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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43

재활과 회복 뒷걸음질 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버티는 데 열중하며 내내 내몰리기만 하는 시간이 잦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보면 온몸이 경직되어 절벽을 구르고 있는데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착각하며 한참을 더 구르게 된다. 걸음을 내딛는 것이 아니라 구르기라는 가속력에 스스로를 의탁하게 되는 것이다. 예민하고 민감한 성정은 내가 파놓은 구덩이 안에서만은 이상하리만치 무디고 미련하기가 이를 때가 없어져 몸이든 마음이든 어디 한군데가 바스라지고 나서야 구르기를 멈추고 겨우 바깥으로 나오곤 한다. 다 내 어리석음 탓이리라, 홀로 되뇌며 몸을 털고 일어나 다만, 걷는다. 뜻한 바가 있어 걷는 게 아니다. 다만, 걷는다. 그렇게 걷다보면 넘어지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치기를 반복하던 굴레가 세속의 구조가 아닌 어리석음의.. 2015. 11. 28.
<세 계절 읽기 모임 3 seasons reading club> 2015. 11. 8.
<생활-글-쓰기 모임> 2기 2015. 11. 8.
간절함 없이 2015. 10. 27 손가락 끝이 퉁퉁 부었던 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끝에 차오른 누런 고름을 바라보며 고통의 원인을 알고도 손쓸 수 없었던 그 밤에 나는 다급하지만 무력한 인터넷 검색으로 ‘생인손’이라 병명만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검색 하고 또 검색해도 병원에서 시술을 받는 것 외엔 그 어떤 방법도 없다는 ‘조갑주위염 Paronychia’. 그날 밤 10년동안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병원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손끝의 고통이 고름과 함께 차오를만큼 차올라 손끝을 뚫고 나올 것 같았던 그 밤에 내가 다급하게 찾았던 것은 바늘이었다. 바늘만 있으면 이 고름을 터트릴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이 통증도 조금 가라앉겠지. 아무리 뒤져봐도 집엔 바늘이 없었다. 편의점으로 달려가 사온 바늘로 누런 고.. 2015. 11. 8.
한번이라는 무상의 은총 2015. 10. 21 ‘한번’은 모두에게 관대하다. 우리 모두는 한번 태어나고(물론 태어났다는 사태와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에 가까운 일이긴 하지만) 한번쯤 꿈을 꾸고, 사랑을 하고, 두 번 다시 없을 경험을 한다. ‘한번’이 주어의 자리에 있을 땐 ‘안다’라는 술어보다 ‘모른다’라는 술어와 더 잘 어울린다.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한번의 목록은 대개가 모르고 한 것이거나 모르면서도 한 것들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번은 하지 두 번은 못한다’는 관용어는 두 번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는 말만은 아니다. 눈길을 끌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듯, 없는 듯 있는 ‘한번’의 자리를 눈여겨 볼필요가 있다. ‘한번’의 경험 없이는 ‘두 번’의 어려움을 말할 수 없다. ‘한번은 하지 두 번은 못.. 2015. 11. 5.
<생활-글-쓰기 모임> 4회 2015. 8. 4 design_yang 누군가의 편에 서서(2) 글쓰기와 발명하기‘쓰기’라는 행위를 앞에 두고 자꾸만 ‘살기’ 주위를 맴돌게 되는 것은 필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알 수 없음에도 무언가를 써야만 한다는 생각을 그러잡고 있는 일. 이 무용한 애씀 속에 ‘쓰기’의 이치가 있다. 이치는 기어코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끝없이 채우고 보살피는 정성을 다한 노동을 통해서만 잠깐 품을 수 있는 ‘뜻’이자 ‘희망’일 따름이다. 글쓰기란 내 것일 수 없는 텃밭 앞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내 것일 수만은 없는 커다란 짐을 기꺼이 지고 길을 떠나는 일이다. 글쓰기를 일러 고독의 시간 속에 머무르는 일이라고들 하.. 2015. 8. 7.
누군가의 편에 서서(1) 2015. 6. 23 익명의 액자공들 누군가의 글을 읽는 시간, 독자가 되는 시간. 나는 알고 있다. 독자의 시간이란 액자를 만드는 시간임을. ‘읽기’란 작은 액자를 만들어 그 글을 어딘가에 걸어두는 일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액자공’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액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고도 무언가를 감싸고 들어 올리는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 한 명의 작가가, 하나의 작품이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들이 그 작가와 작품을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어 부를 수 없는 액자공을 부를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인가. 그 익명의 이름들이 작가와 작품의 이름 안에 감춰져 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의.. 2015. 7. 30.
안심의 영주권 2015. 7. 23 임권택 영화를 향한 정성일의 변치 않는 열정적인 애정과 구애를 접하면서 감지했던 사실을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에 대한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의 애도 섞인 헌정 속에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대가(大家)를 다루고 있는 수많은 글들 중 읽는 이에게 감동으로 전해지는 것은 천재적인 위대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과 같은 부분에 밑줄을 칠 때라는 것을. 내게 ‘비범’이란 오직 일상과 생활이라는 ‘평범의 토양’에서만 길어올려지는 것이다. 그런 염원을 품고 현장에서 인용했던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 대한 하스미 시게이코의 표현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빌린 책을 반납일에 쫓겨 급하게 읽으며 이 구절과 짧은.. 2015. 7. 24.
<생활-글-쓰기 모임> 3회 2015. 7. 21 design by yang 조금 이상한 그저 ‘외모’에 대한 인상이나 자기 생각으로 침윤된 ‘고백’에 기댄 대화 속에서라면 “당신은 조금 이상하군요”라는 말이 무척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질 것이 분명하다. 이 말은 비평은 커녕 손쉽게 비난으로 호도되어 정말인지 ‘이상한 사람’쯤으로 치부될 것임을 겪지 않아도 훤히 알 듯하다. 그런데 ‘당신은 조금 이상하군요’를 무례한 말이 아닌 무릅쓴 말이라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무례함을 무릅쓰면서까지 ‘당신의 이상함’을 알리고 있다면 관심을 ‘이상하다’는 규정이 아니라 이상함이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옮겨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의도야 어떻든 간에 타인을 향해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 무례함을 범하는 일임을 모르지 않지만 우리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2015. 7. 22.
<생활-글-쓰기 모임> 2회 2015. 7. 7 design by yang 생활-외국어-번역 하기 1 작년 7월,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 독일 베를린에서 한 달 간 체류하며 공동 작업을 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유럽이었지만 설렘의 시간은 잠깐이었고 서른이 훌쩍 넘은 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이국땅에서 공동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종일 낯선 환경에 노출되어 있던 우리 모두는 급속도로 지쳐갔고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황판단능력과 직관능력이 간난 아이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임을 몸으로 체험했던 힘든 시간 속에서 적어도 서로에게만큼은 싫은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홀로 애썼던 시간을 기억한다. 슬픈 일이지만 그렇게 이를 악물고 끝까지 참았기에 우리는 .. 2015.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