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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163

‘본가(本家)’라는 급진적인 장소 2016. 4. 9 가족 모임을 하기 위해 ‘본가’에 갔다. 아버지 생신과 매형 생일이 겹쳐 ‘합동 생일 축하’를 위한 자리여서 종일 이곳 저곳을 누비며 두 분에게 드릴 선물을 샀다. 본가에 갈 땐 무얼 준비하든 한없이 부족하고 뭔가가 빠져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지극한 효심 때문은 아니고 ‘변변한 직장도 없고’, ’아직 장가도 못간 못난 놈’이기 때문일 터다. 2007년 겨울에 운 좋게 등단이라는 것을 했고, 자연스레 ‘글을 쓰며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빨아주시는 옷 입고,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며 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일상적으로 여러 차례 주어졌던 터라 고정된 수입이 없었음에도 별 고민 없이 독립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오랫동안 사람들은 내 생활을 일.. 2016. 4. 10.
동물처럼(1) 2016. 4. 8 3월은 내내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찾지 않고 쫓지 않으면서 봄에 ‘입회’할 수 있는 은밀하고 드문 순간을 기대하며 걷고 또 걸었다. 도시 바깥으로 걸었고, 내 생각의 바깥으로 나가고자 했으며, 의도와 욕심 없이 걷는 방법이 있기라도 하듯이 열심을 다해 걸었다. 한 선생님과 세 시간이 넘도록 천변을 걸으며 응/답하는 쾌락을 마음껏 누려서일까 발뒷꿈치 부분의 아릿함이 이 주가 지났는데도 차도가 없다. 걷기 힘들정도의 통증은 아니지만 걸을 때마다 작은 신호를 보내는 듯한 그 통증 덕에 신발의 상태와 걷는 자세, 그리고 몸의 상태를 잠깐이나마 돌아보게 된다. 생활이란 것이 편재해 있는 ‘작은 신호들’의 기미를 파악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조합하여 할 수 있는 만큼의 ‘꼴’의 형상으로 만들어보는.. 2016. 4. 9.
동물처럼(2)-환대의 공혜(空慧) 2016. 4. 8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안심하는 시간은 늦은 밤 홀로 와인을 마실 때다. 기껏해야 한 두 잔이지만 얼마 전 와인이 내 삶에 이미 입회해 있음을 알게 되었던 순간, 나는 실로 오랫만에 안도했다. 기쁨도, 슬픔도 없는 생활을 벼리는 일상 속에서 ‘와인’이 주는 잠깐의 자유와 안락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와인은 아마도 J형과 어울리면서, 그가 베푸는 배려와 환대가 열어준 오솔길을 따라 내 생활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때론 ‘환대’란 말없이 문을 열어두는 일이기도 한터라 편안한 온기의 출처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어떤 환대 앞에서 잠시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어리둥절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아쉬움을 내색하지 않고 어떤 식탁에서든 내 자리를 마련하고 잔이 빌 .. 2016. 4. 8.
시장에서의 배움 2016. 3. 8 도시에 사는 독신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어리석게 ‘마트’에 발을 들여놓았고 때때로 그곳에 들러 할인된 상품들과 사지도 않을 물건들의 가격표를 쥐새끼마냥 몰래 염탐하며 아무도 탐내지 않을 기쁨을 맛보며 홀로 즐거워하곤 했다. 거대한 마트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좁은 골목에서야 한줌의 호기심과 실체 없는 기쁨에 탐닉했던 그 어리석음을 마치 증상처럼 돌이켜보곤 했다. 오늘도 내가 한심한 인간이었음을 차마 뼈아프게 자각하지 못한 것은 실로 한심해서겠지만 어느새 습벽처럼 내려앉아 있는 자기 연민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몰아붙이지 않는다 해도 ‘독신’ (해야) 한다는 것은 세계가 갑자기 좁아져버렸음을 도리없이 수락해야 하는 일이다. 고적하고 적빈한 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유기하고 또 유기했.. 2016. 3. 14.
절망을 익히는 장소 2016. 3. 6 소박한 식단을 꾸리고 그것을 생활에 내려앉히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애를 써 조형한다해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생활이다. 생활을 나름의 의지로 꾸려갈 때 생각지 못했던 기쁨을 누린다면 그건 당장은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늘 감수하고 있는 위태로움이라는 비용에 대한 선물일 것이다. 한끼의 밥상을 차리는 일이 마냥 즐거울 때가 있는 이는 언제라도 한끼의 밥상을 차리는 일이 지옥에서의 시간만큼이나 힘겹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몸의 변화가 내 힘으로 조율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생활의 물매 또한 애쓴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몸을 잘 살피지 않을 때 그 작은 물결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파도로 변해 몸을 덮쳐 쉴.. 2016. 3. 7.
채식주의자_이별례(6) 2016. 2. 29 오늘처럼 바람이 많이 불던 날, 한 친구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두 시간을 넘게 걸었던 어느 때를 기억한다. 채식(vegan)을 하는 친구임을 알고 있던 터라 멸치 육수를 내지 않은 된장찌게나 먹을 만한 비빔밥 집을 찾기 위해 경성대에서 대연동까지, 대연동에서 다시 문화회관까지 매섭게 불던 바람을 견디며 오래도록 걸었다. 그때 농부가 씨를 뿌려 벼를 수확하는 지난한 과정과 긴 시간에 비한다면 한끼의 식사를 위해 이 정도 걷는 것쯤은 별 거 아니라며 유쾌하게 웃기도 했다. 세상엔 많은 쾌락이 있지만 ‘걸으며 대화하는 것’이 그 어떤 쾌락에도 비할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 또한 일찍이 알게 되어버린 터라 한끼의 식사를 하기 위해 대화하며 걸었던 그 먼 길을 ‘고달픈 것’이라기보단 차.. 2016. 2. 29.
코로만 숨쉬기-무용함의 쓸모(2) 2016. 2. 4. 겨울 초입에 앓았던 감기와 피부질환 탓인지 몸이 많이 가라앉은 상태다. 보름전부터 틈나는대로 민주공원 옆에 있는 중앙도서관을 등산하는 마음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굳이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보수동에서 내려 이렇다 할 목적없이 도서관을 향해 올라가는 길엔 ‘코로만 숨쉬기’ 외엔 아무 생각이 없다. 부산의 산복도로가 거의 그렇듯 낡고 작은 집들이 군집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오래된 건물 외벽의 균열처럼 나 있는 생소한 골목길을 무작정 오른다. 문득 내가 머무르며 오고가는 세상엔 아무런 변화가 없고 홀로 느끼는 작은 기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적인 정서에 틈입해 있는 자기연민을 덜어내고 여전히 날이 서 있는 자의식을 더, 더 내려놓아야겠다는 낡은 다짐은 쳇바퀴.. 2016. 2. 4.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다―이별례(8) 2016. 1. 26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더라는 ‘그레고르 잠자’만큼은 아니겠지만 과할정도로 진했던 눈썹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홀라당 다 빠져버렸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의 황망함을, 좀처럼 납득할 수 없었던 그 당혹스러웠던 순간을 가만히 기억해본다. 거울을 얼마나 자주, 또 자세히 들여다보느냐와 상관없이 자신의 얼굴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자신이 속해 있는 체제의 구조를 안다는 것의 어려움과 다르지 않다.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이 그대로 앎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늘 있던 그 자리에선 영영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영역이 있다. ‘얼굴’은 이/목/구/비로 이루어진 표면적인 조합이 아니라 시스템의 명령이 들어오고 나가는 영역(들뢰즈/가타리)이며 고유.. 2016. 1. 27.
걸레의 자리 2016. 1. 16 살림의 정수(精髓)는 걸레에 있다. 휴지가 흔해진 지금이야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오물들을 쉽고 간편하게 훔쳐낼 수 있지만 이전엔 무언가를 흘리면 늘 걸레로 닦아냈다. 걸레질을 한다는 건 오물을 지우거나 없애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걸레가 더럽다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한데, 늘 오물을 옮겨내는 걸레를 계속 사용하려면 그만큼 쉼없이 세척해야 한다. 내 어머니가 하루에도 몇번씩 걸레를 빨았던 것을 기억한다. 대충 짠 거 같은데 아무리 힘주어 비틀어도 한방울의 물도 흘러나오지 않던 옹골진 걸레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건 아귀 힘의 차이가 아니라 살림 근육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엌 입구엔 걸레를 두는 통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엔 늘 방금 넣어둔 듯한 두.. 2016. 1. 21.
꿈-기록(2)_비평의 머무름 2016. 1. 9 허탐정을 만나기로 한 날. 선명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내 것이 아니라 잠깐 내게 머물다가 간 것 같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의식이 자아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억압 받는 나'만이 아니듯 꿈 또한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잠깐동안 '꿈'이 '비평'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강력한 논지로 대상이나 현상을 관통해나가거나 무관해보이는 두 지점을 보이지 않는 논리를 찾아내어 꿰어내는 일이 '비평'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어떤 꿈' 또한 그런 일을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잠이라는 낮은 자리로 흘러들어와 내 것이 아닌 것들과 뒤섞이는 일. 꿈이 욕망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도 그건 꿈을 꾸고 있는 한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품고 있는 욕망의 모습.. 2016.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