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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48

오늘도 우리는 테이블 위에서 우물을 길어올릴 테니까 ‘아침에는 책상이 되고 점심엔 식탁이 되며 저녁엔 테이블이 되는 곳은?’ 이건 사물이 아니라 장소에 관한 수수께끼다. 사람들의 손길이 어울려 그곳에 숨결을 불어넣을 때 장소가 조형된다. 서로의 손길이 만나는 곳, 나누고, 만들고, 더하고, 덜기도 하는 곳은 언제나 테이블 위에서다. ‘책상’은 어쩐지 주인이 있을 것만 같고 ‘식탁’은 음식이 없다면 조금 쓸쓸해진다. 하지만 ‘테이블’은 손가락을 가지런히 올려두기만 해도 충분하다. 모든 장소엔 테이블이 있다. 그 위에서, 그 곁에서 사람들이 만나 어울린다. 엔 세 개의 테이블이 있다. 하나의 테이블은 당연히 책을 위한 자리로 사용 되고 다른 하나는 책방 방문객들이 앉아서 책을 보는 곳으로, 나머지 하나는 주로 주인장의 몫으로 사용 되는 듯하다. 생활글쓰기 모.. 2020. 7. 21.
생활문학 탐구 와 함께 하는 생활글쓰기 시즌 2 ‘생활문학’ 탐구 1강 ‘생활문학’이란 무엇인가요?2강 생활, 의(義) : 생활 속에서 지켜가는 정의로운 원칙3강 생활, 식(識) : 생활 속에서 익어가는 것들_습관과 버릇 4강 생활, 주(洲) : 함께 있지만 모르는 것들_집, 방, 몸5강 생활선언문 쓰기6강 어제 나부끼던 깃발 : 생활문학 탐구 후기 *신청은 마감되었습니다 2020. 7. 12.
살림살이의 글쓰기 냉장고에선 음식이 썩어간다. 다행이다. 음식 쓰레기를 모아둔 통을 이틀만 잊어도 그곳에 구더기가 꼬인다. 다행이다. 아무리 표백하려고 해도, 감추려 해도 기어코 드러나는 것이 생활의 이치다. 생활 속에 썩어가는 것이 보인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표식에 가깝다. 아직 썩지 않았을 뿐인데 우리는 냉장고에 넣어두면 모든 것이 싱싱하게 유지된다고 쉽게 믿어버린다. 그 손쉬운 믿음을 심문하는 것이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음식이다. 신경 쓰지 않으면, 돌보지 않으면 분명히 썩는다는 것을 ‘냉장고’ 안에서라도 배울 수 있다면 다행이지 않은가. 음식물 쓰레기에 꼬인 구더기는 무너진 생활의 증표가 아니라 무언가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생활이 보내는 긴급한 신호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을 때 그곳은 진창이 된다. .. 2019. 7. 2.
전작 읽기_권여선(1) 전작 읽기_권여선(1) 에서 전작 읽기를 시작합니다. 한 작가가 써내려 간 작품을 빠짐없이 따라 읽으며 한 사람이 가닿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희망)을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오랫동안 보살펴온 희망과 염원의 걸음 곁에 각자의 발자국을 남겨봅시다. 누군가의 초대로만 열리는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나직하게, 긴 호흡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첫 번째 작가로 권여선의 장편 소설 두 권과 소실집 두 권을 읽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 상처가 있으며 곳곳에 편재한 폭력에 바스러져가는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 그러나 부서짐 속에서 기어코 빛을 내는 존재의 힘을 마주하게 하는 소설을 함께 읽으며 가혹한 세상을 넘어가는 방식을, 살아내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으면 합니다.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 2019. 6. 13.
커다란 테이블에 그어진 선분 단단한 과일을 좋아하는 이유. 콩알정도의 작은 알맹이가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단단하게 커진 것도 신기하지만 그 속을 달콤한 과육으로 빈틈없이 가득 채웠다는 게 언제나 경이롭다. 부드러운 과일은 종종 꽃처럼 생각될 때가 있지만 사과나 배와 같은 단단한 과일을 베어물 때면 마지막 한입까지 흐트러짐 없는 단단함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산뜻한 기분에 젖기도 한다. 단단한 과일을 쥐면 이 세상이 내게 허락한 작은 선물이 지금 내 손에 도착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단단한 과일은 오늘 몫의 단단함과 달콤함으로 충만하리라는 예감 속에서 무디고 느슨한 나의 하루를 매만져본다. 공간이 장소가 되어가는 시간성을 체감하는 자리. 그건 단단한 과일을 식료품 코너가 아니라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매.. 2019. 5. 29.
회복하는 글쓰기 4기 '아직 세상에 도착하지 않은 책-쓰기' 4기 재안내_ 4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4기에선 아직 쓰진 못했지만 꼭 쓰고 싶은 한 권의 책을 상상하면서 그 첫 페이지부터 써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을 기억하고(1강), 각자가 써보고 싶은 한 권의 책의 서문을 미리 써보는 시간(2강)을 가지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를 뒤흔들었던 잊히지 않는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후에(3강) 쉽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강렬하게 이끌렸던 사람-사물에 관해 써보면서(4강) 어쩌면 유일한 장르일지도 모를 영역을 발견해봅니다. 지금 당장 책의 본문을 쓰기 어렵다면 누군가의 서문에 덧붙이는 말로 본문 쓰기를 연습해 나가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습니다(5강). 마지막 시간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단 한 권의 책에.. 2019. 4. 16.
회복하는 글쓰기 4기 ‘아직 세상에 도착하지 않은 책-쓰기’ 4기를 시작합니다. 4기에선 아직 쓰진 못했지만 꼭 쓰고 싶은 한 권의 책을 상상하면서 그 첫 페이지부터 써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을 기억하고(1강), 각자가 써보고 싶은 한 권의 책의 서문을 미리 써보는 시간(2강)을 가지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를 뒤흔들었던 잊히지 않는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후에(3강) 쉽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강렬하게 이끌렸던 사람-사물에 관해 써보면서(4강) 어쩌면 유일한 장르일지도 모를 영역을 발견해봅니다. 지금 당장 책의 본문을 쓰기 어렵다면 누군가의 서문에 덧붙이는 말로 본문 쓰기를 연습해 나가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습니다(5강). 마지막 시간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단 한 권의 책에 관한 사용설명서를 공유.. 2019. 3. 9.
용감한 연약함 어디서든 아기를 만나면 저절로 함박 미소를 띠게 된다. '너는 언제 저런 아이 낳고 살래'라는 생애사 평균 시간표가 한참 늦은 것에 대한 타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무조건적인 이 반응이 다행스럽다. 홀로 길을 걷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저절로 고양이 소리를 내게 된다. 야옹야옹. 말하기를 중단하고 다만 가엽고 반가운 마음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한번도 길고양이가 나를 향해 다가온 적 없지만 내가 흉내 낸 고양이 울음소리가 무척 다행스럽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정신을 차리고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어리석고 유치하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무방비 상태는 도리없이 반복된다. 생활 속에서 그 반복만큼 다행스러운 일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을 할 때도 나는 그렇게 무방비 상태가 된다. 바보.. 2019. 2. 24.
회복하는 글쓰기 : 다시 시작하는 생활의 장르 아무리 힘을 내어봐도 ‘어쩔 수 없는’ 세계에서 정처없이 흔들리고 흐트러지면서도 끝까지, 똑바로 걸어나가고자 했던 일본 전후(戰後) 여성들의 삶을 ‘고유한 세계’로 구축해나간 감독, 나루세 미키오. 결혼을 네 번이나 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한 여성이 보살폈던 가족의 모습을 담은 1952년작 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고 싶다. 3녀 1남의 남매 모두 아버지가 달랐던 이유는 혼자 힘만으론 자식들을 키워낼 수 없었던 전후의 궁핍한 환경 때문이었다. 막내 딸 기요코(다카미네 히데코)는 무능력한 오빠와 허영에 찬 언니들, 아둔하고 어리석게만 보이는 엄마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꾸리고자 버스 차장으로 일하며 독립한다. 며칠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미츠코(둘째 언니)의 소식을 묻기 위해 기요코의.. 2018. 10. 7.
중심을 이동 하는 운동 : 생활, 모임, 글쓰기 선물 받은 강좌 포스터를 마치 마패라도 되는 양 당당하게 쥐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한참을 올라도 숨이 차지 않으면 체력이 올라와 있다는 것이어서, 숨이 차면 숨이 차는 대로 운동이 되고 있다는 신호이니 어느 쪽이어도 만족스럽다. 다용도실엔 여름 내내 마실 수 있을 정도의 물이 쟁여져 있지만 오늘 같은 날은 무거운 생수 묶음을 사들고 퇴근하고 싶다.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어도 2리터 생수 6개 묶음과 쌀 만큼은 인터넷 쇼핑이나 배달을 이용하지 않는다. 택배 기사님들이나 배달하시는 분들의 노동 강도를 더하지 말자는 생각도 있지만 무엇보다 ‘필수품만큼은 내 손으로’라는 생활 슬로건을 나도 모르고 읊조리게 되었던 터라 미련해보이거나 궁색해보일 것을 알면서도 낑낑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곤 한다. 한달여만에 다시 재.. 2018.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