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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말차(抹茶)를 마시며

by 종업원 2018. 4. 22.

2018. 4. 22

 

  좋아하지도 배우려 하지도 않았지만 차()가 이미 생활 속에 들어와 있었다. 어느 공부 모임의 말석에서 얻어 마셨던 이름 모를 차와 표정 없이도 온화했던 사람들의 어울림이 조형했던 그 장소의 온기가 내 영혼의 귀퉁이를 물들였기 때문일까. 매일매일 안달나는 커피라는 기호품에 질렸기 때문일까. 점점 표정이 옅어지는 조용한 생활이 차의 세계로 이끌리고 있었기 때문일까. 스치듯 지나치기만 했던 중앙동 좋은차에 발길이 닿았고 그곳 사장님이 쉼 없이 내려주었던 차를 몇 대접이나 얻어 마시면서 그만 차의 세계(대접)에 빠지고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무조건 좋다며 몇년만의 만남이었음에도 좋은차에 가는 길이라는 내 말에 오랜 친구인 냥 덥석 손을 잡았던 누리에사장님의 굵은 손마디에서 전해지던 온기와 함께 그날 처음으로 말차를 대접 받았다. 말차를 마시며 내게도 차를 마시는 친구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나직이 독백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다 할 다기(茶器)도 없이, 최소한의 절차나 형식도 모른 체 마셔왔기 때문일까. 고작 몇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녹차, 황차, 우롱차를 우려 마신지 수년이 흘렀다. 그간 차를 마시는 생활에 입회했음을 여러 차례 감지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그에 대해 별다른 말이나 생각이 영글어간 느낌이 거의 없다. 차는 있는 듯 없는 듯, 아니 그보단 꼭 있어야 할 곳에 없는 듯 무심히, 허나 짐짓 분명한 태도로 내 생활 속에 함께, 있다. 고작 두어 잔 마셨을 뿐인데, 우연히 대접 받았던 말차가 서서히 우러났던 것일까. 몇 주 전부터 말차를 마셔야겠단 생각이 들어 좋은차에 들렀다. 서울 사는 친구에게 보낼 황차와 우롱차를 산 뒤에 말차를 마시기 위해 필요한 다기 몇 개를 함께 구매했다. 간단하게 말차 만드는 방법을 눈으로 배웠는데, 집에 돌아와 막상 만들어보니 말차의 풍미를 음미할 수 있는 특유의 거품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매일 하루 두 번씩 말차를 마셨다. ‘격불의 방법도 모른 체, 욕심 없이 매일매일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친구가 방문하면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내 손을 잡고 찻집에 들어가 말차 한잔을 대접해주었던 그날의 호의가 의도 없이 내 영혼의 어딘가에서 우러나고 있기 때문일까.

 

  말차를 마시며 나는 뜻밖의 의욕 하나를 품게 되었는데, 그건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차를 내어줄 수 있게 차반(茶盤)을 늘 정히 준비해두는 것이었다. 오기로 약속한 친구가 없더라도, 지금 당장 필요 하지 않더라도 미루지 않고 매일매일 깨끗하게 준비해두는 작은 장소를 생활 한켠에 마련하는 일은 집안에 보이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를 모른 체 하며 돌보는 것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내 맘처럼 되지 않는(의도를 비켜나가는) 말차를 집중해서 만드는 일은 생활 속에 아직 오지 않은 손님을 기다리는 자리를 마련해두는 일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오늘 밤, 말차를 만들며 잠시 차선이 다기에 닿지 않은 듯, 손목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채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수십 회 미끄러지듯 격불을 했는데 생각지 못한 풍성한 거품이 만들어졌다. 세 번, 말차를 나누어 마시며 도도하고 기품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곁에 둔 듯, 오래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멀리서 온 친구의 나직한 목소리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 듯, 없는 듯 무심히 그러나 분명히 내 생활의 한켠에서 천천히 우러나고 있는 온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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