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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며 펼치는 살림―<진주 쓰깅> 자리를 열며 돌아본 달리기 살림 2024. 10. 4군대에 끌려가서 축구나 족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언제부터 달렸나를 떠올려보다가 어지간히도 ‘운동’을 하지 않은 내가 어쩌다 달리고 쓰는 모임을 열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강원도 철원 산골짜기에서 해가 질 때부터 해가 뜰 때까지 철책선 앞에서 보초 근무를 서야 했기에, 집합 명령이 있었음에도 누가 족구장에 나오지 않았는지 자세히 살필 겨를이 없어 나는 보일러실에 숨어 시집을 읽으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소대 단위로 떨어져 지낸 부대 특성 때문에 축구를 할 일도 없었다. GOP 근무를 철수하고 바깥 부대로 돌아가서는 계급이 조금 높아져서 축구나 족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만큼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낸 내가 숨 가쁘게 몸을 움직이게 .. 2024. 10. 5.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만화책 읽기 1) ―다카하시 신, <좋은 사람>1, 2(1993 한국어판 1998) 2024. 10. 3 지난 일요일 이른 10시부터 최종규 선생님을 이끔이로 삼아 이오덕 어른이 펼친 뜻을 따라 걸어보는 모임을 마친 뒤, 이어서 부산에서 펴낼 어린이잡지 회의를 하니 늦은 5시가 훌쩍 넘었다. 최종규 선생님과 함께 중앙동 곳간 사무실로 넘어와 책 펴내는 이야기를 나눌 참이었는데, 저녁거리를 사러나가는 길에 어제 사지 못한 책이 눈에 밟힌다고 해서 보수동책방골목엘 들렀다. 일본 문고본 여러 권과 보기 드문 잡지 몇 권을 챙겨 돌아나오는 길에 만화책으로 꽤나 유명한 국제서점에 들렀다. 최종규 선생님은 그곳에서도 귀신 같이 숨은 책을 척척 찾아내어 살펴보시길래 책방 구석까지 들어가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만화책 더미를 훑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만화책 꾸러미를 보곤 최종규 선생님께.. 2024. 10. 3.
살림글살이(1)―쓸 듯이 쓰기, 쓰며 살기 2024. 10. 2작년 이맘때쯤 누구나, 언제나 비평 쓰기를 할 수 있으니 함께 써보자는 뜻을 품고 이라는 모임을 열었습니다. 그때 ‘매일’을 그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펼치는 나날’이라 풀어써보았고 ‘비평’을 ‘되비추기’라 다르게 써보았습니다. ‘연습’은 ‘갈고 닦는 일’이라 풀어썼는데 이를 ‘쓸고 닦는 일’이라 적어도 좋겠다 싶어요. 이를 엮어보면 ‘나날이 되비추(려)는 쓸고 닦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새삼 살림이 이미 이런 뜻을 넉넉히 품었구나 싶어요. 살림은 나날이 새롭게 펼치는 일일 테니까요. 어제 모임을 가만히 돌아보다(되비추기) 스르륵― 오늘이 새롭게 펼쳐집니다. 살림이 나날이 새롭게 펼치는 일이라면 살림글 또한 나날이 기쁘게 써야겠구나 싶더군요. 살림글쓰기 모임 자리에서 자주.. 2024. 10. 2.
2024년 하반기 <문학의 곳간> 작게 작게 열며 책과 나를, 글과 말을, 그때와 지금을 이어보는 2024년 하반기 안내합니다. 무척 더웠던 여름을 지나 가을부터 내년 겨울까지 다섯 갈래를 하나로 엮은 책 꾸러미와 함께 이야기를 펼쳐보려 합니다. "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접시를 내려놓을 수 있어요." ⏤희정, 『베테랑의 몸』 "검은 새 하나가 쇠사슬에 매달린 저울추처럼 땅이라는 접시 위에 오롯이 놓인 세상과 무게를 겨누며 높아지고 낮아지기를 반복한다." ⏤김숨, 『잃어버린 이름』 "노동 계급 청년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 것은 개인사와 지적 호기심 덕분이었다."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귀 기울여야 들리는 소리는 마침내 이야기가 된다." ⏤팀 잉골드, 『조응』 "나는 악수가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 2024. 9. 11.
살림짓는 작은 아이 2024. 8. 31책장 한쪽에 그림책을 쌓아두었다. 느긋할 때 읽어야지 마음먹었지만 먼지가 쌓일 지경이어서 매일 아침 눈길만 주고 선뜻 펼치지 못했다. 어제는 어머니 생일이라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밥을 먹었다. 즐거웠고 감사했고 뿌듯했다. 푹 자고 일어나 녹차를 마시며 ≪티치≫(팻 허친스 그림/글, 박현철 옮김, 시공주니어, 1997)를 펼쳐보았다. 이 그림책은 빨랫줄에 옷가지를 널어둔 장면에서 시작되는데, 처음엔 크기와 색깔이 다른 옷이 눈에 띄었다. 다시 보니 얕은 언덕에 나무를 세우고 줄을 이어 빨랫줄을 만들었는데, 푸른 하늘 같은 배경을 그리지 않아서 파랗고 노랗고 빨간 옷가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 세워둔 나무 아래엔 풀이 더 길게 자라 있어서 바람이 불어도 나무가 쓰러지지 않을 것 같다... 2024. 8. 31.
가위바위보―살림글쓰기를 열고 닫으며 2024. 8. 29 곰곰 생각해보면 ‘모임’이야말로 잘 가꾸고, 잘 꾸리고 싶은 살림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그럴듯한 성과를 내기 위한 워크숍이나 프로젝트, 널리 알려진 이를 좇고 기대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강연은 모임과 그야말로 다른 결을 가집니다. ‘모임’은 특별히 이끄는 힘도, 대단한 무엇도 없는 작고 느슨한 이름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 힘으로 가득합니다. 모임은 ‘모으다’에서 왔겠지요. ‘여러 사람을 한 곳에 오게 하거나 한 단체에 들게 하다’는 뜻 안에 ‘한데 합치다’, ‘쌓아 두다’, ‘한곳에 집중하다’라는 갈래와 이어집니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어떤 일을 하려고 자리를 열어 사람을 모은다는 뜻도 있지만 ‘무언가에 이끌려 한 자리로 찾아오다’라는 갈래로도 풀 수 있습니다. ‘모임’을.. 2024. 8. 30.
그림자가 비추다 2024. 8. 2 5월부터 진주를 오간다. 8월이 되었으니 한 계절을 오간 셈인데, 누구와도 사귀지 못하고 무엇도 좋아하지 못했다. 여전히 낯설게 오갈 뿐이다. 이번 주는 진주에서 하루 묵어야겠다 싶어 숙소를 잡고 그곳에서 남강까지 가는 길을 찾아보았다. 다들 여름휴가를 떠났는지 오늘 낮부터 모임에 나올 수 없다는 알림이 자꾸 울린다. 이런 날엔 서로 더 가까이서 살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저마다 쓴 글을 차근차근 짚어가며 이야기를 건네야겠다 싶어 여느 때완 다른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두었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모임을 정리하고 숙소로 가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뒤 남강 곁을 달렸다. 멀찌감치서 바라만 봐왔던 터라 그저 이뻐보이기만 했는데, 그 곁을 달리다보니 새삼 강이 어떻게 흐르는지 궁금했다... 2024. 8. 4.
발등에 입맞춤 2024. 8. 1늘 가까이 있고 싶으니까네 발곁에발바닥보단 발등에바닥을 딛은 뒤 걸음이 나타날 때발끝이 무심히 감춰둔 자리를 찾아 입 맞추고 싶으니까눈에 띄지 않는 가장 너른 자리늘 널 눈여겨보아왔다고아무렇지 않게 무릎을 꿇고허리를 숙여 절을 하지고개를 떨구고 더 아래를 바라보면세상엔 너 밖에 없어내겐 입술 밖에  이번주 모임 글을 읽다가 마음 한켠에 맺힌 그림 한 자락이 떠올라 한달음에 써보았다. 잘 썼는지 못 썼는지보다 마음을 담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 시엔 내 마음이 담겼다. 줄글로 썼다면 날아가버리거나 깎여 나갔을지도 모른다. 순간을 잡아채는 시라는 너른 터를 더 누비며 마음껏 마음을 담아보고 싶다. 닮고 싶은 것도, 닿고 싶은 것도 담아야지. 최종규 선생님과 함께 여는 자리에서 늘 10줄짜.. 2024. 8. 2.
작은 글씨로 그린 마음 무늬 2024. 6. 11스무살 무렵에 시도 잘 읽어내고 싶어서 애를 써서 자주 시집을 펼쳤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읽고 또 읽기를 되풀이했는데, 대체로 이야기꼴을 갖추고 비유가 현란하지 않은 장정일이 쓴 시집 두 권이 좋은 길잡이 노릇을 했다. 군대에 잡혀가기 전에 다행히 시집을 여러 권 읽은 바 있어서 읽을 거리로 자리 잡혀 있었고, 뭔가를 읽을 짬이 없는 군대에선 짱박혀서 읽기엔 시집만한 게 없었다. 최전방 부대에 배치되어 1년 동안 GOP에 들어가 철책선을 지키는 일을 했는데, 나는 야간 근무를 서면서 졸거나 잔 적이 거의 없었다. 고참이 잠들면 건빵 주머니에 넣어둔 시집을 꺼내 읽거나 두 번 접어서 여덟 면으로 나뉜 편지지에 밑도 끝도 없는 편지를 썼다. 오늘 이오덕 어른이 펴낸 마지막 시집에.. 2024. 6. 11.
강을 따라, 깜빡이는 궤적을 따라 빨치산 투쟁과 디아스포라 서사를 축으로 삼아 정영선의 『아무것도 아닌 빛』을 읽어내는 건 자연스럽다. 그 때문에 노인 빈곤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 관계망이 차단된 모습은 국가와 역사라는 대문자 이야기에 휩쓸려 압사당하거나 마모된 이들의 현재를 보여주는 소설의 배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를 이끄는 ‘안재석’과 ‘조향자’가 품은 갖은 사연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빛』을 읽는 동안 눈길이 머물렀던 곳은 한때 맹렬하게 타올랐던 기억의 자리가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텅 빈 곳들이었다. 낙동강 끝자락에 기댄 낡고 오래된 아파트는 어딘가로부터 떠밀려 온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었지만 점점 비어 간다. 안재석과 조향자가 휩쓸렸던 기구한 행보를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것처럼 떠난 이.. 2024.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