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는 생활163 곁의 조난자 2014. 9. 1 조난자를, 가라앉고 있는 이를 구조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거대한 화물선과 유조선은 조난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높고 거대한 그곳에서는 조난자가 보이(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난자를 발견하는 이는, 조난자를 구조하는 이는, 또 다른 조난자다. 인도양을 항해하던 한 남자가 선박 컨테이너 박스와 충돌해 조난 당한다. 예측불가능한 바다의 조건, 삶 속의 도사리고 있는 불가항력적인 재난. 한 남자가 바다 위에서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과정은 거의 모든 것을 수행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고무보트 또한 불에 타버린 뒤 가라앉는 (2013)의 마지막 시퀀스의 한 장면. 가라앉고 있는 이를 깨우는 하나의 불빛.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바다 위에서 그는 거의 모든 것을 했다... 2014. 9. 1. 곁이라는 대피소(1) 소금과 물 2014. 9. 1 소금과 물. 최소한의 것. 무력하고 절망적인 것. 그러나 무력함은 무력해진다는 것이 아니며 절망적인 것은 절망한다는 것이 아니다. 무력에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절망에 절망하기 않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을 가져다 주는 이. 곁에서 그 최소한 것을 먹었는지 물어봐주는 이. 그 무력한 물음을 반복하는 이. 곁에서 함께 견디는 이. 애달음. 마음이 타들어간다는 것, 마음이 닳아간다는 것, 그것은 동일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닮음이다. 애달음이라는 닮음. 그런 닳음. 혹여나 더 필요한 게 없는지, 소금과 물만 허용된 이에게 무용한 질문을, 무용한지 알면서도 성실히 반복하는 애달는 이. 그렇게 바깥으로, 삶의 자리로 정성을 다해 이끌어주는 이. 소금과 물. 곁의 사람. 곁이라는 대피소. 2014. 9. 1. 아름다운 것들 2014. 4. 18 아름다운 것들 _양희은 노래 / 방의경 작사 / 외국곡(1972) 꽃잎 끝에 달려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데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있나 비야 네가 알고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데로 가야할까 바람아 너는 알고있나 비야 네가 알고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함이 남겠네 바람아 너는 알고있나 비야 네가 알고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있나 비야 네가 알고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음 이들을 데려갈까 2014. 4. 19. 비평의 언덕(1)-산 옆에 언덕 만들기 2014. 2. 13 임권택x101 ; 정성일, 임권택을 새로 쓰다(http://www.kmdb.or.kr/column/lim101_list_view.asp?page=1&choice_seqno=24#none) 연속 기획 중 을 탐복하며 읽었다. 오랜 지기가 나누는 대화는 내내 빛이 났으며 이들은 그 빛을 임권택이라는 감독을 조명하는 데, 되비추는 데 아낌이 없다. 아낌없이 빛내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되비춘다는 것. 내게도 그렇게 아낌없이 조명하고픈 큰 산이 있는가,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는 동료가 있는가. 이 물음은 자문이 아니다. 그래서 반복할 수 있다. 기꺼이, 신명나게 반복하고 싶다. 1. 정성일과 허문영의 대화. 질문과 답변은 각자가 걸었던 길을 복기 하기보다 가보지 않았던 길로 들어설 수 있.. 2014. 2. 15. 한받(1) 대지 위의 심폐소생술 2014. 1. 6 ⓒ백두호(사진 출처 한받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vad.hahn) 추수가 끝난 논 바닥. 다시 벼가 자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척박한 땅 위에서 자립음악가 아니 민중음악가 한받(Vad Hahn)이 행하는 퍼포먼스는 대지의 가능성을 길어올리는 심폐소생술인 것만 같다. 조폭(마피아) 국가가 겁박하며 삶의 터전을 뿌리뽑고 그 자리에 송전탑이라는 좆대가리를 박으려고 할 때 대지 위에서 이(루)어지는 온몸의 퍼포먼스가 전류가 되어 사람들을 타고 흐르는 듯하다. '아직' 감전(감응)되지 않았더라도 '이미' 전류가 흐르고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이라도 하듯이. 흥얼대며 노래하고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는 것은 땅 아래에 흐르는 전류를 땅 위로 길어올리는 어울림의 노동과.. 2014. 1. 24. 편지들(2) 2013. 12. 14 "자네 편지를 받고 매우 감동했네. 한편으론 그 편지가 내게 슬픔을 더해 주었는데 자네가 내 편에 서지 않았다고 여긴 나의(이기적인) 의심 때문이라네. 이 인터뷰 기획은 일 년 전에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네. 항상 그렇듯이 내 자신이 계획적이지 못해 혼란상태가 결국 현실이 돼 버리고 말았네. ... 우리 둘이(일종의 '영화-자서전'이라 부를 수 있는) 이 기이한 기획을 실행할 수 있었으면 하네. 가능한 빨리." _세르쥬 다네가 그의 친구 세르쥬 투비아나에게 보낸 편지. 세르쥬 다네(정락길 옮김),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 이모션 북스, 2012, 12쪽. 2014. 1. 22 편지라는 조난부호. 이행불가능한 약속. 오래된 미래라는 주소. 짐작하지 않.. 2014. 1. 22. 편지들(3) 2014. 1. 1 네 편지(인사)에 대해 답장을 쓴다. 나는 이 인사(편지)가 네 인사(편지)에 대한 응답임을, 또 답장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언제나 네가 먼저 말을 건네 주었으며 먼저 '선물'을 건냈기에 이 '답장'이라는 표지는 그런 너의 건넴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정'이야말로 '답장'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 먼저 받는 것, 그리고 그 건넴을 잘 돌려주는 것으로서의 우정. 너와의 시간 속에서 내가 익힌 것은 먼저 건네는 것보다 부족하나마 충실히 '답장'을 하는 것 정도인 것 같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앞으로도 얼마간은 그렇게 '충실한 답장'을 보내는 정도의 깜냥밖에는 발휘하지 못할 듯하다. 나는 네게 '답장' 밖에 보내지 못하는 게 미안하고, 그럼에도 충실한 답장.. 2014. 1. 1. 단골 가게(1)-우정의 증인 2013. 12. 1 막차 버스에서 동료가 건넨 껌을 야무지게 씹으며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휴지 한장을 조심스레 뜯어 그 껌을 곱게 싸서 버린 후 술 안주로 나왔던 귤 하나를 돌아가는 내게 건넨 또 다른 동료의 선물을 아껴 먹으며 함께 있었던 광복동의 '미뎅'이 우리들의 '단골 가게'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고작 4-5번정도 밖에 가지 않았던 곳을 '단골'이라 하기엔 민망함이 있지만 그곳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지금 우리를 있게 한 중요한 밑절미가 되었기에, 아울러 우리가 오늘 자연스레 그곳을 '다시' 찾았던 이유가 황홀하기까지 한 그곳에서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나는 광복동의 '미뎅'을 우리들의 단골 가게라 부르고 싶은 것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오뎅탕과 골뱅이 무침,... 그.. 2013. 12. 15. 우정의 목격자 2013. 12. 3 박광수의 데뷔작 (1988) 중 가장 흥겨운 시퀀스. 김수철의 베이스 슬래핑이 돋보이는 영화 음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이 영화 음악에서 한국 최초의 랩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칠수'와 '만수'가 2인용 자전거를 함께 타고 일터로 향하는 여정이 주는 감흥 때문일 것이다.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정겨운 모습이나 높은 빌딩을 등지고 자가용들의 질주 사이에도 주눅들지 않고 오르막 아스팔트를 힘차게 오르는 이 둘의 역동적인 호흡보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한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칠수와 만수가 함께 사는 동네의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그 아주머니가 기쁜 마음으로 이 둘이 일터로 나가는 장면을 눈으로 배웅하는 장면 말이다. 나는 그 포장마차 아주.. 2013. 12. 3. 마트라는 세계(1) 2013. 11. 18 국제시장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수세미를 발견했었다. 풍성한 거품과 함께 깨끗해지는 그릇들을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에 꼭 들었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가격을 치루고 돌아서는 순간, ‘마트에서 사면 더 싸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건너편 가게에서 본 기가 막히게 예쁜 컵들을 만지지도 못하고 가격만 눈으로 살피기를 반복하며 내가 ‘(대형) 마트의 세계'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트에 잘 가진 않지만 항상 물건의 가격을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더 싼 물건을 사기 위해 기억력과 주의력을 동원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알뜰한’ 습관들이 실은 세상의 사물(대상)들을 온통 가격표가 부착된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 설사 ‘마트’를 거부한다 해도 고작 슈퍼를.. 2013. 11. 30.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