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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지기52

<세 계절 읽기 모임> 2기-동시대 한국 소설을 읽으며 걷기(총 5회) _design hiyo 소수의 인원이 모여 조용히 시작했던 이 2기 구성원을 모집합니다. 세계문학을 읽었던 1기에 이어 2기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최근 소설집’을 함께 읽습니다. 이야기를 지도로 삼아 동시대의 면면을 세세히 살피며 소설이 나아간 자리에까지 함께 걸어보고 소설이 멈춘 자리에선 각자가 일구고 있는 현장의 걸음으로 더 걸아가보고자 합니다. * 매회 1시간 가량 김대성 문학평론가의 별강이 있을 예정이며 이어 구성원들의 대화/토론의 시간으로 이루어집니다. 1회 윤이형, (문학동네, 2016)_2016년 4월 5일 (화) pm 7시~ 2회 최정화, (창비, 2016)_2016년 4월 19일 (화) pm 7시~ 3회 정용준, (문학동네, 2015)_2016년 5월 3일 (화) pm 7시~ 4회 김엄지.. 2016. 3. 10.
시간강사라는 주변 : 곁과 편 시간강사라는 주변 : 곁과 편 데모:북 + 로컬데모 연속간담회 로컬데모의 이번 연속 간담회와 데모:북은 ‘비정규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텍스트와 함께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대담과 토론을 연속해서 진행합니다. 부산지역에서 활동하는 철학, 예술, 인문학 분야의 비정규 시간강사 분들이 대담자와 토론자로서 함께 참여해주실 예정입니다. 물론 또한 현장에서는 지역예술인들의 작은 작품들을 구매하실 수 있는 작은 마켓과 로컬데모의 헌책 판매도 진행됩니다. 로컬데모? 는 지역의 문화, 예술적 장에서 ‘희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협의 구성체’입니다. 제도적 문화, 예술이 일구어 나가는 텃밭은 물론이거니와 그곳에 소속되지 않았더라도 더불.. 2015. 12. 16.
낮고 가난한 세속의 숲 2014. 10. 21 고작 2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갔을 뿐인데 언제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 글 한편을 올려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한 발짝 바깥으로 나와 있었음에도 매번 귀한 시간을 선물로 받았던 공부 자리가 내게도 있었다. 내/외적인 이유로 공부 자리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게 불가능해졌을 시기, 책마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손을 보태고자 이틀동안 읽고 쓴 글이었음을 힘겹게 떠올려본다. 내게 허락되었던 그 하루, 이틀의 시간동안 글을 읽고 쓰면서 '다시 이 글로, 이 자리로 돌아올 것'을 내내 새겼지만 지금은 그곳이 어디인지, 돌아갈 수 있는 곳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별스러울 것 없는 쪽글이지만 글을 쓰면서, 또 쓰고 나서도 곡절이 많았던 이 글을 무심히 읽으며 그립고 보고 싶지만 연.. 2014. 10. 23.
지도에 없는 그곳에서, 블루스를 2014. 10. 20 오래 전에 썼던 글의 원고를 우연히 발견해 여기에 올려둔다(덕분에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 파일도 찾았다). 등단한 이듬해인 2008년 여름에 썼던 글이다. 당시 부산 문단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각종 토론회와 문학 행사에 참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시도 했고 알 수 없는 막연한 느낌들로 충만했으며 아낌없이 배웠던 시절. 조금 들떠 있었던 것은 지역 문학에 대한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과도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찾는 사람과 나를 반기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피로하지도 않았던 시절. 무척이나 성기고 그 때문에 과잉된 글이지만 한편으론 싱겁고 또 한편으론 싱.. 2014. 10. 20.
매일매일 성실한 기적   2014. 10. 18 *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아니 여름을 넘어갈 때까지 나름대로 애를 써가며, 성실히 살았지만 내 삶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기적은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내게 닥친 참혹하고 참담한 일들로 삶의 뿌리가 뽑혀나갔을 뿐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한 시인의 시집 해설을 쓰느라 보름 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여러모로 많은 이들에게 폐를 끼쳤다. 잠은 부족했지만 성실한 기적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어리석은 시간이었다. 글로써, 관계 맻음의 노동으로 무언가를 증명하고 바꾸려는 애씀, 그 안간힘이 어리석은 일인지 몰랐던 여름, 베를린. 매일매일 성실한 시간을 보낸다면 관계도, 세계도 기적을 잉태할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믿음에 기대어 썼던 어리석은 글 한 편. 그 여름,.. 2014. 10. 18.
2 : 8의 구원 2014. 10. 13 * 작년 이맘 때 기고한 글이 실린 독립 잡지를 오늘 등기로 받았다. 영화제 기간이었고 밀린 원고가 있었음에도 몇 가지를 포기하며 애를 써서 원고를 썼던 것은 지역/독립/영화/비평/잡지라는 의 포지션 때문이었다. 꽤나 늦게 도착한 셈이지만 우체부가 직접 전한 잡지를 펼쳐 잊고 있었던 글을 다시 읽어본다. 언젠가 에서 만났던 박준범 감독의 새 작품을 어서 빨리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난 시간도, 지난 장소도 모두 폐허다. ** 어떤 이유에서인지 잡지에 송고한 원고의 반단락이 누락 되어 있어 바로 잡아 올려둔다.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줘야만 하는 것 ‘선택’이란 무언가를 버릴 때만 가능하다. ‘가능하다’라는 술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이.. 2014. 10. 13.
물을 뿌리는 사람, 씨앗을 뿌리는 사람 * 나루세 미키오 영화 속의 물을 뿌리는 여자들 (1952) (1954) (1967)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예정대로 6회 지방 선거가 진행되었고 예상처럼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 정확하게 말해 바다에 빠진 수백 명의 아이들 중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체념과 덧없음을 외투처럼 입고 그 이물감을 견디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진짜 절망은 바로 그 체념과 덧없음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모두를 무력감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저 체념과 덧없음이라는 구조와 싸워야 한다. 싸워 버텨내야 한다. 얼마 전 에서 기획전으로 열린 나루세 미키오(成瀬巳喜男, 1905∼1969)의 영화들을 보면서 섬세하고 유려하게 묘사하고 있는 도저한 비애와 삶의 무상함을 탐닉.. 2014. 6. 24.
불쑥 내민 손 김은진 씨의 첫번째 책 『AT』(그린그림, 2014)의 발문으로 쓴 글. 부산의 작은 공간과 모임들을 순례하고 유랑하며 쓴 글들이 '그린그림'이라는 독립출판팀을 만나면서 '책'의 형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부산의 크고 작은 모임들과 장소들 또한 김은진 씨의 기록-노동 덕에 역사의 흔적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순례와 유랑의 걸음은 도시를 마을처럼 사(걷)는 보법을 닮아 있다. 김은진 씨가 만난 숱한 이들 또한 비슷한 걸음걸이를 하고 있을 게다. 그 걸음들이 함께 저자를 만들어 냈고 그와 동시에 작은 모임과 장소의 역사 또한 피어났다. 평범한 듯 보이는 이 책이 무척이나 비범해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출간 기념일 때 내가 은진 씨를 두고 '마을 작가'라 불렀던 것 또한 '소박함' 때문이 아니라 .. 2014. 2. 15.
약속이 키운 장소, 약속을 키우는 마을 2014. 2. 10 며칠 간 붙들고 있던 후기. 늘 그렇지만 써야 할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붙들고 있을 때 각종 아이디어들이 놀라울정도로 왕성하게 샘솟는다. 바로 그것이 글을 쓰는 숨겨진 이유 중 하나이며, 바로 그것이 굳이 마감을 하지 않/못하고 오랫동안 글을 붙들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써야 할 후기들이 산적해 있다. 누구도 청탁하지 않고 부탁하지 않은 글을 홀로 마감한다는 것. 그 막연함보다 그렇게 쓴 글들이 대개는 이상하고 가끔씩만 읽을만 하다는 것. '약속'이라는 명사와 '약속 하기'라는 타동사를 오가며 '든든'이라는 부사에 손을 뻗어보았다.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듯이, 마을이 키운 '마을 작가'의 탄생을 축하하고 또 기념하는 마음으로 한 문단 한 문단 써내려 갔다. 다.. 2014. 2. 10.
‘사이’의 동력(학) 1. 또 다시 검은 구름이 몰려와 한바탕 비를 뿌린다. 얼마나 내리고 또 언제 그칠 것인지 이미 데이터가 나와 있지만 설사 비가 그치지 않는다 해도 놀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측가능한 시스템에 익숙해질수록 외려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무덤덤해지기 때문이다. 아니 이 말은 다음과 같이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을 믿는다. 수많은 데이터는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사태들을 보조할 뿐이다. 오직 보이는 것만을 믿는다. 그러니 긴 장마로 붕괴되는 것은 ‘둑방’만이 아니다. 세계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믿음, 또 믿음에 대한 믿음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실패’가 없는 세계. 서둘러 종말과 파국이라는 말로 핏대를 세우기 전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의 짝말이 무엇.. 2013.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