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던지기

망설임 없이, 음악 없이(<로제타>, 다르덴 형제, 1999)

by '작은숲' 2012. 12. 4.







  카메라는 ‘로제타’의 움직임을세세한 동선을머뭇거림 없는 몸짓을 좇는다직장에서 쫓겨나기 전부터 그녀의 몸은 혹여라도 쫓겨날까 바쁘기만 하다몸을 가만히 두는 법이 없다거침없는 그 몸짓은 자신의 몸에 대해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음을자신의 몸을 한번도 어루만져본 적이 없음을몸이란 그저 고통이 시작되는 장소 외엔 그 어떤 의미도 가져보지 않았음을 무심하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단 한번도 로제타를 먼저 기다리고 있지 못하는 카메라는 항상 로제타의 몸보다 늦다(바로 이 점이 다르덴 형제만의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로제타를 ‘무심히’ 담아냄으로써 그녀에게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카메라의 거친 움직임은 윤리적이기까지 하다) . 그러니 우리가 로제타만이 아는 지름길과 관리인의 눈을 피해 고기를 낚아올리는 아지트를 발견할지라도 언제나 숨이 가쁠 수밖에 없다그 가쁜 몸이 가닿고자 하는 곳은 ‘평범한 일상’이다.



  알콜 중독에 빠져 자꾸만 몸을 파는 엄마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로제타는 그녀를 보호소로 데리고 가다 완강한 저항에 연못에 빠진다아무도 그녀를 구해주지 않는다로제타의 간절한 몸짓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그녀의 비명은 오직 그녀만이 듣고 있으니 그녀를 구해낼 수 있는 이는 자신 밖에 없다늪과 같은 연못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녀는 제 힘으로 ‘그곳’을 빠져나온다영화 <로제타>(다르덴 형제, 1999)에서 카메라가 끈질기게 좇고 있는 로제타의 몸짓은 제 스스로 내지르는 비명이자 그 누구도 듣지 못하는 비명이다비명만이 있는 몸말이 없는 몸로제타의 동선을 따라간다는 것은 몸의 비명을 듣는 것이다그 비명은 우리가 결코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만을 가리킬 뿐이다비명이라는 말아이이면서 엄마이어야 하는삶이라는 늪에 빠진 자신을 언제나 스스로 구해내야 하는, 표정을,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는 삶.



  겨울에 여름 옷을 파는 로제타에게 ‘오늘’이란 ‘내일’을 팔아야만 허락되는 시간이다그녀의 소원(미래)은 오늘(평범)을 사는 것이다처음으로 사귄 친구 집에서 그들은 굳어버린 토스트를 나누어 먹고 어설프게 녹음된 드럼 연주를 함께 듣는다멜로디도 없고 박자도 고르지 않는 그 리듬 위에서 그들은 춤을 춘다그러나 로제타의 몸(비명)은 춤()의 동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극심한 생리통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로제타는 그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듯하다그저 좁은 침대에 숨어 드라이기를 배꼽에 대고 고통이 지나기길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런 방법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단 한번도 춤을 춰본적이 없는 그녀는 멜로디가 없는 음악이 끝나길 기다리는 것이다로제타는 침대에 누워 주문을 외듯 반복해서 속삭인다연못에 빠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묻고 자신이 대답한다.


























너는 로제타나는 로제타너는 일자리가 생겼어나는 일자리가 생겼어너는 친구가 생겼어나는 친구가 생겼어너는 정상적인 삶을 살거야나는 정상적인 삶을 살거야너는 시궁창에서 나올거야나는 시궁창에서 나올거야잘 자잘 자.”


 로제타는 자신만이 아는 길로 다니는 듯하지만 그 지름길이란 매번 담을 넘어야 하며 횡단보도가 없는 차도를 위험하게 가로지를 때만 당도할 수 있는 쪽문 앞이다그 쪽문을 지나면 질퍽한 진흙투성이의 길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그 무엇도 믿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으니 그녀의 몸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술에 취해 널부러져 있는 엄마를 본 뒤, 유일했던 친구를 고발하면서 뺏았던 일자리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만둬버리고 가스를 틀어 자살을 준비하는 그 움직임은 마치 그녀의 일상처럼카메라가 내내 가쁘게 좇던 그 삶의 리듬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자신만을 위한 달걀 하나를 삶아 그것을 먹으며 로제타는 죽음(내일)을 덤덤히 기다린다아무런 표정도망설임도음악도 없이그저 그녀가 내일(죽음)을 맞기엔 ‘가스’가 부족할 뿐.






  자신이 해고된 사실을 알고 관리인에게 항의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하는 로제타의 거친 뒷모습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자살(내일)을 위해 제 몸으로 가누기 힘든 정도의 무거운 가스통을 들고 가는 모습으로 끝난다로제타는 이 영화에서 단 한번 웃고단 한번 운다자칭 ‘마루운동 챔피언’이 자신을 뽐내기 위해 마룻바닥 위에서 재롱을 부리다 넘어지는 것을 보며 짓는 미소가스통을 들고 가는 자신을 방문한 자신에게 배신 당한 그 친구를 외면하려다 돌아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울고 있다이 영화엔 그 어떤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영화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 ‘연기’라는 것이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거짓투성이인지 표정 없이망설임 없이음악 없이 끝나버리는 이 영화 뒤에 우리는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2011년 교양강좌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본 영화에 대한 메모를 정리해본 글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다른 글을 쓰면서, 짬짬이 완성한 글이라 응집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약하게나마 '일상적인 글쓰기', '마감일자 없는 글쓰기'를 시험해봤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기회가 된다면 총괄해서 하나의 론(論)으로 개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짬짬이 그들의 영화를 챙겨보며 메모들을 쟁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