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복하는 생활54

산책 없이 2017. 8. 12 해질녘 몰운대를 걸었다. 처음 걷는 길 위에서 힘없이 사라지는 발자국 소리가 그동안 모르고 있던 잘못을 책망하는 것 같았다 . 모르는 길을 바장이며 조은의 시집을 읽었다. 시는 잘 읽히지 않았고 걸음도 잘 되지 않았다. 손쓰기엔 늦어버린 통지서를 받은 사람 마냥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한번도 산책을 하지 않은 생활을 헤아려보았다. 손바닥 위의 모래처럼 형체 없이 사라져버리는 애틋한 것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고 그 무엇도 키우지 못했다. 몰운대 전망대 쪽으로 가지 않고 귀퉁이를 향해 걸었다. 초식동물처럼 두리번거리며 복숭아 하나를 달게 먹었다. 파도를 코앞에 두고 앉아 바람에 맞서 날개짓하며 허공에 멈춰 있는 갈매기들을 바라보았다. 낚시꾼들이 가끔씩 낚는 물고기들은 크기가 작았지만.. 2017. 8. 19.
무명의 무덤이 이끄는 발길 2017. 4. 16 송도에서 장림으로 삶터를 옮긴지 반년이 다되어간다. 그 흔한 공원 하나 없는 동네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 아이들로 넘쳐난다. 아이들의 몸짓을 눈으로 쫓다보면 퍽이나 애잔한 마음이 들곤하지만 인간적인 세속에 침윤되지 않은 것 같아 작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아이들을 등뒤로 하고 뒷산을 오른다.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아 동네 어귀만을 몇번 맴돌다가 매번 걷기를 포기했었지만 이 봄볕만큼은 외면하기가 힘들다. 당연히 산책로나 이정표 따위는 없어 길은 자주 끊어져 왔던 길을 돌아나가야 하는 일이 잦다. 이쯤되면 길을 따라 걷는 것을 포기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파른 언덕 쪽으로 발길을 무심히 돌려본다. 한낮의 뒷산이긴해도 인적도, 인기척도 없는 곳에서 길을 .. 2017. 4. 28.
부상을 안고 2016. 12. 3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급격히 쇠락하는 오후 6시의 햇살 아래에서 심호흡 하듯 새긴 말이 있다 . 오후 내내 갑자기 호흡이 가쁘고 심장이 가파르게 뛰어 몸이 왜 이러나 노심초사 했다. 내 몸을 급히 무너트리는 원인을, 무심한 그 폭력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당장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까지. 노골적이고 추악한 폭력이지만 짐짓 모른 척, 은밀하게, 집단적으로 눙치며 행해지는 것이기에 전면적으로 대응하지 않고는 맞서는 것이 쉽지 않은 난관 앞에서 차마 싸우지 못하고 다만 지나가버릴 때까지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 싸움을 시작할 수는 있다. 이런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단 끝까지 싸울 수 있는가,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해 답.. 2017. 4. 28.
하지 않음의 생산성 2017. 1. 14 독신 생활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는 자유롭게 이것 저것을 해보는 일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무언가를 중단해보는 일에 있다. ‘1인 가정’이라는 삶의 형식이 여전히 사회 속에서 버성기는 형편 속에서 독신 생활이라는 것 또한 매순간 귀찮음과 싸워야 하고 하찮음의 힐난을 견뎌야 한다. 귀찮음과 하찮음의 협공을 견뎌낸 성과란 마침내 무언가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부터 오는 성취감에 있지 않다. 자유로움의 참맛은 무언가를 하는 데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는 데 있기 때문이다. 8년 간 이어지고 있는 나의 독신 생활을 헤아려보아도 기억할만한 성취는 마침내 무언가를 중단했던 순간에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일조차 또 다른 무언가를 중단할 때만 가능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 2017.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