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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운동14

도둑 러닝(1) 2021. 4. 20 미루고 미루다가, 며칠을 벼르고 벼르다가 나왔다. 날이 많이 따뜻해져서 반바지를 입고 달렸다. 미루고 미룬 건 귀찮아서가 아니라 주치의라고 생각하는 한의원 선생님의 ‘땀을 흘리면 안 된다’는 단호한 처방을 어길 수가 없어서인데, 이성과 상식으론 납득이 되지 않는 처방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다. 러닝을 하면 아무래도 건강해지니 뛰고나면 좋다는 게 ‘상식’이지만 내 경우엔 달리고나면 건강을 걱정해야 할 판이니 이 속앓이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달리기는 일탈적인 성격이 강하다. (지난 겨울, 달리는 동안 자꾸만 오정희의 을 떠올렸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은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생활에 공을 들이고 있어서 대개 밤 10-11시쯤에 달렸던 것과 .. 2022. 10. 27.
오늘도 우리는 테이블 위에서 우물을 길어올릴 테니까 ‘아침에는 책상이 되고 점심엔 식탁이 되며 저녁엔 테이블이 되는 곳은?’ 이건 사물이 아니라 장소에 관한 수수께끼다. 사람들의 손길이 어울려 그곳에 숨결을 불어넣을 때 장소가 조형된다. 서로의 손길이 만나는 곳, 나누고, 만들고, 더하고, 덜기도 하는 곳은 언제나 테이블 위에서다. ‘책상’은 어쩐지 주인이 있을 것만 같고 ‘식탁’은 음식이 없다면 조금 쓸쓸해진다. 하지만 ‘테이블’은 손가락을 가지런히 올려두기만 해도 충분하다. 모든 장소엔 테이블이 있다. 그 위에서, 그 곁에서 사람들이 만나 어울린다. 엔 세 개의 테이블이 있다. 하나의 테이블은 당연히 책을 위한 자리로 사용 되고 다른 하나는 책방 방문객들이 앉아서 책을 보는 곳으로, 나머지 하나는 주로 주인장의 몫으로 사용 되는 듯하다. 생활글쓰기 모.. 2020. 7. 21.
낭송 러닝 2020. 2. 27 다대포 2020. 2 2월 27일 저녁은 비를 맞으며 달렸다. 흩뿌리는 비여서 곧 그치겠거니 생각하며 달렸는데, 더 거세지진 않았지만 그치지도 않았다. 노면이 미끄러워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달렸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다대포해수욕장을 돌아 복귀하는 길엔 잠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고 불길한 느낌의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부를 수 있는 구절만 단말마처럼 외쳐되는 형색이었던 터라 고라니 울음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괴성’은 지르면서도 곧장 중단하고 싶어진다.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와 함께 뛸 수 있다면, 시를 낭송하며 뛴다면? 외우는 시가 없어 곧장 시도 하진 못했지만 복귀하는 길위에선 .. 2020. 3. 8.
가을 햇살 2019. 10. 9 좋아하는 것들,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파괴 하기. 오늘도 그 일을 한다. 부서질까 염려하며 두 손으로 매만지던 것을 불현듯 강하게 쥐어 터트려버리거나 애면글면 하며 보살펴온 것들에 고착되지 않기 위해 무심한척 애써 거리를 두다가 뜻없이 방치해버리는 일들. ‘나도 좀 살자’며 등을 돌리는 순간 숨이 멎어버리는 것들, 기지개를 켜자 파괴되는 것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영영 떠나버리는 것들. 말 없이 푸르기만 한 식물에 둘러 싸여 있는 것 같다. 짐작할 수 없는 방향으로 한없이 뻗어나가는 덩굴에 휘감겨 있는 생활에선 매만지는 모든 것들이 모욕적인 시선으로 돌아보는 것만 같다. 손수 지어 먹던 밥이 성의없는 한끼가 되고 아껴두었던 영화를 잠들기 전에 틀어놓고 자버린다. 보고 싶은 사.. 2019.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