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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145

삶-연구, 문학 밖에 서 있는 문학주의자, 거세된 남성성, 그리고 훌륭한 세션맨 : 090411 세미나 후기 2009/04/12 공부에 관해서는 혼자서 잘 하지 못하는 저는, 이번 세미나가 많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왜 혼자서는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내가 계획하고 있는 연구가 나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도 하구요, 그보다 ‘연구’의 당위를 제도권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닌, 내 삶을 설명하고 아울러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써의 당위로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론과 개념에 대한 이해와 적용은 라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때라야 더욱 정확하게 엄밀해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개념과 이론에 대해 흐지부지하거나 두루뭉술하다는 것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와 삶과의.. 2012. 12. 19.
아직 나누지 못한 희망 2012 / 10 / 13 *아렌트를 공부했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내게 이라는 공부 자리를 돌아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원이 끝의 자리에서만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아렌트-시독’을 정리하는 이 매듭의 시간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의욕을, 뜻을, 길을 내어주는 생산력을 발휘하길 고대하며 이 글을 쓴다. 특별히 유난스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내겐 새삼스러웠고 새로웠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과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모든 것이 배우고 익혀야할 것들 투성이었다. 은 매 순간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미처 배우지 못한 것과 차마 익히지 못한 것과 고스란히 대면(평가)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조금은 외롭게 어울려야 하는 이 공부.. 2012. 11. 4.
강사의 몸, 동무의 몸 2012 / 9 / 3 11시 수업이 폐강된지 모르고 텅빈 강의실에 방문. 공허함과 약간의 공포를 느끼다. 학과 조교로부터 불필요한 충고를 받고 몸이 무거워졌으나 10명으로 진행된 소규모 강의에서 다시 힘을 얻다. 오늘의 강의를 간단히 평가해본다. 오늘 강의는 학생들의 발표(타인소개)와 나의 개입의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발표의 취지와 자신의 경험을 얼마나 잘 살려 말하는가에 따라 평가의 기준을 나눌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몇명이 안되는 인원들과 소규모로 진행되는 강의 속의 발표에서 중요한 것은 취지를 잘 살린다 거나 경험의 층위에 있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저마다의 경험을 발표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 아울러 발표의 내용들이 특정한 패턴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 그것은 ‘평가’(.. 2012. 10. 31.
도서관의 아이들 아이들은 제 자리에 앉아 있질 못하고, 그렇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앉은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려 애쓴다.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해 소근소근, 그러나 그런 소근거림으론 도무지 만족이 안 되는지 쉼없이 소근거린다. 애쓴다. 펼쳐놓은 문제집은 몇 시간 동안 같은 페이지, 키득키득, 같은 웃음소리. 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렇게 논다. 도서관에서. 수영구 도서관 매점 옆엔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 같은 곳이 있다. 아이들은 거기서도 논다. 자갈을 던지며 놀기도 하고 하나의 핸드폰을 돌려가며 놀기도 한다. 열람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숨은 거칠고 귀밑머리와 뒷목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그리곤 다시 '앉은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소근거린다. 애쓰면 논다. 학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차마 다음 페이.. 2012. 10. 20.
메모와 상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메모'에 열중한다. 그만큼 소득이 없는 상념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메모는 언제 글이 되는가? 김영민이나 벤야민은 많은 메모를 남겼지만(남기고 있지만) 우리는 그 메모들을 '글'로 읽고 있다. 나는 무엇을 계획하고, 아니 무엇을 꿈꾸며 메모에 열중하는가? 상념이 많다는 것은 열중하고 있는 메모가 일상을 부지하기 위한 안간힘이거나 일상을 정당화하는 허영일 수 있음을 넌지시 가리키는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좀 더 깨어 있고 싶다. 좀 더 '옮아가고' 싶다. 한밤 중에 남긴 메모 한 자락 :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참을 수 있다." _아이작 디네센(한나 아렌트, 5장 中) 위의 한 문장은 '문학'이 품고 있는 규정할 수 없는 힘.. 2012. 9. 18.
이 사람(들)만 아니라면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손과 발을 움직여 그 생각에 형체를 부여하려 노력했으나 이기주의적 소비자들에 둘러싸여 있던 나는, 그들과 싸웠으나 결국 그들을 닮아갔고, 되먹혀버렸다, 라고 단호히 적을 수 없는 것은 내가 바로 이기주의적인 소비자가 아니었던가 하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모든 권위를 '형'틀이라 몰아세우며 오랜 시간 '꼴'값을 떨었던 것이다. 그 꼴값이 흘러든 곳은 당연하게도 '이 사람(들)만 아니라면'이라는 우매의 골방이었던 것! "내 논지의 골자는, 공동체 속의 상처는 주로 '꼴'들의 경합과 마찰 속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제대로 훈육받지 못한 꼴, 생각과 기분 속에 부동(浮動)하는 꼴, 단 한 차례도 생산적 권위를 만나 그 앞에 고개를 숙여.. 2012. 8. 3.
"하나의 세계" 여름에도 차는 뜨거운 것으로 마시고 차가운 물보다는 미적지근한 물을 마시게 된 습관은 어쪄면 내 집에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물론 나는 건강을 생각해서 미적지근한 물을 선호하고 돈을 내고 먹는 음식은 어쨌든 뜨거워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2000년대 소설의 아이콘인 박민규의 에도 '냉장고'가 나온다. '웅~ 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돌아가는 썩지 않는 세계'. 골방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났다고 했던 작가 박민규는 자신의 방에 처음으로 냉장고가 들어왔을 때의 감흥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터무니 없이 늦었지만 이제 나도 그 '부패가 없는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쉼없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을 저 냉장고의 세계가 내 집에 들어왔다. 그 기념으.. 2012. 7. 29.
초복과 다복 7월 18일, 다들 초복이라고 떠들어대며 닭이니, 개니 땀을 흘리며 육고기를 뜯었을 오늘, 잠깐 독서를 하고 약간 메모를 하며 오전을 흘려보내다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산모가 되어 누워 있는 내 누나를 보기 위해 나섰다. 처음으로 가본 산부인과에는 젊은 처자들로 넘쳐났고 나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가 마치 새끼를 낳은 어미처럼 누워 있는 내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산모가 누워 있는 방은 매우 더웠으며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다. 먼저 도착한 내 어머니와 나는 근 두달만에 만나는 참이라 반갑게, 예의 그러하듯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산모인 내 누나는 그게 섭섭했는지 우리 모자가 돌아가고 난 뒤 기어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왕따'니 뭐니 하는 말을 섞어가며 성토를 했나보다. 그 전화를 받기.. 2012. 7. 19.
김반 일리히 일기(3) 거지가 없다 보행자를 우선 시 하는 ‘X자 형 횡단보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별스럽게 일찍 개학한 한 대학에 강의를 하러 가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 보행자(달리 말해 걸을 수 있고 갈 곳이 있는 이)가 편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육교[다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에 관해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걸을 수 없고 갈 곳이 없는 이가 모두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육교[다리]’를 건너야 헸는데, 육교를 오른다는 것은[‘너머’로 건너간다는 것은] 그 위에서 걷지 못하는, 갈 곳이 없는 이들을 지나쳐[만나]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사실. 육교가 사라졌다. ‘거지’가 사라졌다. ‘거지’라는 단어를 서스름 없이 쓰는 나를 비난하겠지만 이제 ‘거.. 2012. 3. 5.
김반 일리히 일기(2) 반찬 생각 모처럼의 휴일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 건 단 하나의 문장도 읽거나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두칼국수를 먹기 위해 에 갔다. 한동안 손님이 없었는지 늘 김이 서려있는 창문이 깨끗했다. 0.5평도 안 되는 공간에 시어머니(추정)와 며느리가 (소리로 추정)을 보고 있었다. 후덕한 인상의 여주인(며느리)은 냉큼 일어나 국수를 삶는다. 그러나 하루의 첫번째 끼니인 내 앞에 도착한 칼국수는 완전히 익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저장해두었던 에 실렸던 가라타니 고진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칼국수가 익기를 기다렸다. 인터뷰는 싱거웠고, 칼국수는 좀처럼 익지 않았다. 단무지를 두 개째 먹다가 반찬이 없어지면 세계는 지금보다 조금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베트남이었는지 홍콩이었는지 중국이었는지 정확하게 기.. 2012.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