몸 곳곳에서 나타났기에 모든 운동을 중단하고 납작하게 엎드려 몸을 보살폈다. 권투 체육관 생각은 누를 수 있었지만 달리기만큼은 참을 수가 없어 2021년 가을부턴 이른바 ‘도둑 러닝’이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 3년 동안 몸을 너무 못살게 굴어서 열이 오르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주치의 당부가 있었기에 몰래 조금씩 뛰던 걸 ‘도둑 러닝’이라 이름 붙여보았다. 달리고 나면 무릎이 아파서 보름 정도는 뛸 수 없었고, 그 주기가 한 달로, 두 달로 늘어갔다. 2년 동안 드문드문 달리긴 했지만 그야말로 꺾인 무릎으로 절룩이며 뛰었다고 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어느 날, 낙동강변을 따라 달리다가 이대로 멈추지 않고 간다면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까지 닿겠다 싶어 그 길로 계속 달렸던 때를 기억한다. 버스에서 내리다가 떨어져 바퀴에 두 다리가 깔려 뼈가 으스러진, 떠올리기도 싫은 터무니없는 사고로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머니가 몸과 맘을 잘 추스르시길 바라며 달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길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달렸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내가 닿고 싶은 곳까지 온힘을 다해 달리는 일이 기도와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랜 스승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사는 베를린에서부터 그이가 누워 있는 파리까지 걸어서 간다면 소중한 이가 죽지 않을 거라는 바람을 담은 이상한 여행기, 『얼음 속을 걷다』(베르너 헤어초크, 안상원 옮김, 밤의책, 2021)를 알아본 것도 강변대로를 달리는 몸으로 했던 기도 때문이었지 싶다.
빨리 달리거나 멀리 달리기보다 몸을 살피며 달리는 동안 달리기가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길목이라는 걸 저절로 알게 되었다. 온힘을 다해서 달리기보다 힘을 다하지 않고 달리면 몸도 마음도 즐겁구나, 그건 살림을 꾸리는 일과 다르지 않구나, 가계부를 쓰는 것처럼 달리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을 알뜰하게 쓴다면 살림을 북돋을 수 있다는 것도 눈 뜨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달리는 동안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읖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를 기억했다가 달리며 풀어내는 일을 떠올리니 이게 접어두었던 몸과 마음을 발을 내딛으며 길 위에 펼치는 일이라는 자리에 닿게 된다.
달리기가 몸과 마음을 마음껏 펼치는 일이기에 그 느낌을 글로 옮겨 적고 싶었다. 온몸에 힘을 빼고 그저 작은 스프링이 되어 낭창낭창 하게 발돋음 하는 건 그야말로 길 위에서 추는 춤이지 않나. 달리기는 길을 무대로 바꾸는 발돋음이구나, 마음을 노래하며 마음껏 춤추는 일이구나. 그러니 이를 고스란히 글로 옮기는 건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구나. ‘쓸 수 없다’는 자리에서 알게 된 게 있다. 달리기는 몸으로 쓰는 글이라는 걸 말이다. 내가 자주 달리는 장림에서 다대포 해수욕장을 거쳐 장림포구를 끼고 돌아 장림시장을 가로지르는 달음질이 그 자체로 이미 몸과 마음을 담은 글이구나, 그러니 무언가를 새로 쓸 게 아니라 달리며 쓴 글을 어떻게 읽어내느냐가 중요하겠구나 싶은 것이다.
달리기는 두 발을 내딛으면서 나아가는 몸짓이기에 둘레를 누비며 누리는 일이다. 가로질러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달리는 동안 둘레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담는다. 어느 곳도 건너뛰지 않고 모조리 밟고 내딛기에, 그렇게 둘레를 몸과 마음에 가득 담는 일이기에 늘 새몸과 새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긴다. 나는 코로만 숨 쉬며 달린다. 빠르기나 거리를 중요하지 않나 여긴다. 다만 숨차지 않을 정도로, 함께 달리는 달림이 동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달리고 나서 몸이 가뿐할 정도로, 철 따라 달라지는 벌레 울음소리, 사람들 말소리, 새소리를 죄다 들을 수 있게, 또 내 몸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넋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코로만 숨 쉬며 느긋하게 달린다. 춤추듯 둘레를 누리며 코로만 숨 쉬며 달리면 10km를 달리더라도 땀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진주 쓰깅> 첫 걸음 여는 글_진주문고(2024.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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