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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한 ‘쇼’와 리얼하지 않은 ‘전쟁’ ‘리얼리티 TV 쇼’의 미디어 장악은 객관적인 실제에 대한 신념의 상실을 반영하는 당대의 문화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반인과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엿봄으로써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중문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날 것 그대로를 여과 장치 없이 노출 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표면적인 특징과 달리 ‘리얼리티 TV 쇼’는 역설적으로 불확실한 사건을 제어하는 데 집중한다. ‘리얼리티 TV 쇼’는 ‘위험’에 대한 대중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지만 사건을 예측하고 제어함으로써 불안을 제거한다. 바꿔 말해 ‘리얼리티 TV 쇼’는 관객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 다만 위험이 주는 쾌락을 선사할 뿐이다. 올리비에 라작의 주장처럼 ‘리얼리티 TV 쇼’는 낯선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환원.. 2011. 7. 4.
범일동(3) 범일동(2008) 1 방문을 담벼락으로 삼고 산다. 애 패는 소리나 코고는 소리, 지지고 볶는 싸움질 소리가 기묘한 실내악을 이루며 새어나오기도 한다. 헝겊 하나로 간신히 중요한 데만 대충 가리고 있는 사람 같다. 샷시문과 샷시문을 잇대어 난 골목길. 하청의 하청을 받은 가내수공업과 들여놓지 못한 세간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간밤의 이불들이 걸어나와 이를 잡듯 눅눅한 습기를 톡, 톡, 터뜨리고 있다. 지난밤의 한숨과 근심까지를 끄집어내 까실까실하게 말려주고 있다. 2 간혹 구질구질한 방안을 정원으로 알고 꽃이 피면 골목길에 퍼뜩 내다놓을 줄도 안다. 삶이 막다른 골목길 아닌 적이 어디 있었던가, 자랑삼아 화분을 내다놓고 이웃사촌한 햇살과 바람을 불러오기도 한다. 입심 좋은 그 햇살과 바람, 집집마다 소문을.. 2011. 7. 3.
거울과 사진, 고백과 글쓰기 스무 살이 한참 지난 나이지만 ‘∼씨’보다 ‘∼양’이라 불리기를 원하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틈만 나면 거울을 보고 주변사람들이 진절머리를 칠정도로 열성을 다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고백’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거울 보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사람들 앞에 설 ‘자신감’은 없지만(‘∼씨’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그/녀와 마주본다는 것이다) ‘자신’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듯(‘∼양’이라는 호칭 주변에는 그래도 ‘난 소중해’라는 유아적인 정서가 둘러싸고 있다) 쉼없이 거울을 보고 고백을 하는 그 여성의 손에는 늘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영화 (이경미, 2008)는 볼이 빨개지는 콤플렉스를 가진 ‘양미숙’이라는 인물.. 2011. 6. 22.
다시, 문제는 문장이다 문제는 문장이다(이 문장이 비문으로 읽힌다면 그 사람은 필시 ‘문장’을 한갓 명사로만 간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시인의 말처럼 문장에서부터 모든 것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명확한 사건을 본 적이 없다. 사건 다음에 문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장 다음에 사건이 생긴다. 어떤 문장은 매우 예지적이다. 어떤 문장은 매우 불길하다. 그리고 어떤 문장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진다. 그것은 조금 더 불행해졌다. ―김언, 「이보다 명확한 이유를 본적이 없다」 부분, , 민음사, 2009. 문장에서부터 모든 것이 발생한다는 시인의 머릿속은 대개 ‘문장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시를 쓸 때도 그는 문장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김언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변주해보자. ‘시를 쓰기 위해 문장을 쓰는.. 2011. 5. 22.
언어를 타고 몸이 간다 선상 위에 올라온 미끄덩한 ‘그것’은 물밖의 공기가 제 몸을 감싸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온몸을 뒤척이며 뛰어오른다. 물속에서와는 전혀 다른 몸짓으로, 저 자신도 알지 못했던 몸짓으로, 그러나 물속에서 익힌 바로 그 몸짓으로, 자유와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뛰어오른다. 경계선을 뚫어내기 위해 도약을 해보지만 ‘길’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이내 ‘물고기’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새로운 이름을 얻자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선상 위의 도약 또한 ‘싱싱함’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물고기의 숨통이 끊어지면 ‘생선’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물밖에서 길을 내려했지만 그 도약의 힘은 ‘물고기’로, 다시 ‘생선’으로, 다만 지상에 더 가까운 이름으로 변해갈 뿐이.. 2011. 5. 20.
범일동(2) 범일동, 더 정확하게 안창마을 입구(2008) 보이는 곳은 좌측부터 좌천동, 수정동, 범일동 2011.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