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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례7

채식주의자_이별례(6) 2016. 2. 29 오늘처럼 바람이 많이 불던 날, 한 친구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두 시간을 넘게 걸었던 어느 때를 기억한다. 채식(vegan)을 하는 친구임을 알고 있던 터라 멸치 육수를 내지 않은 된장찌게나 먹을 만한 비빔밥 집을 찾기 위해 경성대에서 대연동까지, 대연동에서 다시 문화회관까지 매섭게 불던 바람을 견디며 오래도록 걸었다. 그때 농부가 씨를 뿌려 벼를 수확하는 지난한 과정과 긴 시간에 비한다면 한끼의 식사를 위해 이 정도 걷는 것쯤은 별 거 아니라며 유쾌하게 웃기도 했다. 세상엔 많은 쾌락이 있지만 ‘걸으며 대화하는 것’이 그 어떤 쾌락에도 비할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 또한 일찍이 알게 되어버린 터라 한끼의 식사를 하기 위해 대화하며 걸었던 그 먼 길을 ‘고달픈 것’이라기보단 차.. 2016. 2. 29.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다―이별례(8) 2016. 1. 26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더라는 ‘그레고르 잠자’만큼은 아니겠지만 과할정도로 진했던 눈썹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홀라당 다 빠져버렸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의 황망함을, 좀처럼 납득할 수 없었던 그 당혹스러웠던 순간을 가만히 기억해본다. 거울을 얼마나 자주, 또 자세히 들여다보느냐와 상관없이 자신의 얼굴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자신이 속해 있는 체제의 구조를 안다는 것의 어려움과 다르지 않다.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이 그대로 앎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늘 있던 그 자리에선 영영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영역이 있다. ‘얼굴’은 이/목/구/비로 이루어진 표면적인 조합이 아니라 시스템의 명령이 들어오고 나가는 영역(들뢰즈/가타리)이며 고유.. 2016. 1. 27.
해변이 남긴 무늬_이별례(7) _대마도의 어느 해변 2015. 5 전날 밤 태풍이 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간밤에 별일 없었냐고 물었지만 우린 괜찮았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태풍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유난히 거세었던 그날의 비바람을 4인용 텐트가 막아주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우리는 깊은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해변을 걸었다. 해변에 남겨진 거대한 무늬 위를 걷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간밤에 휘몰아친 태풍이 남긴 무늬일 것이다. 그리고 휩쓸려갔다가 다시 휩쓸려오기를 반복하며 끝내 휩쓸려가지 않고 남아 있는 해변에 모여 있는 모래들의 무늬일 것이다. 어딘가로부터 떠밀려온 작은 자갈의 무늬이기도 할 것이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흔적을 남기는 바람의 무늬이면서 저 멀리 달의 중.. 2016. 1. 16.
안다는 것의 비용–이별례(5) 2015. 9. 9 매해 한 두 차례 앓곤 했던 감기 몸살에도 약 한번 쓰지 않고, 십수 년 간 병원 출입조차 하고 있지 않던 내가 지난 여름 꽤 여러 차례 한의원을 찾았던 건 병원을 찾아가야 할만큼 유별나게 아픈 곳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갑작스레 몸이 나빠진 친구를 따라 간 곳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체질을 8가지로 분류해 그에 맞는 처방과 진료를 해오고 있는 꽤 유명한 한의원이었는데 이참에 체질을 통해 스스로 몸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내심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한의원 또한 유명한 곳이 으레 그러하듯 ‘긴 시간의 기다림-고작 1~2분의 진료-기계적인 문답-질문보다는 지시사항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함’ 따위의 근대 의료 체계의 훈육적 도식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2015. 10. 12.
이별례(4)-기적과 지옥 2015. 7. 1 모든 만남은 재회(再會)다. 만남이 언제나 두 번째인 것은 헤어짐 없이는 그 어떤 만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삶이 빈껍데기이듯 이별없는 만남은 변덕일 뿐이다. 재회란 ‘우리는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라는 낭만적인 인연론에 기대어 있기보다 ‘우리는 언젠가 헤어진 적이 있다’는 서늘한 이별을 조건으로 한다. 다시 만났다는 것은 기적이면서 동시에 지옥이다.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았음에도 끝내 ‘다시’ 만났다는 것은 기적이지만 도리없이 ‘다시’ 만나버린 건 너와 내가 같은 곳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맴돎의 지옥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만남이 떨림을 주된 정서로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기적과 지옥 사이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만났으며 (다시) 헤.. 2015. 7. 1.
이별례(3)-독신(獨身)하다 2015. 6. 7 백현진(+방준석 +김오키)의 공연을 보고 돌아와 그의 솔로 앨범 (2008)을 찾아 듣는다. 3시간 가까이 이어졌던 공연은 적막하고 기괴하고 담담하며 절절했다. 위악과 절망을 섞고 쌓아도 오랜 시간동안 단련된 쓸쓸함의 바탕 위라면 쓸데 없이 번지거나 언거번거 하지 않는다. 백현진의 공연은 쓸쓸함과 처연함의 세계에 버티고 서서 의지와 의욕을 길어올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 ‘흥’ 속에서 나는 ‘단 한번만 허락되는 경험’이라는 구절을 새겼다. 예술은, 음악은, 사람은, 생활은, 삶은 ‘단 한번만 허락되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어떠한 반주도 없이 홀로 담담하게 노래를 부르던 모습, 말과 노래가 섞여 넘나들던 오프닝을 되새기며 알게 된다. 그건 어떤 메시지를 전하거나 표현하기 위한 .. 2015. 6. 7.
이별례離別禮 (2) 2015. 6. 1 “1972년 9월 18일에 이현필이 창설한 금욕 수도 집단인 동광원 벽제 분원에 필자가 스승 류영모를 모시고 원생들의 수련 모임에 참석한 일이 있다. 류영모가 강사로 초청되었다. 류영모는 밤 10시부터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다. 그러고는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필자도 따라 일어났다. 함께 맨손 체조를 하고는 손바닥으로 몸의 살갗을 문질렀다. 냉수 마찰 대신에 살갗을 문질러 피돌리기를 하는 것이다. 다 마치고 방을 거닐던 스승이 털석 주저앉았다. 이 사람은 스승이 뇌빈혈을 일으켜 쓰러지는 줄 알았다. 퍽 쓰러지듯이 주저앉으면서 하는 말이 “그도 지금쯤은 일어났을 터인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생전에 돌아오려는지.” 류영모가 ‘그’라고 한 이는 물을 것도 없이 제자 함석헌을 .. 2015.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