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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145

비평의 쓸모(1) : 책날개 2013. 9. 6 누군가 내게 다른 이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곤 '안부'를 전해달라고 한다. 나는 '매'가 되거나 적어도 '비둘기'가 되어 '안부'를 전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 무사하다. 전해야할 '안부'의 목록을 손에 쥐고 잠깐 생각해본다. 누군가 내게 다른 이(것)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 '나의 안부'가 아닌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이(것)들에 대해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상태. 매개자가 된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이지만 해볼만한 일이다. 비평이 '매개 역할'에 충실해본적이 있었던가. 용접 하는 것과 매개하는 것의 거리. 아니 매개로서의 용접. 박완서의 연작을 읽다가 문득 보게 된 책날개의 소개를 옮겨둔다. 박완서는 삶의 곡절에서 겪은 아픔과 상처를 반드시 글로 쓰고야.. 2013. 9. 6.
마녀 없는 세상 2013. 8. 29 20년도 넘은 과거에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 마녀에게 쫓기고 있었기에 나는 달렸다. 계단을 2,30개를 쉽게 뛰어다니며 거의 날아다니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것이 비상의 쾌락과 겹쳐 있었다. 쫓기는 덕에 (거의) 날아다닐 수 있었다. 나를 쫓아온 마녀는 내 어머니였고 그녀는 기어이 동네 구멍가게까지 나를 쫓아왔다. 그리곤 구석에 앉아 식은 밥을 급하게 먹었다. 몸빼 바지를 입은 채였다. 1986년, 우리 가족은 연산7동의 생활을 끝내고 수정동 성북고개로 이사를 왔다. 그때 내 아버지는 이라크에 있었고, 내 어머니는 늘 몸빼 바지를 입고 눈만 뜨면 돈을 벌러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네모난 각에 든 껌이 새롭게 출시되었고 나는 집 아래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그 껌.. 2013. 8. 29.
자립을 허용하지 않는 세계 2013. 7. 18 2005년 대학원 시절 부산대 앞에서 종종 봤던 화장지 파는 아저씨를 요즘은 중앙동 지하도에서 본다. 나는 가끔 말도 안 되는 기억력과 눈썰미로 주위 사람들을 놀래가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분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2006년 경 부산대 앞의 어느 가게 주인과 말다툼을 하고 있는 모습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무시하지 말라'는 말을 하며 한쪽 어깨에 화장지 묶음을 매고 힘겹게 말싸움을 하고 있던 모습과 그를 마치 걸인을 취급하듯 대거리조차 받아주지 않던 가게 주인의 모습. 강단 있던 그 분이 이제는 중앙동 지하철역 계단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가끔 껌을 내어 놓고 팔기도 하고 가끔은 그냥 손만 내밀고 있기도 하지만 바닥에 꿇어 앉아 있는 .. 2013. 7. 18.
어떤 출사표 2013.6.18 Rainbow의 ‘rainbow eyes’를 듣다가 리치 블랙모어라는 걸출한 기타리스트의 행보에 대해 생각했다. 역사적인 밴드를 이끌었다는 그의 이력보다 괴팍하고 독단적인 성격 탓(?)에 멤버들과 겪었던 숫한 불화가 먼저 떠올랐다. 바로크 음악의 화성악을 기타에 도입한 그의 시도 덕에 잉위 맘스틴(YNGWIE MALMSTEEN)이라는 세기의 기타리스트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잉위 맘스틴 또한 숫한 멤버들을 교체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90년대 후반 열심히 읽었던 에 그의 밴드에 소속되어 있던 보컬과 그의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내게 잉위 맘스틴의 첫번째 이미지는 자신이 고용한 보컬에게 아내를 뺏기고(?) 홀로 남겨진 거실의 쇼파에 앉아 어마어.. 2013. 6. 18.
잠수왕 : 메인스트림(mainstream)의 감각 2013. 6. 12 물속에서 60초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째서 '우리'는 40초만에 고개를 쳐드는가? 59초가 될 때까지 '내가 잘 견딜 수 있을까' 두려워 하지 않고 기꺼이 실력 발휘를 하는 것, 바로 메인스트림(mainstream)의 감각. 기복이 없는 이들이 기록을 갱신한다.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이들이 대체로 더 잘 쓴다. 언젠가 어떤 집담회에서 경기에 ...뛰고 싶어도 스파링정도 밖에 할 수 없기에 '전적'이 쌓이지 않는 답답함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다. 실전 감각을 익히는 것의 중요함이란 곧 내가 서 있는 장(場)을 만지며 느끼는 '질감'과 다르지 않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우리를 너무 쉽게 고양시키고 너무 쉽게 지치게 만든다. 실전 감각이란 '룰(rule)'.. 2013. 6. 16.
장르라는 하나의 세계 2013. 6. 10 현수, 영광, 진희와 함께 18-1에서 나눈 잠깐의 담소 : (1973)를 보며 '장르적인 것'이란 세계에 대한 확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b급 상상력'이라는 말만으론 '장르적인 것'이 가리키는 세계를 담아내지 못한다. 장르적인 것 속에는 일관된 원칙들이 있다. 그 원칙들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그 원칙들만은 끝까지 지켜내는 것, '장르'는 바로 그 일관된 밀고 나감 속에서만 탄생할 수 있다. 장르란 어떤 세계에 대한 희망이며 의욕이다. 근래의 영화들에 '장르적인 것'은 넘쳐나지만 정작 '장르'가 실종해버린 것은 아마도 '웰메이드'라는 기이하고 모호한 괴물이 영화를 장악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웰메이드'의 세계. 누구나 욕망하지만 정작 그것에.. 2013. 6. 10.
나날이 선명해지는 삶 2013. 2. 16 며칠을 숨죽이고 지냈다. 숨죽이고 자다가 벌떡 깨어 보일러를 껐다. 보일러를 틀어놓고 잠들어버릴 땐 어김없이 1시간도 되지 않아 잠에서 깨어 보일러를 끄고서야 3~4시간정도를 내리 잘 수 있었다. 불침번처럼 정확하게 깨어 뜻한 바를 수행한 뒤 낭비 없이 잠들 수 있어야 한다. 메모를 하지 못한 날이 길어진다. 숨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숨통은 누군가를 만나야만 트인다. 그래야 또 조금 쓸 수 있다. 그간 애를 써가며 꾸역꾸역 홀로 썼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는 글(삶)이 아니다. 글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중요한 도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희망 하는 세계를 향해 던지는 노동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그런 글들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더 많은 만남을 가질 .. 2013. 2. 16.
말들의 향방 2012. 7. 9 '없는 길'을 가본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고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아울러 '가보는 것'과 '가는 것'의 명백한 차이에 대해서도 새삼 자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보는 자'는 아무 것도 믿지 않거나 모든 것을 순진하게 생각해버리는 실착을 동반자로 삼을 것이지만 '가는 자'에겐 오직 '함께 걷는 이들'을 '동반자'로 가지게 되겠지요. 참조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실은 그 '의구심의 동반자'야말로 지금 걷고 있는 길의 의미를 보증하는 '증인'일테지만 '그/녀'와 늘 친하게 지낼 수만은 없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힘든 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 '소규모'의 모임.. 2013. 1. 6.
이름 없는 자리 1. 어떤 관계 속에서는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것으로 통용되기도 하고 구체적인 것이 추상적인 것으로 타매 당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추상도 구체도 아닌 오롯이 관계에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꿔 말해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우선 ‘형식’에서 찾아야겠습니다. ‘의도’가 아닌 ‘수행’으로, ‘내 마음’의 ‘고백’이 아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에 내려 앉아 있는 ‘습관’과 ‘버릇’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관계’는 만리장성처럼 결코 하루 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입니다. 2. 아직 형성되지 않는 ‘관계’에 ‘습관’이 먼저 깃든다는 사실을 저는 모르지 않습니다. 말을 시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말을 시작하고 말을 거는 사람은 언제나 말을 걸지요. 그리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2013. 1. 5.
메모에 관하여(1) 쓰기를 일상으로 내려앉히는 연습을 해가면 갈수록 써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보다 선명하게 체감하게 된다. '쓰기'란 내 앞까지 오지 않는 것들, 왔다가 금새 사라지는 것들, 도착한지도 모르게 온 것들 쪽으로 나아가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아니 차라리 완고하게 지키고 있었던 '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나는 그 사실을 메모를 일상화하는 연습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청탁에 의해서만 글을 쓰는 습관은 마감날이 다 되어서야 쥐어짜듯이 글을 쓰는 악습으로 이어지고 그 습관의 패턴들이 가리키는 것은 제도의 단말기가 되어가는 내 글-몸이었던 것. 글-쓰기와 몸-쓰기가 다르지 않은 것임을 알아버린 이상 '메모'란 그저 단상을 기록하고 아이템을 보관하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메모'는 '글/몸-.. 2012.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