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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x월 x일 붉게 부풀어 오른 도톰한 입술은 미끈한 상처다. 입술은 상처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딱지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끝에 획득한 매끈하고 볼륨 있는 피부다. 그러나 매끄러운 딱지가 사람들의 기억까지 덮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쉬지 않고 자신의 입술 끝을 물어뜯었으며 타인의 입술을 빨거나 자신의 입술을 타인에게 내맡기는 데 집중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입술의 자리에 있던 상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자신과 타인들의 타액에 입술은 점점 더 매끄러워져 갔고 도톰해져갔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입술을 사랑했고 또 볼륨감을 더 해 가는 자신들의 입술에 만족했다. 꼭 그만큼 상처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만 갔다. 기억은 머무를 곳이 없었다. 그러나 기억은 잊혀져도 .. 2011. 4. 25.
2011년 4월 23일 누가 들를까 궁금했던 레코드점이 결국 문을 닫기로 한 모양이다. 입구에 ‘CD, 테잎 세일’이라는 문구를 본 기억을 떠올려 오전에 기어이 그곳에 들렀다. 1시간동안 남아 있던 모든 CD를 확인하고 25장 정도의 앨범을 구매했다. 지금껏 구입한 CD보다 더 많은 수의 앨범에 대한 터무니없는 가격을 치루며 주인 아저씨께 이제서야 앨범을 구매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괜찮다며 물수건을 건네주셨다. 일회용 물수건으로 손바닥을 훔치니 검은 때가 잔뜩 묻어나왔다. 검게 변해버린 물수건을 가게 휴지통에 버리지 못하고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검은 봉지에 한가득 CD를 담아 레코드 가게를 몰래 빠져나왔다. 내 손에 잔뜩 묻어 있던 그 검은 때가 부끄러웠다. 2011. 4. 25.
2011년 4월 21일 서울에서 세희가 내려왔다. 늘 내려오는 길에 연락을 하는 그 버릇이 못내 아쉬웠지만 이제는 적응이 좀 된 듯하다. 마감을 훌쩍 넘은 원고를 뒤로하고 새벽까지 통음을 했다. 오랜 시간 방치해 놓은 내 방이 부끄러웠지만 세희를 내 자취방에 재우고 다시 연구실로 올라와 원고를 쓰다가 잠들었다. 주인도 돌보지 않은 방으로 돌아가 하룻밤 손님이 남겨 놓은 흔적을 보니 괜실히 슬퍼졌다.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샴푸 빈 통과 비눗물로 가득 채워진 세숫대야, 탁한 물이 고인 변기. 내가 내 집을 내버려두었으니 손님 또한 그렇게 하룻밤의 시간을 내버리듯 떠난 것이다. 샤워를 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샤워실 바닥에 끼어 있던 물때까지 깨끗하게 치웠다. 주방 한켠에 쌓아 두었던 쓰레기들 분리수거를 해서 밖에 내 두었다. 삼푸를 .. 2011. 4. 24.
취향의 몰락 아마도 보충수업비나 문제집을 사야한다는 구실로 얼마의 비용을 전용한 것이겠지만 고교시절,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음반을 살 수 있었는지 아무리 셈을 해봐도 방 한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음반의 출처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록음악을 처음 들었던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그 매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그것이 세속의 셈법과 불화하는 것이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메탈리카(Metallica)’로부터, 혹은 ‘딥퍼플(Deep purple)’을 거쳐, 아니 ‘라디오헤드(Radiohead)’와 함께 음악적 계보도를 나름의 방식으로 그려가던 그 시절,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정보는 이나 와 같은 음악 잡지 몇 권이 전부였다. 새로 출시된 음반 소개 기사 하나까지 꼼꼼하게 읽었던 탓에 새로운 .. 2011. 3. 31.
검은 손의 운지법 아코디언은 주름진 공기 주머니(벨로즈)에 바람이 담겨야 소리를 낼 수 있다. 양 손을 접었다 폈다하는 행위가 악기에 숨을 불어넣고 손가락들이 악기에 가득 찬 바람의 몸 여기저기를 열고 닫을 때 미약하지만 오래된,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악기에 숨을 불어 넣는 지난한 손의 노동과 손가락의 섬세한 보살핌에 의해 ‘고유한 음’이 만들어진다. 아코디언을 ‘손풍금’이라고 부를 때 한결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이 악기가 노동(손)과 돌봄(손가락)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악기는 저마다의 공명통을 열고 닫음으로써 음(音)을 생성해내는데, 이때의 음은 ‘손의 돌봄’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목소리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목소리는 숨이 들고 나오는 길목에서 길어 올리는 것인 터라 숨.. 2011. 2. 8.
진돗개 하나* 전쟁은 사랑의 체위(體位)를 변화시킨다. 전시 중엔 여성상위(騎乘位)가 선호된다. 병사들은 대개 부상을 당했거나 피로하고, 병사가 되지 않은/못한 이들은 격렬한 움직임으로 전후방의 고통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한다. 전쟁이 끝난 이후엔 대개 후배위(後背位)가 선호된다. 전시 중에 저질렀던 각자의 만행들을 폐허 속에 묻어 두어야만 삶을, 관계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렵다. ‘아버지’가 집을 떠났을 때, 가족 구성원들의 삶은 ‘귀환’이라는 축을 철저하게 망각하는 궤도를 가지고, 집을 떠나 병사(兵/病士)가 되어버린 이 또한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만행을 저질러야만 한다. 그러니 이들이 재회하는 순간에 포착되는 ‘놀람’의 표정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2011. 1. 23.
불가능한 문장 문장은 안착할 곳이 필요한 터라 언제나 ‘뭍’에서 씌여지지만 그곳은 대개 ‘물’과 가까운 곳이기 마련이다. ‘말’은 어디든 자유롭게 오고갈 수가 있어 어디서든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자유로움은 정박지를 찾지 못해 쉽게 흩어져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도 지치지 않고 ‘말’을 하는데 여념이 없는지도 모른다. 문장은 물과 뭍 사이에서 출렁거리지만 한사코 물을 등지고 있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물에서 멀어지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한순간, 물속으로, 물의 너머로 제 몸이 빨려 들기를 바라는 심정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간곡한 문장은 하나의 단어나 토씨의 어긋남에도 저 스스로를 보존하던 기반을 모조리 잃어버릴 수도 있기에 그렇게도 정처없거나 불안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한 발이라도 헛딛는 순간 모든 것.. 2011. 1. 23.
익사(溺死)해버린 익명(匿命)을 구하라 우리는 매일 매일 ‘자기소개서’를 쓴다. 명백하게 허위가 아닌 범위 내에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과장해서 드러내고 그것이 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단점을 ‘고백’한 후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견지한 어조로 ‘자기소개서’를 마무리 짓는다. 이는 비단 ‘취직’을 위해 작성하는 특별한 문건에 국한되지 않는데, 가령 미니홈피에 남기는 무수한 기록들―내가 간 곳, 내가 만난 사람, 내가 먹은 것, 내가 산 것, 내가 입은 것,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을 그럴 듯한 것으로 치장하는 데 동원되는 여기저기서 절취한 문장들은―모두는 ‘자기소개서’를 닮아 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웹(web) 상에 투기(投棄)하는 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지만 그 투기(投機/鬪技)는 이익/승리를 획득하는 .. 2011. 1. 23.
저기요 저기요 :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요긴한 말. 우리는 아직 이 말보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호명 방식을 가지지 못했다. 하여, 타인을 부르는 보다 요긴한 말을 새롭게 캐내거나 너무 자주 써서 한없이 닳어버린 '저기요'가 가진 의미의 심연을 발굴해낼 필요가 있다. 저기, 누군가가 있다. 가닿고 싶지만, 필시 가닿지 못하고 그 앞에서 바스러지고야 '말'. 저기, 누군가가 있기에, 속절없이 부른다. 그것은 첫 말, 다음 말을 기약할 수 없는, 오직 부름으로써 제 몫을 다해버리기에 '저기요'를 통해서는 결코 다음 말을 꿰낼 수 없다. 그것을 알지만 '저기요'는 얼마나 간곡한 부름인가. 저기, 누군가가 있다는 작은 사실 하나만으로 선뜻 태어나는, 맹렬히 달려가는, 말.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기에, 오직 부를 .. 2011. 1. 23.
다시 돌아올,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 구절, 단어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시간을 흘려보낸다. 밑줄을 긋거나 그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순간을 음각해보지만, 나는 분명히 이 대목을, 이 구절을, 이 순간을 흔적도 없이 잊고 말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이 자리로,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결코 활자들을 붙들어 들 수 없다. 아니 활자가 내게로 오는 순간, 그것은 활자가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되어, 소리의 육체(육성)가 되는 순간이기에 이 순간은, 목소리가 머무는 지금-여기-우리의 시간 속에서만 유효하다. 내가 다음 구절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잊을 줄 알면서 이 순간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이 자리로 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 2010.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