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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43

이별례(4)-기적과 지옥 2015. 7. 1 모든 만남은 재회(再會)다. 만남이 언제나 두 번째인 것은 헤어짐 없이는 그 어떤 만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삶이 빈껍데기이듯 이별없는 만남은 변덕일 뿐이다. 재회란 ‘우리는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라는 낭만적인 인연론에 기대어 있기보다 ‘우리는 언젠가 헤어진 적이 있다’는 서늘한 이별을 조건으로 한다. 다시 만났다는 것은 기적이면서 동시에 지옥이다.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았음에도 끝내 ‘다시’ 만났다는 것은 기적이지만 도리없이 ‘다시’ 만나버린 건 너와 내가 같은 곳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맴돎의 지옥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만남이 떨림을 주된 정서로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기적과 지옥 사이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만났으며 (다시) 헤.. 2015. 7. 1.
시작을 시작하기 2015. 6. 10 조금은 어색하게 이어져 있는 모임 이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글쓰기 모임’이라고 해도될 걸 굳이 ‘생활글’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생활과 글을, 글과 쓰기를 떼어놓고 ‘-’로 잇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그 이유를 몰라도 문제될 건 없습니다만 이런 기회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조금 이어가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생활글’이란 어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름입니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노동자들이 썼던 숱한 글들, 그리고 지금도 몸의 정직함으로 삶을 일구고 있는 곳곳에서 희미하게나마 이어지고 있는 글들, 조금은 미숙하고 조금은 거친 그 글들, 형식도 내용도 온전하지 못한 그 글들을 ‘생활글’이라 불러오고 있습니다. ‘생활글’.. 2015. 6. 28.
<생활-글-쓰기 모임> 1회 2015. 6. 23 design by yks 벼랑 끝의 생명을 살리는 일 오래된 의 낡고 벌어진 틈 사이에 길고양이 가족이 잠들어 있다. 다가가도 깨지 않고 이미 깨어 있는 고양조차 도망가지 않는 것은 미숙하고 둔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동네 사람들이 지금 잠들어 있는 고양이 가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세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하부에 저런 알 수 없는 틈이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도시 하층민들과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 안에도 어쩌면 저런 틈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집이 없는 모든 것들이 잠깐이라도 쉴 수 있었던 곳은 ‘틈’이지 않았던가. 납득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 속에도 ‘살림’이 꾸려진다. 납득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는 살아가고 그 살림이 또 누군가를 살린다.. 2015.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