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복하는 글쓰기43

용감한 연약함 어디서든 아기를 만나면 저절로 함박 미소를 띠게 된다. '너는 언제 저런 아이 낳고 살래'라는 생애사 평균 시간표가 한참 늦은 것에 대한 타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무조건적인 이 반응이 다행스럽다. 홀로 길을 걷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저절로 고양이 소리를 내게 된다. 야옹야옹. 말하기를 중단하고 다만 가엽고 반가운 마음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한번도 길고양이가 나를 향해 다가온 적 없지만 내가 흉내 낸 고양이 울음소리가 무척 다행스럽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정신을 차리고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어리석고 유치하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무방비 상태는 도리없이 반복된다. 생활 속에서 그 반복만큼 다행스러운 일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을 할 때도 나는 그렇게 무방비 상태가 된다. 바보.. 2019. 2. 24.
회복하는 글쓰기 : 다시 시작하는 생활의 장르 아무리 힘을 내어봐도 ‘어쩔 수 없는’ 세계에서 정처없이 흔들리고 흐트러지면서도 끝까지, 똑바로 걸어나가고자 했던 일본 전후(戰後) 여성들의 삶을 ‘고유한 세계’로 구축해나간 감독, 나루세 미키오. 결혼을 네 번이나 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한 여성이 보살폈던 가족의 모습을 담은 1952년작 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고 싶다. 3녀 1남의 남매 모두 아버지가 달랐던 이유는 혼자 힘만으론 자식들을 키워낼 수 없었던 전후의 궁핍한 환경 때문이었다. 막내 딸 기요코(다카미네 히데코)는 무능력한 오빠와 허영에 찬 언니들, 아둔하고 어리석게만 보이는 엄마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꾸리고자 버스 차장으로 일하며 독립한다. 며칠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미츠코(둘째 언니)의 소식을 묻기 위해 기요코의.. 2018. 10. 7.
중심을 이동 하는 운동 : 생활, 모임, 글쓰기 선물 받은 강좌 포스터를 마치 마패라도 되는 양 당당하게 쥐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한참을 올라도 숨이 차지 않으면 체력이 올라와 있다는 것이어서, 숨이 차면 숨이 차는 대로 운동이 되고 있다는 신호이니 어느 쪽이어도 만족스럽다. 다용도실엔 여름 내내 마실 수 있을 정도의 물이 쟁여져 있지만 오늘 같은 날은 무거운 생수 묶음을 사들고 퇴근하고 싶다.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어도 2리터 생수 6개 묶음과 쌀 만큼은 인터넷 쇼핑이나 배달을 이용하지 않는다. 택배 기사님들이나 배달하시는 분들의 노동 강도를 더하지 말자는 생각도 있지만 무엇보다 ‘필수품만큼은 내 손으로’라는 생활 슬로건을 나도 모르고 읊조리게 되었던 터라 미련해보이거나 궁색해보일 것을 알면서도 낑낑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곤 한다. 한달여만에 다시 재.. 2018. 6. 18.
[회복하는 글쓰기] Ⅲ. 단편영화와 함께 비평 쓰기 강좌소개 세번째 강좌에서는 단편영화를 함께 보고 글쓰기를 진행합니다. 너무 적은 영화가 너무 많은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는 형편 속에서, 작지만 반짝이는 한국 단편 영화와 함께 각자가 길어올릴 빛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 것입니다. 찰나의 순간에 (되)비치는 각자의 생활 이력을 동력삼아 글을 씁니다. '영화 일기'에서부터 '비평'에 이르기까지 단편영화 속의 이미지를 문장으로 옮겨 각자의 생활로 잇는 작업은 영화 속에 저마다의 고유한 서명(署名)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빠르게 지나가는 이미지를 문장으로 엮어올리는 글쓰기의 시간, 그 영화적 순간(cinematic moment)을 기대해봅니다. 올해 초부터 시작한 '연속기획강좌' [회복하는 글쓰기] 세번째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글쓰기 프로그램.. 2018. 6. 6.
투 트랙(two track)의 이정표 윤경화 님의 을 읽으며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로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임홍빈 옮김, 문학사상사, 2009)를 책장에서 찾아 옆에 펼쳐두었습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러닝 메이트(running mate)라는 두 요소가 경화 님의 글을 이끌고 있는 중요한 동력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달리고 있는 이에게만 잠시 찾아오는 어떤 정점의 순간과 달리는 동안 감응할 수 있는 동료라는 두 소요가 경화 님의 달리기가 ‘고독’과 ‘우정’ 사이를 교차하는 작업처럼 읽혔습니다. 혼자이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였으면 하는 바람이 달리기라는 세계 속에서 밀고 당기며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글에서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매년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triathlon 수.. 2018. 5. 13.
'회복하는 세계'를 비추는 등대 : 마을, 곳간, 대피소 1내 눈앞에 있는 가족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너머에 있는 마을에 이끌려 지낸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 때문일까? 가족은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가 된 것 마냥 대면과 응시로 마주해야 했던 순간들을 짐짓 모른 척해온 탓에 점점 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간다. 가족 앞에서 울지 못하고 텅 빈 집에서 손 쓸 수 없는 가족을 생각하며 홀로 운다. 내가 이끌리고 있는 마을이 가족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제 있었던 마을이 오늘은 없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몸을 움직일 뿐이다. 마을을 증명하고 있는 건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하나 밖에 없다. 육식동물을 피해 산허리까지 내려온 초식동물이 강 너머의 희미한 불빛을 보고 잠시 생의 의지를 붙들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살고자 한 마을엔 나약해.. 2018. 4. 16.
없는 것들 속에서 생겨나는 것 조금 힘 없이, 조금 투명해져서 낡고 쇠락한 주택들이 있던 곳은 어느새 모텔촌이 되어버렸지만 그 한 귀퉁이에 작은 카페가 마치 대피소처럼 간판도 없이 희미한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곳은 간판만 없었던 게 아니라 그 흔한 음악조차 없었다. 대신 믿을 수 없을만큼 작고 이쁜 고양이가 있었고, 다른 곳에서라면 들리지 않았을 법한 소리(음)들이 있었다. [회복하는 글쓰기] 2차 강좌는 음악이 없는 카페, ‘매일이 다르다’에서 시작되었다.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음악 없는 카페’를 여는 일은 불가능한 시도처럼 여겨지지만 어쩌면 한번도 찾아보려고 한적이 없었기에 그저 없었을 뿐 ‘음악이 없는 카페’는 그곳에 있었다. 음악이 없었기에 있을 수 있었던 소리들과 함께. 카페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크고 작은 소리들이.. 2018. 4. 2.
도움을 구하는 이가 먼저 돕는다(2) 한데서 부르는 이름 김윤아의 네번째 솔로 앨범 (2016)은 어딘지 알 수 없는 ‘한데’서 시작 한다. 가까운 곳에서 부는 바람, 아득한 곳의 물결, 저 멀리서 내려치는 번개 소리가 44초 동안 흐르면 누군가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노래는 시작된다. “너의 이름 노래가 되어서 / 가슴 안에 강처럼 흐르네 / 흐르는 그 강을 따라서 가면 너에게 닿을까 / 언젠가는 너에게 닿을까” 누군가를 잃은 이는 더 이상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 없는 적막은 그이가 곁에 없다는 현실을 무섭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너’의 이름이 노래가 되어 세상에 흐른다면 무거운 바위가 짓누르고 있는 너의 이름이 마음 속에 흘러들어와 내 안에서 강처럼 흐르지 않을까. 그 강을 따.. 2018. 3. 18.
<회복하는 글쓰기> Ⅱ. 삶을 가꾸는 '생활 칼럼' 쓰기(마감) 강좌소개 두번째 강좌에서는 함께 모여 자신만의 ‘칼럼’을 씁니다. 유명 인사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동시대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문적인 글쓰기처럼 보이지만 칼럼은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분명하게 표현’하거나 ‘조금의 근거를 더 마련해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니 누구라도, 언제라도 쓸 수 있는 글쓰기입니다. 6주간 어울려서 쓰게 될 ‘생활 칼럼’은 쓸수록 소외되는 글쓰기와 달리 각자가 가꾸고 있는 ‘생활’을 바탕으로, 쓰면서 알게 되는 영역을 반갑게 맞이하고 소중하게 나눌 수 있는 모두의 글쓰기입니다. 2018. 3. 14.
그 장소에(서) 정확하게 부는 바람 작년 겨울 초입에 발매된 최고은의 새앨범 (블루보이, 2017)을 겨우내 웅크리고 들었습니다. 몇번을 들었는데도 들을 때마다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놀라운 에너지와 집중으로 숨소리 하나까지 음으로 응집하고자 하는 최고은의 음악적 진지함에 압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차를 마시는 것 외엔 음반을 들으며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었는데, 그건 진지하고 섬세한 사운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 홀로 좋아했고, 그래서 더 애틋했던 한 뮤지션이 ‘저 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뒷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이를 붙들 수 없었고 그렇다고 전처럼 똑같이 좋아할 수도 없었습니다. 좋아하되 그 좋아함을 모른척 지그시 내리누를 수 있을 때 곁의 사람을 동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2018.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