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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몰락 아마도 보충수업비나 문제집을 사야한다는 구실로 얼마의 비용을 전용한 것이겠지만 고교시절,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음반을 살 수 있었는지 아무리 셈을 해봐도 방 한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음반의 출처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록음악을 처음 들었던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그 매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그것이 세속의 셈법과 불화하는 것이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메탈리카(Metallica)’로부터, 혹은 ‘딥퍼플(Deep purple)’을 거쳐, 아니 ‘라디오헤드(Radiohead)’와 함께 음악적 계보도를 나름의 방식으로 그려가던 그 시절,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정보는 이나 와 같은 음악 잡지 몇 권이 전부였다. 새로 출시된 음반 소개 기사 하나까지 꼼꼼하게 읽었던 탓에 새로운 .. 2011. 3. 31.
검은 손의 운지법 아코디언은 주름진 공기 주머니(벨로즈)에 바람이 담겨야 소리를 낼 수 있다. 양 손을 접었다 폈다하는 행위가 악기에 숨을 불어넣고 손가락들이 악기에 가득 찬 바람의 몸 여기저기를 열고 닫을 때 미약하지만 오래된,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악기에 숨을 불어 넣는 지난한 손의 노동과 손가락의 섬세한 보살핌에 의해 ‘고유한 음’이 만들어진다. 아코디언을 ‘손풍금’이라고 부를 때 한결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이 악기가 노동(손)과 돌봄(손가락)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악기는 저마다의 공명통을 열고 닫음으로써 음(音)을 생성해내는데, 이때의 음은 ‘손의 돌봄’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목소리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목소리는 숨이 들고 나오는 길목에서 길어 올리는 것인 터라 숨.. 2011. 2. 8.
진돗개 하나* 전쟁은 사랑의 체위(體位)를 변화시킨다. 전시 중엔 여성상위(騎乘位)가 선호된다. 병사들은 대개 부상을 당했거나 피로하고, 병사가 되지 않은/못한 이들은 격렬한 움직임으로 전후방의 고통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한다. 전쟁이 끝난 이후엔 대개 후배위(後背位)가 선호된다. 전시 중에 저질렀던 각자의 만행들을 폐허 속에 묻어 두어야만 삶을, 관계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렵다. ‘아버지’가 집을 떠났을 때, 가족 구성원들의 삶은 ‘귀환’이라는 축을 철저하게 망각하는 궤도를 가지고, 집을 떠나 병사(兵/病士)가 되어버린 이 또한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만행을 저질러야만 한다. 그러니 이들이 재회하는 순간에 포착되는 ‘놀람’의 표정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2011. 1. 23.
불가능한 문장 문장은 안착할 곳이 필요한 터라 언제나 ‘뭍’에서 씌여지지만 그곳은 대개 ‘물’과 가까운 곳이기 마련이다. ‘말’은 어디든 자유롭게 오고갈 수가 있어 어디서든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자유로움은 정박지를 찾지 못해 쉽게 흩어져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도 지치지 않고 ‘말’을 하는데 여념이 없는지도 모른다. 문장은 물과 뭍 사이에서 출렁거리지만 한사코 물을 등지고 있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물에서 멀어지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한순간, 물속으로, 물의 너머로 제 몸이 빨려 들기를 바라는 심정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간곡한 문장은 하나의 단어나 토씨의 어긋남에도 저 스스로를 보존하던 기반을 모조리 잃어버릴 수도 있기에 그렇게도 정처없거나 불안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한 발이라도 헛딛는 순간 모든 것.. 2011. 1. 23.
익사(溺死)해버린 익명(匿命)을 구하라 우리는 매일 매일 ‘자기소개서’를 쓴다. 명백하게 허위가 아닌 범위 내에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과장해서 드러내고 그것이 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단점을 ‘고백’한 후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견지한 어조로 ‘자기소개서’를 마무리 짓는다. 이는 비단 ‘취직’을 위해 작성하는 특별한 문건에 국한되지 않는데, 가령 미니홈피에 남기는 무수한 기록들―내가 간 곳, 내가 만난 사람, 내가 먹은 것, 내가 산 것, 내가 입은 것,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을 그럴 듯한 것으로 치장하는 데 동원되는 여기저기서 절취한 문장들은―모두는 ‘자기소개서’를 닮아 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웹(web) 상에 투기(投棄)하는 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지만 그 투기(投機/鬪技)는 이익/승리를 획득하는 .. 2011. 1. 23.
저기요 저기요 :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요긴한 말. 우리는 아직 이 말보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호명 방식을 가지지 못했다. 하여, 타인을 부르는 보다 요긴한 말을 새롭게 캐내거나 너무 자주 써서 한없이 닳어버린 '저기요'가 가진 의미의 심연을 발굴해낼 필요가 있다. 저기, 누군가가 있다. 가닿고 싶지만, 필시 가닿지 못하고 그 앞에서 바스러지고야 '말'. 저기, 누군가가 있기에, 속절없이 부른다. 그것은 첫 말, 다음 말을 기약할 수 없는, 오직 부름으로써 제 몫을 다해버리기에 '저기요'를 통해서는 결코 다음 말을 꿰낼 수 없다. 그것을 알지만 '저기요'는 얼마나 간곡한 부름인가. 저기, 누군가가 있다는 작은 사실 하나만으로 선뜻 태어나는, 맹렬히 달려가는, 말.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기에, 오직 부를 .. 2011. 1. 23.
다시 돌아올,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 구절, 단어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시간을 흘려보낸다. 밑줄을 긋거나 그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순간을 음각해보지만, 나는 분명히 이 대목을, 이 구절을, 이 순간을 흔적도 없이 잊고 말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이 자리로,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결코 활자들을 붙들어 들 수 없다. 아니 활자가 내게로 오는 순간, 그것은 활자가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되어, 소리의 육체(육성)가 되는 순간이기에 이 순간은, 목소리가 머무는 지금-여기-우리의 시간 속에서만 유효하다. 내가 다음 구절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잊을 줄 알면서 이 순간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이 자리로 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 2010. 4. 20.
건반을 치듯, 아래로 아래로 계단을 내려갈 때의 경쾌한 발걸음, 발놀림, 발연주. 건반을 두드리는 것처럼. 빠르게, 아니 리드미컬하게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그 소리에 발맞추어 도 레 꽃 솔 2010. 4. 16.
긴머리 노란 청년 몇 권의 책이 배달되어 왔다. 단 한순간도 기다린 적이 없고, 온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었던 것들. 갑작스레 떨어진 체감 온도에 '꽃들은 어쩌나'는 생각을 뒤늦게 떠올린 것처럼, 오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억하겠지만 것이지만, 뒤늦음이라는 회한에 휩쓸려버릴 그런 기다림들, 단 한번도 기다리지 않았지만 기꺼이 찾아오는 그런 것들. 책을 배달하는 분이 바뀌었는데, 아마도 알라딘에서 택배회사를 바꾸었던지(배송일이 늦다는 불편사항을 알라딘에 접수시킨 적이 있다), 택배 기사님이 교체된 모양이다. 모든 기사님들이 마치 인사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무뚝뚝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물건만 전해주고 가던 그 택배 기사님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2010. 4. 14.
바보야! 문제는 자백이 아니야 이별을 통보한 연인에게 이별의 이유를 묻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그 이유를 알아야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이별을 부정하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이별의 이유는 특정한 사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그것을 이어온 시간들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에게 그 이유를 묻지 말고 연애의 시간을 다시 떠올려보아야 한다. 그곳에 헤어짐의 이유가 너무나도 선명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범인에게 자백을 종용하는 검찰과 언론의 태도는 이별의 이유를 맹목적으로 묻는, ‘여전히’ 아둔한 연인과 닮아 있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진술하게 하는 자백은 결코 범죄의 전말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범죄를 용의자의 자백을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 2010.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