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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47

도시락의 세계 2018. 2. 14 작년까지만 해도 손도 대지 않았던 ‘도시락’을 요즘은 가끔씩 먹는다. 매식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원고 마감과 강좌 준비 때문에 근래는 대충 때우는 수준으로 끼니를 챙기다보니 오늘처럼 도서관에 올 경우엔 핑계 삼아 이것저것 먹어보게 된다. 오늘 저녁은 ‘한솥도시락’에서 제육치킨 도시락을 먹었다. 다대동 매장은 대체로 한산한 편이어서 책 한 권을 챙겨가서 느긋하게 먹는 편인데, 오늘에서야 ‘도시락의 세계’에 입회한 느낌이다. 직사각형의 스티로폼 용기 아랫쪽엔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밥의 영역과 그 주변을 다섯 개의 반찬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는데, 넘칠듯한 기운 속에서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정확하게 나뉘어 담겨 있다. 모든 칸이 명징하여 하나도 허투루 담기지 않았.. 2018. 2. 14.
어느 부족의 이사 2017. 12. 23 오랜만에 들른 본가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기이할 정도로 변함없었지만 저 멀리 보이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곧 폐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86년 늦봄, 연산 7동 ‘고개만디’에서 또 다른 만디인 성북고개로 이사 왔을 때 아버지는 이라크에 있었고 어머니는 파출부부터 식당 주방일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일용직 노동자였다. 먼 이국 땅에서 아버지가 보내온 ‘딸라’에 빚을 더해 생애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한 어머니는 하루에 ‘세 탕’까지 뛰고도 고스톱을 치러 다닐 만큼 삶의 의욕으로 넘쳤다. 이농한 도시 빈민 출신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내 부모 역시 부자가 되지 못했다. 다만 육체 노동의 세월 속에서 유일한 재산이었던 ‘몸뚱이’가 빠르게 마모되어 두 사람 모두 나란히 병을 .. 2018. 1. 12.
덕담도 기억해야 한다 2017. 8. 16 가끔씩 만나 밥이라고 먹는 관계는 다섯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하는 형편이니 술자리가 마련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겠다. 몇년만에 한 소설가를 늦은 술자리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급했고 부주의해보였다. 나 같이 일상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의 눈엔 사람을 향한 그의 호의가 유아적인 과잉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가 여전했다기보단 그를 보는 내가 여전했다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만나지 못한 사이 그는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할말도 없었고 하고 싶은 말도 별로 없었기에 나는 자주 술잔을 비웠다. 마치 그러기 위해 술잔을 비우기라도 한 듯 한때 지근거리에서 비슷한 생애사의 경험을 공유했던 이들을 향한 섭섭하고 억울했던 감정들이 증상처럼 활성.. 2017. 8. 20.
산책 없이 2017. 8. 12 해질녘 몰운대를 걸었다. 처음 걷는 길 위에서 힘없이 사라지는 발자국 소리가 그동안 모르고 있던 잘못을 책망하는 것 같았다 . 모르는 길을 바장이며 조은의 시집을 읽었다. 시는 잘 읽히지 않았고 걸음도 잘 되지 않았다. 손쓰기엔 늦어버린 통지서를 받은 사람 마냥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한번도 산책을 하지 않은 생활을 헤아려보았다. 손바닥 위의 모래처럼 형체 없이 사라져버리는 애틋한 것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고 그 무엇도 키우지 못했다. 몰운대 전망대 쪽으로 가지 않고 귀퉁이를 향해 걸었다. 초식동물처럼 두리번거리며 복숭아 하나를 달게 먹었다. 파도를 코앞에 두고 앉아 바람에 맞서 날개짓하며 허공에 멈춰 있는 갈매기들을 바라보았다. 낚시꾼들이 가끔씩 낚는 물고기들은 크기가 작았지만.. 2017. 8. 19.
무명의 무덤이 이끄는 발길 2017. 4. 16 송도에서 장림으로 삶터를 옮긴지 반년이 다되어간다. 그 흔한 공원 하나 없는 동네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 아이들로 넘쳐난다. 아이들의 몸짓을 눈으로 쫓다보면 퍽이나 애잔한 마음이 들곤하지만 인간적인 세속에 침윤되지 않은 것 같아 작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아이들을 등뒤로 하고 뒷산을 오른다.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아 동네 어귀만을 몇번 맴돌다가 매번 걷기를 포기했었지만 이 봄볕만큼은 외면하기가 힘들다. 당연히 산책로나 이정표 따위는 없어 길은 자주 끊어져 왔던 길을 돌아나가야 하는 일이 잦다. 이쯤되면 길을 따라 걷는 것을 포기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파른 언덕 쪽으로 발길을 무심히 돌려본다. 한낮의 뒷산이긴해도 인적도, 인기척도 없는 곳에서 길을 .. 2017. 4. 28.
부상을 안고 2016. 12. 3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급격히 쇠락하는 오후 6시의 햇살 아래에서 심호흡 하듯 새긴 말이 있다 . 오후 내내 갑자기 호흡이 가쁘고 심장이 가파르게 뛰어 몸이 왜 이러나 노심초사 했다. 내 몸을 급히 무너트리는 원인을, 무심한 그 폭력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당장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까지. 노골적이고 추악한 폭력이지만 짐짓 모른 척, 은밀하게, 집단적으로 눙치며 행해지는 것이기에 전면적으로 대응하지 않고는 맞서는 것이 쉽지 않은 난관 앞에서 차마 싸우지 못하고 다만 지나가버릴 때까지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 싸움을 시작할 수는 있다. 이런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단 끝까지 싸울 수 있는가,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해 답.. 2017. 4. 28.
하지 않음의 생산성 2017. 1. 14 독신 생활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는 자유롭게 이것 저것을 해보는 일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무언가를 중단해보는 일에 있다. ‘1인 가정’이라는 삶의 형식이 여전히 사회 속에서 버성기는 형편 속에서 독신 생활이라는 것 또한 매순간 귀찮음과 싸워야 하고 하찮음의 힐난을 견뎌야 한다. 귀찮음과 하찮음의 협공을 견뎌낸 성과란 마침내 무언가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부터 오는 성취감에 있지 않다. 자유로움의 참맛은 무언가를 하는 데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는 데 있기 때문이다. 8년 간 이어지고 있는 나의 독신 생활을 헤아려보아도 기억할만한 성취는 마침내 무언가를 중단했던 순간에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일조차 또 다른 무언가를 중단할 때만 가능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 2017.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