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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38

'회복하는 세계'를 비추는 등대 : 마을, 곳간, 대피소 1내 눈앞에 있는 가족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너머에 있는 마을에 이끌려 지낸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 때문일까? 가족은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가 된 것 마냥 대면과 응시로 마주해야 했던 순간들을 짐짓 모른 척해온 탓에 점점 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간다. 가족 앞에서 울지 못하고 텅 빈 집에서 손 쓸 수 없는 가족을 생각하며 홀로 운다. 내가 이끌리고 있는 마을이 가족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제 있었던 마을이 오늘은 없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몸을 움직일 뿐이다. 마을을 증명하고 있는 건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하나 밖에 없다. 육식동물을 피해 산허리까지 내려온 초식동물이 강 너머의 희미한 불빛을 보고 잠시 생의 의지를 붙들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살고자 한 마을엔 나약해.. 2018. 4. 16.
없는 것들 속에서 생겨나는 것 조금 힘 없이, 조금 투명해져서 낡고 쇠락한 주택들이 있던 곳은 어느새 모텔촌이 되어버렸지만 그 한 귀퉁이에 작은 카페가 마치 대피소처럼 간판도 없이 희미한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곳은 간판만 없었던 게 아니라 그 흔한 음악조차 없었다. 대신 믿을 수 없을만큼 작고 이쁜 고양이가 있었고, 다른 곳에서라면 들리지 않았을 법한 소리(음)들이 있었다. [회복하는 글쓰기] 2차 강좌는 음악이 없는 카페, ‘매일이 다르다’에서 시작되었다.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음악 없는 카페’를 여는 일은 불가능한 시도처럼 여겨지지만 어쩌면 한번도 찾아보려고 한적이 없었기에 그저 없었을 뿐 ‘음악이 없는 카페’는 그곳에 있었다. 음악이 없었기에 있을 수 있었던 소리들과 함께. 카페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크고 작은 소리들이.. 2018. 4. 2.
도움을 구하는 이가 먼저 돕는다(2) 한데서 부르는 이름 김윤아의 네번째 솔로 앨범 (2016)은 어딘지 알 수 없는 ‘한데’서 시작 한다. 가까운 곳에서 부는 바람, 아득한 곳의 물결, 저 멀리서 내려치는 번개 소리가 44초 동안 흐르면 누군가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노래는 시작된다. “너의 이름 노래가 되어서 / 가슴 안에 강처럼 흐르네 / 흐르는 그 강을 따라서 가면 너에게 닿을까 / 언젠가는 너에게 닿을까” 누군가를 잃은 이는 더 이상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 없는 적막은 그이가 곁에 없다는 현실을 무섭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너’의 이름이 노래가 되어 세상에 흐른다면 무거운 바위가 짓누르고 있는 너의 이름이 마음 속에 흘러들어와 내 안에서 강처럼 흐르지 않을까. 그 강을 따.. 2018. 3. 18.
<회복하는 글쓰기> Ⅱ. 삶을 가꾸는 '생활 칼럼' 쓰기(마감) 강좌소개 두번째 강좌에서는 함께 모여 자신만의 ‘칼럼’을 씁니다. 유명 인사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동시대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문적인 글쓰기처럼 보이지만 칼럼은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분명하게 표현’하거나 ‘조금의 근거를 더 마련해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니 누구라도, 언제라도 쓸 수 있는 글쓰기입니다. 6주간 어울려서 쓰게 될 ‘생활 칼럼’은 쓸수록 소외되는 글쓰기와 달리 각자가 가꾸고 있는 ‘생활’을 바탕으로, 쓰면서 알게 되는 영역을 반갑게 맞이하고 소중하게 나눌 수 있는 모두의 글쓰기입니다. 2018. 3. 14.
그 장소에(서) 정확하게 부는 바람 작년 겨울 초입에 발매된 최고은의 새앨범 (블루보이, 2017)을 겨우내 웅크리고 들었습니다. 몇번을 들었는데도 들을 때마다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놀라운 에너지와 집중으로 숨소리 하나까지 음으로 응집하고자 하는 최고은의 음악적 진지함에 압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차를 마시는 것 외엔 음반을 들으며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었는데, 그건 진지하고 섬세한 사운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 홀로 좋아했고, 그래서 더 애틋했던 한 뮤지션이 ‘저 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뒷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이를 붙들 수 없었고 그렇다고 전처럼 똑같이 좋아할 수도 없었습니다. 좋아하되 그 좋아함을 모른척 지그시 내리누를 수 있을 때 곁의 사람을 동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2018. 2. 28.
부사(副詞)의 역사 한 때 제 몸으로 삶을 꾸려온 이들이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늙음’이라는 생애사적 주기 때문도, 육체를 무너뜨리는 ‘질병’ 때문도 아니다. 늙음과 질병은 많은 원인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누군가를 키우고 주변을 도우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 말 없는 ‘우두커니’가 되어버렸다. 김숨은 그런 사람들을 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들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그 자리에 붙박혀 있는지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을 하진 않는다. 질병(「간과 쓸개」)이나 유통기한이 다되었다는(「럭키슈퍼」) 간명한 설명 외엔 그들에 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별로 없다. 일 하는 사람에 관한 이력이 거의 제시되지 않는 걸 단지 소설적 설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두커니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별다른 설명 없이.. 2018. 2. 21.
아무도 고백하지 않는 밤의 장소 2018. 1. 31 1. ‘터 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라는 구절을 새삼스레 매만졌던 밤은 한 친구의 ‘집들이’ 초대를 받았던 날이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지만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한동안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저녁에 잊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이 의도 없이 주고 받았던 선물이 매만져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온기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터 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란 막연하게 편하다거나 언제라도 ‘고백’이 가능한 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차라리 편안함 속에서도 고백하지 않을 수 있는 관계에 가깝다. ‘터 놓는다’는 건 ‘터를 닦는 것’과 분리되지 않는다. ‘터 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는 친밀성으로 쌓아올린 폐쇄적인 커뮤.. 2018. 1. 31.
회복하는 글쓰기 Ⅰ단편 소설과 함께 비평 쓰기(마감) 강좌 소개 모두가 글을 쓰고자 하지만 막상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글쓰기를 지속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지요. ‘매일매일 성실하게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글쓰기의 핵심입니다. 글쓰기는 나조차 모르는 ‘나’를 탐색하고 탐구하는 효과적인 활동이기도 합니다. '시작의 문턱'에서 매번 넘어졌던 글쓰기도 함께 읽고 쓴다면 서로에게 바통을 건네주는 계주처럼 힘껏 달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쓰다가) 힘들면 그 자리에 멈춰서도 됩니다. 함께 읽고 쓰고 있는 동료가 이어서 달릴 것이 틀림없으니까요. 동시대의 한국 소설가들의 특색 있는 단편 소설을 읽고 각자의 글을 써서 나누고자 합니다. 일상적인 에세이부터 비평에 이르기까지 글의 내용과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고 6주 동안, .. 2018.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