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는 생활163 절판도서 2015. 12. 16 “오늘이 추운 날씬가요?” 춥다는 느낌이 들 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묻는다. ‘조금 추운 편이다’라는 답변을 듣고서야 그렇구나, 그래서 조금 춥게 느껴졌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겨울에 추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보일러를 잘 틀지 않고 생활 하며 감기 때문에 중단했던 냉수마찰을 다시 시작 했다. 옷을 껴입다보면 몸이 경직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깨가 뻐근하고 허리가 결린다. 그런 둔한 상태가 못마땅 하기 때문에 ‘겨울에 추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는 완고한 생각에 붙들려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필요한 완고함의 성향이 조금은 누그러졌다고 해도 올해의 겨울 또한 내게는 여전히 추운 것이 당연한 그런 .. 2015. 12. 21. 두드러기라는 소식 2015. 12. 14 비리고 흉물스럽게만 느껴지던 복어의 비늘을 어느 사이에 마다하지 않고 먹게 되었기 때문일까. 나는 몇달만에 먹었던 복지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오른쪽 볼에서부터 왼쪽 입술 아래까지 퍼진 두드러기의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전에 겪어보지 못한 두드러기가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다.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니 병원가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원인을 파악하기 힘든 두드러기를 거울에 비춰볼 때마다 상태가 호전될 거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만이 선명해진다. 10일정도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감기를 앓았고 지금은 거의 떨친 상황인데, 별안간의 두드러기 때문에 또 내 몸 앞에서 주저 앉게 된다. 오돌토돌한 표면을 이래저래 만져보고 거울에 비춰보면서 분명 내 몸 안에서 어떤 일.. 2015. 12. 16. 안다는 것의 비용–이별례(5) 2015. 9. 9 매해 한 두 차례 앓곤 했던 감기 몸살에도 약 한번 쓰지 않고, 십수 년 간 병원 출입조차 하고 있지 않던 내가 지난 여름 꽤 여러 차례 한의원을 찾았던 건 병원을 찾아가야 할만큼 유별나게 아픈 곳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갑작스레 몸이 나빠진 친구를 따라 간 곳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체질을 8가지로 분류해 그에 맞는 처방과 진료를 해오고 있는 꽤 유명한 한의원이었는데 이참에 체질을 통해 스스로 몸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내심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한의원 또한 유명한 곳이 으레 그러하듯 ‘긴 시간의 기다림-고작 1~2분의 진료-기계적인 문답-질문보다는 지시사항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함’ 따위의 근대 의료 체계의 훈육적 도식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2015. 10. 12. 홀로 조용한 기적 2015. 8. 21 조금만 걸어도 쉬 지치고 몸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듯한 무기력의 원인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마음이 아닌 몸의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무용할지라도 일말의 정직함이 있다. 이런 저런 짐작만 할 뿐 분명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너무나 많은 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하게 얽힌 원인들에 몸이 결박당해 있다는 것이 지금의 내 상태임을 알게 된다. 지친 몸에 대한 응답이 산책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암남공원을 향해 걷는다. 비내린 뒤 저녁 나절. 해가 사위어가는 잠깐 동안 남아 있는 볕의 잔해를 천천히 밟으며 숲으로 향한다. 암남공원 입구에 새로 생긴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들어서다 바깥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요란한 음악 소리 .. 2015. 8. 23. 기도하는 삶 2015. 7. 11 지난 달 19회를 마친 다음 날 J 형의 초대로 제천에서 하루 묵었다. 반년 넘게 발품팔아 익힌 길들을 아낌없이 나눠주려는 J 형의 애씀과 지극한 환대 속에서 샘솟은 환담을 다 기록해두고 싶지만 묵히고 묵혀 꼭 품어 안고서 남은 한 해의 절반을 날 수 있는 양식으로 삼고 싶은 의욕 또한 감추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제천에서의 이튿날 형과 함께 천천히 되밟으며 걸었던 배론 성지에서의 감흥만큼은 차마 묵혀 둘 수 없을만큼 내 안에서 내내 진동하고 있다. 배론 성지를 바깥에서부터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동안 갖은 박해(迫害) 속에서 끝내 순교(殉敎)할 수밖에 없었던 척박한 사정과 남김없이 피를 쏟음으로써 척박한 그 땅에 새 세상으로 향하는 도랑 하나를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염원이 선득.. 2015. 7. 11. '독신'하기(1)-두려움의 연마 2015. 7. 8 집은 실로 무서운 곳이다. 요며칠 이 생각을 몇 번이고 곱씹다가 나조차 모르는 사이에 몸에 안착한 감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집을 무서운 곳이라 여기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이 집에 아무도 없다 여겨질 때와 초대 받지 않은 이의 침입이 있을 수 있다 생각될 때 그러하다. 내가 사는 집은 해변이 훤히 보여 방문객으로부터 '경치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곤하는 곳이지만 내부는 오래된 목조 건물의 꼴을 가지고 있으며 천정이 무척 높아 기괴하게 보일 때가 많다. 더군다나 꽤 긴 나선형의 계단으로 이어져 있는 복층이라 1층에 있을 땐 2층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고 2층에 있을 땐 1층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넓은 창이 많아 침입의 위험으로부터도 취약하.. 2015. 7. 8. 평범하게 낡아가는 세계 2015. 7. 2 여당의 최고위원들의 막말과 쌍욕이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보도되던 날, 도무지 염치라고는 개미 똥구멍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맹렬한 패거리들의 세계 아래에서, 또 다시 파탄난 관계의 참담함과 가난함을 달래기 위해 종일 서성였다. 패거리 집단의 민낯을 대면하는 것이 무섭도록 참담한 것은 내가 피해자의 위치에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런 패거리 집단 속에서 암묵적인 동조와 동의 뒤에 숨어 패거리 구조를 견고히 하는 데 역할을 한 것은 아닌가, 자문하고 또 자책하게 된다. 무력과 분노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울쩍하고 슬퍼진다. 허기까지 감당할 순 없을 듯해 시끌벅적한 속이라도 풀고 달랠 요량으로 민주공원 아랫길에 나부끼던 붉은 깃발을 떠올렸다. 그래, 오늘은 짬뽕.. 2015. 7. 2. 단념하지 않는 생활 2015. 6. 19 충무교차로에서 마을버스 1번을 타면 중앙시립도서관 앞에서 내릴 수 있다. 버스가 결코 다닐 수 없어 보일뿐만 아니라 작은 자가용조차 다니기 힘들어보이는 골목을 1번 마을 버스는 마치 ‘생활의 달인’처럼 곡예 운전을 하며 거침이 없다. 골목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탓에 부평 시장에서부터 어르신들이 많이 승차하시는데 70대로 보이는 분이 80이 넘어보이는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도무지 버스가 다닐 수 없어 보이는 길로 마을 버스가 오가는 것처럼 거동이 힘들어 버스에 승차할 수 없어보이는 분들이 이 버스를 탄다. 거동이 쉽지 않음에도 그 분들은 예외 없이 보따리를 쥐고 있고 기어오른다고 해도 좋을만큼 천천히 힘겹게 그러나 틀림없이 버스에 오른다. 좌석을 양보해도 바.. 2015. 6. 19. ‘주중 채식’ : 환대의 맛 2015. 6. 16 ‘부지런’이라는 강박은 학습된 권면을 따르고자 애썼기 때문이 아니라 차라리 벗어날 수 없는 '자아 회로'나 '증상'과 같은 것인데, 대학 시절부터 나는 늦잠 자는 것을 멀리 했고 군대 시절 선임병이 되어서도 허용되지 않은 늦잠이나 낮잠을 한번도 자지 않(못)았다. 그렇게 부지런을 떠는 일이 남들과 다른 탁월한 생산성으로 연결되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부지런 했던 것이다! 한 때는 맛있는 것에 대한 욕구도, 잠에 대한 욕구도 없는 내가 한심하고 원망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부지런. 내 청춘을 작은 단어 하나에만 담아야 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부지런'인지도 모르겠다. 부지런한 청춘이라니! 나는 쉬는 법을 몰랐고 노는 법도 몰랐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어떤 일을 하고 난 뒤에도 .. 2015. 6. 17. 이별례(3)-독신(獨身)하다 2015. 6. 7 백현진(+방준석 +김오키)의 공연을 보고 돌아와 그의 솔로 앨범 (2008)을 찾아 듣는다. 3시간 가까이 이어졌던 공연은 적막하고 기괴하고 담담하며 절절했다. 위악과 절망을 섞고 쌓아도 오랜 시간동안 단련된 쓸쓸함의 바탕 위라면 쓸데 없이 번지거나 언거번거 하지 않는다. 백현진의 공연은 쓸쓸함과 처연함의 세계에 버티고 서서 의지와 의욕을 길어올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 ‘흥’ 속에서 나는 ‘단 한번만 허락되는 경험’이라는 구절을 새겼다. 예술은, 음악은, 사람은, 생활은, 삶은 ‘단 한번만 허락되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어떠한 반주도 없이 홀로 담담하게 노래를 부르던 모습, 말과 노래가 섞여 넘나들던 오프닝을 되새기며 알게 된다. 그건 어떤 메시지를 전하거나 표현하기 위한 .. 2015. 6. 7. 이전 1 ··· 5 6 7 8 9 10 11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