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393

범일동(1) 범일동, 더 정확하게 안창마을 입구(2008) 건물 사이로 보이는 곳은 좌천동 2011. 5. 6.
2011년 4월 24일 초저녁에 잠이 들어 새벽 3시에 깨었다. 김형술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번의 벨소리 후에 바로 끊어졌는데, 저녁에 보낸 메시지를 그제서야 확인했나 짐작했지만 아직 메일을 확인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했던 것일까. 어제 밤에 마감한 2호에 실릴 원고를 다시 읽어봤다. 서울에 체류 중에 k 선생께 「문장과 얼굴」이라는 제목을 한 그 원고를 첨부한 메일 한통을 보냈다. mono의 음반을 들으며 이세기 시인의 시를 읽었다. 「서쪽」이라는 시를 읽으며 며칠 전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내 아버지가 발톱을 깎아주는 꿈이었는데, 너무 짧게 자르는 것만 같아 엄지 발가락 발톱만을 자르고 도망치는 꿈이었다. 그게 후회되었다. 조금 아프더라도 다 자를 걸, 뒤늦게 후회되었다. 서쪽 이세기 그해에는 삼월에.. 2011. 4. 26.
꽃으로 겨누다 2004 섬진강 어귀에서 2011. 4. 25.
2002. 녹산공단 폐수처리 공사장 오전내내 못을 박던 목수들은 밥도 먹지 않고 잠 속으로 빠져든다. 구름에 가린 겨울 햇살이 늘 검은 그들의 얼굴을 감싼다. 빈 속에 흘려넣은 탁한 막걸리와 오래 묵은 김치 안주가 뒤엉켜 쭈그러든 위장 속에서 서로를 발효시킨다. 잠 속에서도 힘이 부치는 숨을 힘겹게 내뱉으며 목수들은 못대가리가 빠져버린 자신들의 꿈을 생각한다. 그들의 잠은 끈적끈적하고 달콤하다. 다시 어딘가에 뾰족한 못을 박아야 한다. 못대가리를 내리쳐야한다. 못대가리가 부러질 때까지. 부러져서 다시는 뽑을 수 없을 때까지. 꿈은 부러지거나 어딘가에 상처를 내며 감추어야 하는 것이다. 나무의 피를 너무 많이 봐 왔다.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 2011. 4. 25.
20xx년 x월 x일 붉게 부풀어 오른 도톰한 입술은 미끈한 상처다. 입술은 상처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딱지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끝에 획득한 매끈하고 볼륨 있는 피부다. 그러나 매끄러운 딱지가 사람들의 기억까지 덮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쉬지 않고 자신의 입술 끝을 물어뜯었으며 타인의 입술을 빨거나 자신의 입술을 타인에게 내맡기는 데 집중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입술의 자리에 있던 상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자신과 타인들의 타액에 입술은 점점 더 매끄러워져 갔고 도톰해져갔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입술을 사랑했고 또 볼륨감을 더 해 가는 자신들의 입술에 만족했다. 꼭 그만큼 상처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만 갔다. 기억은 머무를 곳이 없었다. 그러나 기억은 잊혀져도 .. 2011. 4. 25.
2011년 4월 23일 누가 들를까 궁금했던 레코드점이 결국 문을 닫기로 한 모양이다. 입구에 ‘CD, 테잎 세일’이라는 문구를 본 기억을 떠올려 오전에 기어이 그곳에 들렀다. 1시간동안 남아 있던 모든 CD를 확인하고 25장 정도의 앨범을 구매했다. 지금껏 구입한 CD보다 더 많은 수의 앨범에 대한 터무니없는 가격을 치루며 주인 아저씨께 이제서야 앨범을 구매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괜찮다며 물수건을 건네주셨다. 일회용 물수건으로 손바닥을 훔치니 검은 때가 잔뜩 묻어나왔다. 검게 변해버린 물수건을 가게 휴지통에 버리지 못하고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검은 봉지에 한가득 CD를 담아 레코드 가게를 몰래 빠져나왔다. 내 손에 잔뜩 묻어 있던 그 검은 때가 부끄러웠다. 2011.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