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는 생활163 아저씨, 어디가세요? 2024. 10. 8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발걸음을 재촉하며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1층 이웃집 현관문이 슬며시 열린다. 혹여나 놀랄까봐 잠깐 멈춰 섰는데, 10살 남짓한 어린이가 천천히 걸어나온다. '안녕~!'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성큼성큼 앞질러 나갔다. 지금쯤 진주문고에 닿았으면 좋겠구나 싶은 시간이어서 마음이 조금 바쁘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손전화기에서 길안내 어플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방금 지나쳤던 아이가 가던길을 돌아 차 곁으로 다가온다. 창문을 여니 고개를 숙이고 나를 찬찬히 보더니 묻는다. 아저씨, 지금 어디가세요? 아저씨, 지금 서점 가는 길인데, 왜 그래? 그냥 궁금해서요. 저는 체육관 갔다가 옆에 회관 갈 건데...(뒷말은 목소리가 작아서 들을 수 없었다) 그래, 잘 다녀와~ .. 2024. 10. 8.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만화책 읽기 1) ―다카하시 신, <좋은 사람>1, 2(1993 한국어판 1998) 2024. 10. 3 지난 일요일 이른 10시부터 최종규 선생님을 이끔이로 삼아 이오덕 어른이 펼친 뜻을 따라 걸어보는 모임을 마친 뒤, 이어서 부산에서 펴낼 어린이잡지 회의를 하니 늦은 5시가 훌쩍 넘었다. 최종규 선생님과 함께 중앙동 곳간 사무실로 넘어와 책 펴내는 이야기를 나눌 참이었는데, 저녁거리를 사러나가는 길에 어제 사지 못한 책이 눈에 밟힌다고 해서 보수동책방골목엘 들렀다. 일본 문고본 여러 권과 보기 드문 잡지 몇 권을 챙겨 돌아나오는 길에 만화책으로 꽤나 유명한 국제서점에 들렀다. 최종규 선생님은 그곳에서도 귀신 같이 숨은 책을 척척 찾아내어 살펴보시길래 책방 구석까지 들어가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만화책 더미를 훑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만화책 꾸러미를 보곤 최종규 선생님께.. 2024. 10. 3. 살림글살이(1)―쓸 듯이 쓰기, 쓰며 살기 2024. 10. 2작년 이맘때쯤 누구나, 언제나 비평 쓰기를 할 수 있으니 함께 써보자는 뜻을 품고 이라는 모임을 열었습니다. 그때 ‘매일’을 그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펼치는 나날’이라 풀어써보았고 ‘비평’을 ‘되비추기’라 다르게 써보았습니다. ‘연습’은 ‘갈고 닦는 일’이라 풀어썼는데 이를 ‘쓸고 닦는 일’이라 적어도 좋겠다 싶어요. 이를 엮어보면 ‘나날이 되비추(려)는 쓸고 닦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새삼 살림이 이미 이런 뜻을 넉넉히 품었구나 싶어요. 살림은 나날이 새롭게 펼치는 일일 테니까요. 어제 모임을 가만히 돌아보다(되비추기) 스르륵― 오늘이 새롭게 펼쳐집니다. 살림이 나날이 새롭게 펼치는 일이라면 살림글 또한 나날이 기쁘게 써야겠구나 싶더군요. 살림글쓰기 모임 자리에서 자주.. 2024. 10. 2. 그림자가 비추다 2024. 8. 2 5월부터 진주를 오간다. 8월이 되었으니 한 계절을 오간 셈인데, 누구와도 사귀지 못하고 무엇도 좋아하지 못했다. 여전히 낯설게 오갈 뿐이다. 이번 주는 진주에서 하루 묵어야겠다 싶어 숙소를 잡고 그곳에서 남강까지 가는 길을 찾아보았다. 다들 여름휴가를 떠났는지 오늘 낮부터 모임에 나올 수 없다는 알림이 자꾸 울린다. 이런 날엔 서로 더 가까이서 살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저마다 쓴 글을 차근차근 짚어가며 이야기를 건네야겠다 싶어 여느 때완 다른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두었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모임을 정리하고 숙소로 가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뒤 남강 곁을 달렸다. 멀찌감치서 바라만 봐왔던 터라 그저 이뻐보이기만 했는데, 그 곁을 달리다보니 새삼 강이 어떻게 흐르는지 궁금했다... 2024. 8. 4. 발등에 입맞춤 2024. 8. 1늘 가까이 있고 싶으니까네 발곁에발바닥보단 발등에바닥을 딛은 뒤 걸음이 나타날 때발끝이 무심히 감춰둔 자리를 찾아 입 맞추고 싶으니까눈에 띄지 않는 가장 너른 자리늘 널 눈여겨보아왔다고아무렇지 않게 무릎을 꿇고허리를 숙여 절을 하지고개를 떨구고 더 아래를 바라보면세상엔 너 밖에 없어내겐 입술 밖에 이번주 모임 글을 읽다가 마음 한켠에 맺힌 그림 한 자락이 떠올라 한달음에 써보았다. 잘 썼는지 못 썼는지보다 마음을 담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 시엔 내 마음이 담겼다. 줄글로 썼다면 날아가버리거나 깎여 나갔을지도 모른다. 순간을 잡아채는 시라는 너른 터를 더 누비며 마음껏 마음을 담아보고 싶다. 닮고 싶은 것도, 닿고 싶은 것도 담아야지. 최종규 선생님과 함께 여는 자리에서 늘 10줄짜.. 2024. 8. 2. 작게 2024. 6. 8 며칠 동안 수업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래가 끓고 목이 잠겼는데, 이렇다할 이유를 찾진 못했다. 이럴 때 몸과 마음을 더듬어보게 되는데, 적어도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달치 정도는 챙길 수 있어야 하지 싶다. 먹고 자는 일, 마음 쓰고 생각한 것들를 차분히 챙긴다면 목이 잠긴 까닭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어제 일도 가물거리는 형편이다. 나날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나아지고 있어서 가볍게 뛰어봐야겠다 싶었다. 달리기가 이럴 때 몸과 마음에 어떻게 이바지 하는지 살펴보고도 싶고, 혹은 얼마나 훼방을 놓는지도 궁금해서 여느 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나섰다. 달리다가 힘들다 싶으면 언제라도 멈추고 돌아갈 수 있는 ‘장림-다대포해수욕장’ 길이 나아보였지만 감천항을 끼고 달리고 싶어.. 2024. 6. 8. 작은 배움 / 한 숨 두 숨 2024. 5. 18 작은 배움꾸역꾸역 하는 습관이 내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고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쉬지 않고 오르막길을 모르면서 알게 되었다. 중간에 쉬는 사람들, 누워 있는 사람들,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난 천천히라도 올라가야지, 난 빨리는 못 가더라도 쉬지 않고 가야지, 멈추지 않고 가야지라고 여겼지만, 한참을 올라가고 나니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에 붙들린다. 허벅지에 커다란 돌멩이가 두 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몸은 이 정도 오르막길은 견뎌내지 못하구나. 그럴 때는 가만히 서서 혹은 한쪽에 비켜서 앉아서 쉬었다가 가야겠구나.오늘 나는 내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몸을 힘들게 했지만 오늘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음 번엔 더 잘 쉬어야겠다. ‘꾸역꾸역’이.. 2024. 6. 5. 일 하는 사람(1) 2024. 5. 18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하고 잠시도 쉬지 않고 차를 몰아서 강릉까지 왔다. 거리로 치자면 400km가 넘는데, 가까운 곳조차 차로 가보지 못했기에 여러모로 긴장이 되었지만 방법이 없어서 차를 몰고 먼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포항을 지나고 울진 어귀에 이르렀을 때, 거리로 치자면 200km 정도 지났는데 그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7~8년 전에 내 친구 세희가 늦은 밤 차를 몰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세희가 내게 이르기를 ‘일 마치자마자 너 보려고 쉬지도 않고 한 달음에 온 거야. 너가 너무 보고 싶어서’라고 했는데, 난 그게 세희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여기고 한 번 씩- 웃어주고 말았는데, 오전부터 오후까지 한숨도 쉬지 않고 일한 뒤에 곧장 강릉까지.. 2024. 6. 4. 조금씩 찬찬히 들여다보면 2024. 5. 610년 전쯤에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데, 내 말엔 대충 고개만 끄덕이는 것 같아 눈동자를 보니 내 얼굴 구석구석을 흘끔거리는 거였다. 그때 나는 이 사람은 내 얘기에 집중하지 않고 있구나 정도로만 여겼는데 요즘에 와서 그 남자가 왜 이야기 나누는 데 집중하지 않고 얼굴을 흘끔거렸는지 알 것도 같다. 거기에 숨은 뜻이 있다기보단 '그러기도 하는구나' 싶은 정도이지만 그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으니 생각지 못한 작은 작은 매듭 하나를 푼 느낌이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땐 '고백'하려는 힘이 느껴져 애써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할 때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때때로 그저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걸 이제서야 어슴푸레 느낀다.. 2024. 5. 6. 낯선 고향 쪽으로⏤코로만 숨 쉬기(5) 2023. 12. 8 못해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달려야지 싶지만 자꾸 미뤄지고, 마음을 크게 먹어야 나설 수 있는 걸 보면 달리기를 살림이라 꺼내놓을 수 없겠구나 싶기도 하다. 애써 모른척, 마치 어제 본 동무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냥 아무렇지 않게 나가야겠다 마음 먹고 달릴 채비를 갖춘다. 어플을 확인해보니 달린지 20일이 넘었기에 오늘은 더 천천히 달려야겠다 마음 먹고 나섰다. 거리나 속도를 가늠하지 않고 코로만 숨 쉬며 비에 흠뻑 젖는 것처럼 밤공기에 몸을 내맡기며 나아간다. 새삼 나-아-가-다란 낱말을 곱씹게 된다. 달리기를 몸과 마음을 펼치는 자리라 여겨왔기에 '펼치다'란 낱말에 대해선 나름으로 풀이를 해보고 짧게나마 적어보기도 했다. 달리는 동안 드문드문 '나아가다'란 낱말을 떠올리게 되는 때.. 2023. 12. 24. 이전 1 2 3 4 5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