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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5

그 사람의 말(투) 2020. 6. 27 권여선의 새 소설집엔 늙은 레즈비언의 (희박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란 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소설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 미묘한 고갯짓은 오로지 디엔만이 할 수 있었고 그런 모습으로 사진에 찍힌 적도 없으니 그것은 디엔과 더불어 영영 사라져버렸다.”(91~92쪽) 오래전에 곁을 떠난 연인의 ‘고갯짓’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서명일 것입니다. ‘디엔’의 그 서명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연인이었던 ‘데런’밖에 없겠지요. 연인이란 그렇게 오직 서로만이 알아볼 수 있는 ‘희박한 언어’를 공유하고 있는 관계이기도 하겠습니다. 마음의 모국어라고 할까요, 희박한 언어를 공유하던 이가 떠나버리면 (마음의) 모어를 잃어버린 상태가 되어버려 내내 외국인처럼 살아가야.. 2023. 1. 9.
입말과 입맛-권여선론 먹는다는 것(1) 권여선의 소설은 불안정한 삶의 조건과 세상에 대한 불신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인물들로 가득하다.[각주:1] 손쓸 수 없는 운명에 붙들린 그들의 집요하고 지독한 응시엔 지난 과오를 회억하는 성찰의 기미가 얹혀 있지만 언제나 그보다 도드라지는 건 자기혐오나 출처를 알기 어려운 타인을 향한 과잉된 증오심이다. 기억을 헤집으며 곳곳에서 증오의 단서들을 쌓아올리지만 거의 모든 인물들이 곧 증발해버릴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이는 것은 좀처럼 식지 않는 뜨거운 정념 때문일 것이다. 초기부터 줄곧 그런 작품을 써온 권여선의 소설세계에서 『토우의 집』은 다소 이례적인 작품처럼 느껴진다. 삼악산 남쪽면을 복개해 산복도로를 만들면서 생겨난 동네인 삼악동이 삼벌레고개로 불리는 이력을 차근차근 안내하는 것으로.. 2020. 7. 19.
문학의 곳간 66회-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 2020) [문학의 곳간 66회] 안내 지난달엔 구봉산 숲길을 함께 걸으며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선집을 함께 읽었습니다. 🌿☘️🌳어떤 이에겐 산책으로, 어떤 이에겐 산행으로 기억되겠지만 둘러앉아 시편을 낭독했던 순간은 모두에게 뜻깊은 시간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6월의 '문학의 곳간'에선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문학동네, 2020)을 함께 읽습니다. 2013년 10월(문학의 곳간 3회)에 권여선 작가의 (문학과지성사, 2013)을 함께 읽었는데, 7년만에 문학의 곳간에서 함께 읽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기대가 됩니다. 권여선, (문학동네, 2020) 일시 : 2020년 6월 27일 토요일 오후 3시~ 인원 : 열 명(마감 되었습니다) 장소 : 중앙동 '회복하는 생활'(중구 40계단길 10, 4층) 참가.. 2020. 6. 16.
낭송 러닝 2020. 2. 27 다대포 2020. 2 2월 27일 저녁은 비를 맞으며 달렸다. 흩뿌리는 비여서 곧 그치겠거니 생각하며 달렸는데, 더 거세지진 않았지만 그치지도 않았다. 노면이 미끄러워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달렸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다대포해수욕장을 돌아 복귀하는 길엔 잠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고 불길한 느낌의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부를 수 있는 구절만 단말마처럼 외쳐되는 형색이었던 터라 고라니 울음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괴성’은 지르면서도 곧장 중단하고 싶어진다.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와 함께 뛸 수 있다면, 시를 낭송하며 뛴다면? 외우는 시가 없어 곧장 시도 하진 못했지만 복귀하는 길위에선 .. 2020. 3. 8.
전작 읽기_권여선(1) 전작 읽기_권여선(1) 에서 전작 읽기를 시작합니다. 한 작가가 써내려 간 작품을 빠짐없이 따라 읽으며 한 사람이 가닿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희망)을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오랫동안 보살펴온 희망과 염원의 걸음 곁에 각자의 발자국을 남겨봅시다. 누군가의 초대로만 열리는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나직하게, 긴 호흡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첫 번째 작가로 권여선의 장편 소설 두 권과 소실집 두 권을 읽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 상처가 있으며 곳곳에 편재한 폭력에 바스러져가는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 그러나 부서짐 속에서 기어코 빛을 내는 존재의 힘을 마주하게 하는 소설을 함께 읽으며 가혹한 세상을 넘어가는 방식을, 살아내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으면 합니다.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 2019.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