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는 볼 수 없음427 건반을 치듯, 아래로 아래로 계단을 내려갈 때의 경쾌한 발걸음, 발놀림, 발연주. 건반을 두드리는 것처럼. 빠르게, 아니 리드미컬하게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그 소리에 발맞추어 도 레 꽃 솔 2010. 4. 16. 긴머리 노란 청년 몇 권의 책이 배달되어 왔다. 단 한순간도 기다린 적이 없고, 온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었던 것들. 갑작스레 떨어진 체감 온도에 '꽃들은 어쩌나'는 생각을 뒤늦게 떠올린 것처럼, 오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억하겠지만 것이지만, 뒤늦음이라는 회한에 휩쓸려버릴 그런 기다림들, 단 한번도 기다리지 않았지만 기꺼이 찾아오는 그런 것들. 책을 배달하는 분이 바뀌었는데, 아마도 알라딘에서 택배회사를 바꾸었던지(배송일이 늦다는 불편사항을 알라딘에 접수시킨 적이 있다), 택배 기사님이 교체된 모양이다. 모든 기사님들이 마치 인사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무뚝뚝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물건만 전해주고 가던 그 택배 기사님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2010. 4. 14. 바보야! 문제는 자백이 아니야 이별을 통보한 연인에게 이별의 이유를 묻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그 이유를 알아야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이별을 부정하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이별의 이유는 특정한 사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그것을 이어온 시간들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에게 그 이유를 묻지 말고 연애의 시간을 다시 떠올려보아야 한다. 그곳에 헤어짐의 이유가 너무나도 선명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범인에게 자백을 종용하는 검찰과 언론의 태도는 이별의 이유를 맹목적으로 묻는, ‘여전히’ 아둔한 연인과 닮아 있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진술하게 하는 자백은 결코 범죄의 전말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범죄를 용의자의 자백을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 2010. 4. 12. 위대한 스승이 보낸 편지 작년에 내가 한 일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처음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한 것이나 수백 장의 원고를 쓴 게 아니라 내 어머니에게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드린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처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그 감동이란, 이루어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남루한 당신의 옷차림처럼 오탈자로 가득한 메시지를 보는 순간 ‘말’이 ‘문자’에 선행한다는 기왕의 논의를 부정한 한 철학자의 논의를 비로소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수년 전 신병 교육대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가 온통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들이었기에 더욱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처럼, 30초간 명멸하는 핸드폰 액정 위에 오롯이 ‘새겨’져 있던 “사라하다 내아들”이라는 결여된 메시지는 늘 주면서도 더.. 2010. 4. 12. 하이킥을 피하는 우리들의 자세 상대의 안면을 강타하는 격투기 기술 중 하나인 ‘하이킥(high kick)’이라는 용어가 일상적인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규칙이 최소화 되어 있는 이종격투기와 닮아 간다는 증표로 읽을 수 있다. 승자 독식을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있기에 삶의 전선에서 승리하는 법을 습득하는 데 열을 올리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서점에 범람하는 각종 자기개발 서적들은 ‘옥타곤’(세계 최대의 이종격투기 단체인 의 공식 경기장 명칭)에서 패배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교본이라고 할만하다. 그런 점에서 ‘하이킥’이라는 표현의 일상화는 변화된 우리들의 삶과 구성원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양상을 적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 2010. 4. 12. 숟가락 하나로 만든 샘 에 연재하고 있는 문화 단평을 올려둔다. 편집과정에서 변형되는 글, 나의 글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최종본을 모니터로 보면서 저널적 글쓰기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한다. 올리는 글은 편집되기 전의 최초 버전이지만 모 기자에 의해 리라이팅 된 편집본을 보면서 한 두 대목 고치고 더한 판본임을 밝혀 둔다. 학창시절 도시락 반찬통의 칸은 고작 두 개에 불과 했지만 그것이 아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지독하게 편식을 하는 식성 때문이었다기보단 반찬통의 칸이 세 개나 네 개였다면 틀림없이 그 중 몇 칸은 빈 칸으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맞벌이 부모님들은 바빴고, 그만큼 살림이 빠듯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시락과 함께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수많은 장르의 영화와 음악을 보고 들으며.. 2010. 4. 12. 뭉개진, 뭉개지는 얼굴 처음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매력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탐욕적이고 가벼운 것이어서, 나는 한사코 그 말을 쓰는 것(기록)을 피하기만 했었는데, 그러나 어쩌나, 그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처음'을 말해왔구나. 그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뱉는 '처음'이 아니라 목적에 결박당한 처음을 나는 얼마나 많이 말해왔던가. 그 꽃잎 같은 처음은 내 입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더렵혀져 왔던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것인가. 목적을 잊은 '처음'이 내게로 오는 것을 어떻게 방해하지 않고 무심히 맞이할 것인가. 불안한 봄밤, 엉덩이를 들썩이며 레오 까락스, 1991 中 드니 라방의 얼굴을 보라. 훼손되어 있는 얼굴, 그럼에도 단독성을 획득하고 있는 그 얼굴을, (소위 얼굴로 먹고.. 2010. 4. 11. 이전 1 ··· 40 41 42 4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