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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지기52

누구의 부하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 누구의 부하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 -사사키 아타루(송태욱 옮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다시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명곡, (2010)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널 잊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세상이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말 뒤에 ‘너를 잊지 않겠다’는 말을 맞세워두는 것은 그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친 세상을 믿지 않고 다만 널 잊지 않겠다는 말 속엔 세상과 기꺼이 대결하겠다는 결의가 함축되어 있다. 이 노래와 “책을 읽었다, 읽고 말았다.”(33쪽)는 이 평범한 문장 속에 세계를 뒤흔든 혁명의 에너지가 함축되어 있다고.. 2013. 6. 3.
“괴물이 나타났다, 인간이 변해라!” * 계간 에 기고한 서평을 앞질러 올려둔다. 짧은 서평이지만 실로 간만의 청탁인 터라 조금 반가웠던것은 사실이나 책이 출간되기 전이라 A4용지에 출력된 소설들을 읽는 것이 뭐랄까,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더이상 '그저 그런 서평'은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지만 '생각'만으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법. '그렇고 그런 서평'정도 밖엔 쓰지 못했다. 청탁이 아니었으면 읽을 기회가 없었을 법한 한 작가의 진중한 고민에 나름의 방식으로 동참했다는 정도가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 본문에서 내가 사용한 '게토'라는 용어의 역사적 층위를 자세히 설명하며 다른 용어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준 이석호 편집장님의 개입이 인상적이었다. 훌륭한 편집자와 책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다. 주변의 반응이나.. 2013. 3. 5.
무한한 하나 : 노동자들의 문서고 1. 용접한다는 것 내 아버지는 용접공이었다. 결혼을 한 이듬해 고향이었던 강원도 삼척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다 어깨 너머로 배운 용접일로 한 시절을 보냈다. 당연히 용접 자격증 따위는 없었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 팀을 꾸려 언제, 어디라도 불러만 주면 달려갔다. 야무지고 기술이 좋다는 입소문 덕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새벽에도, 휴일에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일거리가 생기면 달려 나가 용접을 했다. 식사 시간을 뚝 떼어내고, 잠자리를 뚝 떼어내서 철골들을 이어붙이고 무수한 구멍과 빈틈들을 때웠다. 그렇게 떼어낸 삶을 밑천으로 세간을 꾸렸다. 살림은 밖에서도 훤히 다 보일정도로 말갰고 삶 또한 단 한 번의 우회 없이 직립의 방향으로, 이렇다 할 감춤이 없었다. 다만 점.. 2012. 12. 24.
박카스와 핫식스 1. _박카스 광고 _핫식스 광고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에너지 음료’의 소비율이 작년에 비해 12배 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롯데칠성의 ‘핫식스’나 동서식품에서 수입하는 ‘레드불’ 같은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는 단지 밤을 새워 공부를 할 때만 마시는 것이 아니다. 클럽에서 밤새 놀기 위해서도 이런 고카페인 에너지 음표를 즐겨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강남과 홍대 클럽에서는 에너지 음료 폭탄주도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양주와 에너지 음표를 1대 3비율로 섞어 한 잔에 7000~12000원에 판다고 한다). 공부를 할 때도 ‘핫식스’, 클럽에서 놀 때도 ‘핫식스’인 셈인데, 이는 원기를 회복하고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었던 ‘자양강장제’와 성격을 달리한다. ‘타우린’이 함유되어 있던 박카스(생생톤, 구.. 2012. 12. 4.
망설임 없이, 음악 없이(<로제타>, 다르덴 형제, 1999) 카메라는 ‘로제타’의 움직임을, 세세한 동선을, 머뭇거림 없는 몸짓을 좇는다. 직장에서 쫓겨나기 전부터 그녀의 몸은 혹여라도 쫓겨날까 바쁘기만 하다. 몸을 가만히 두는 법이 없다. 거침없는 그 몸짓은 자신의 몸에 대해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음을, 자신의 몸을 한번도 어루만져본 적이 없음을, 몸이란 그저 고통이 시작되는 장소 외엔 그 어떤 의미도 가져보지 않았음을 무심하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단 한번도 로제타를 먼저 기다리고 있지 못하는 카메라는 항상 로제타의 몸보다 늦다(바로 이 점이 다르덴 형제만의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로제타를 ‘무심히’ 담아냄으로써 그녀에게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카메라의 거친 움직임은 윤리적이기까지 하다) . 그러니 우리가 로제타만이 아는 지름길과 관리인의 눈.. 2012. 12. 4.
불가능한 공동체 1. 쓰레기가 되는 삶들 : 추방의 불가피성 모든 딱딱한 것들이 녹아 사라지는 유동하는(liquid) 세기를 관할하는 핵심적인 규칙에 대해 말해야 할 때, 그 첫 자리에 ‘추방령’을 올려두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때의 ‘추방’이 가지는 함의는 공동체의 규칙을 위반한 자를 단순히 ‘밖으로 쫒아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르조 아감벤과의 만남은 오늘날의 ‘추방’이란 무언가를 자신에게 인도하도록 만드는 권한이자 자신을 내버리는 자의 자비에 위탁되는 것임을, 다시 말해 추방은 배제되는 동시에 포함되며 해방되는 동시에 포획당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영역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추방은 공동체의 규칙을 위반했을 때 부여되는 징벌이라는 예외적인 규율 체계가 아니라.. 2012. 9. 17.
‘강’이라는 경계 : 인간의 문턱, 정치의 장소―요산 김정한 문학과 강에 관하여 길 잃은 자 여기로 오라 이 찬 저녁 강가로 세계는 물로 흐르고 저 강물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네. ―김두수, 중에서 1. ‘강’의 줄기와 ‘말’의 줄기 ‘은둔자’ 혹은 ‘세기의 음유 시인’이라 불리는 가인(歌人) 김두수가 2002년에 발표한 ≪자유혼≫(리버맨 뮤직, 2002)에 수록되어 있는 을 다시 듣는다. 삶의 비의를 감춘 듯한 그의 낮고 깊은 저음은 강의 흐름을 좇고 있다. 강의 흐름 위에 제 목소리를 얻어두었으니 목소리는 저 자신도 모르는 소리를 찾아 흘러갈 것이다. 김두수가 노래하고 있는 저 강은 세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찾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다. ‘강물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는 전언을 존재의 비의(秘意)와 세계의 신비가 감추어진 곳, 다시 말해 현실을 초월한 공간을 지칭하는 .. 2012. 8. 28.
죽음과 글쓰기 : 애도(불)가능성에 관하여 1. 죽음 앞의 응답 오래전부터 썩어가는 시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시체는 그것을 목도하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는 폭력의 증거였으며 우리 모두가 그 같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을 현시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시체를 땅에 묻기 시작한 것도 죽음이 세계를 폐허로 만들 수 있는 폭력의 상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죽은 사람은 그를 죽인 폭력과 한 패가 되어 죽음의 전염병을 만연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은 죽음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들을 땅속에 묻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덤은 죽음이 사실 ‘죽음에 대한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중요한 증표라고 한 이는 바타유(Georges Bataill.. 2012. 8. 15.
이름 없는 부대낌의 노동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밖에서 혼자 산지 4년이 되어간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던 차, 2008년 운좋게 전문대 강의를 맡게 되면서 월 40만원정도의 수입임에도 겁없이 독립을 결심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퇴근했고 부산대 앞의 ‘3단 토스트’와 1000원짜리(!) 짜장면을 맛있게 먹으며 원고를 썼다. 100매의 원고를 써도 10만-20원정도 밖에 지급하지 않는, ‘교보’에서도 ‘알라딘’에서도 찾을 수 없는 문예지에 글을 기고하기 위해 미련하고 지독하게 읽고 썼다. 그리고 강의 내용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이는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 대중문화 등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대학이란 곳에서 한 두 강좌를 맡게 된 것도 횟수.. 2012. 7. 15.
벌레들의 시간 1. ‘사람’과 ‘벌레’ 사이의 말 새로운 빈곤이 우리의 삶을 뒤덮고 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철지난 유행어가 영속하고 있는 시대를 주관하고 있는 새로운 강령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생존’이라는 최종 심급이 우리들의 삶을 좌우한다. 누군가가 사라져야 내가 산다. ‘절멸’의 공포가 ‘너와 나’의 ‘절연’을 조건으로 하는 셈인데, 이러한 ‘관계의 종말’은 우리들의 일상이 더 이상 경험으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경험은 축적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내·외적으로 영락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험의 빈곤. ‘생존’이 ‘경험’을 대체해버린 시대, 그것을 부끄러움이 사라진 시대라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생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2012.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