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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와 핫식스 1. _박카스 광고 _핫식스 광고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에너지 음료’의 소비율이 작년에 비해 12배 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롯데칠성의 ‘핫식스’나 동서식품에서 수입하는 ‘레드불’ 같은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는 단지 밤을 새워 공부를 할 때만 마시는 것이 아니다. 클럽에서 밤새 놀기 위해서도 이런 고카페인 에너지 음표를 즐겨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강남과 홍대 클럽에서는 에너지 음료 폭탄주도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양주와 에너지 음표를 1대 3비율로 섞어 한 잔에 7000~12000원에 판다고 한다). 공부를 할 때도 ‘핫식스’, 클럽에서 놀 때도 ‘핫식스’인 셈인데, 이는 원기를 회복하고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었던 ‘자양강장제’와 성격을 달리한다. ‘타우린’이 함유되어 있던 박카스(생생톤, 구.. 2012. 12. 4.
망설임 없이, 음악 없이(<로제타>, 다르덴 형제, 1999) 카메라는 ‘로제타’의 움직임을, 세세한 동선을, 머뭇거림 없는 몸짓을 좇는다. 직장에서 쫓겨나기 전부터 그녀의 몸은 혹여라도 쫓겨날까 바쁘기만 하다. 몸을 가만히 두는 법이 없다. 거침없는 그 몸짓은 자신의 몸에 대해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음을, 자신의 몸을 한번도 어루만져본 적이 없음을, 몸이란 그저 고통이 시작되는 장소 외엔 그 어떤 의미도 가져보지 않았음을 무심하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단 한번도 로제타를 먼저 기다리고 있지 못하는 카메라는 항상 로제타의 몸보다 늦다(바로 이 점이 다르덴 형제만의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로제타를 ‘무심히’ 담아냄으로써 그녀에게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카메라의 거친 움직임은 윤리적이기까지 하다) . 그러니 우리가 로제타만이 아는 지름길과 관리인의 눈.. 2012. 12. 4.
아직 나누지 못한 희망 2012 / 10 / 13 *아렌트를 공부했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내게 이라는 공부 자리를 돌아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원이 끝의 자리에서만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아렌트-시독’을 정리하는 이 매듭의 시간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의욕을, 뜻을, 길을 내어주는 생산력을 발휘하길 고대하며 이 글을 쓴다. 특별히 유난스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내겐 새삼스러웠고 새로웠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과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모든 것이 배우고 익혀야할 것들 투성이었다. 은 매 순간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미처 배우지 못한 것과 차마 익히지 못한 것과 고스란히 대면(평가)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조금은 외롭게 어울려야 하는 이 공부.. 2012. 11. 4.
강사의 몸, 동무의 몸 2012 / 9 / 3 11시 수업이 폐강된지 모르고 텅빈 강의실에 방문. 공허함과 약간의 공포를 느끼다. 학과 조교로부터 불필요한 충고를 받고 몸이 무거워졌으나 10명으로 진행된 소규모 강의에서 다시 힘을 얻다. 오늘의 강의를 간단히 평가해본다. 오늘 강의는 학생들의 발표(타인소개)와 나의 개입의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발표의 취지와 자신의 경험을 얼마나 잘 살려 말하는가에 따라 평가의 기준을 나눌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몇명이 안되는 인원들과 소규모로 진행되는 강의 속의 발표에서 중요한 것은 취지를 잘 살린다 거나 경험의 층위에 있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저마다의 경험을 발표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 아울러 발표의 내용들이 특정한 패턴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 그것은 ‘평가’(.. 2012. 10. 31.
도서관의 아이들 아이들은 제 자리에 앉아 있질 못하고, 그렇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앉은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려 애쓴다.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해 소근소근, 그러나 그런 소근거림으론 도무지 만족이 안 되는지 쉼없이 소근거린다. 애쓴다. 펼쳐놓은 문제집은 몇 시간 동안 같은 페이지, 키득키득, 같은 웃음소리. 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렇게 논다. 도서관에서. 수영구 도서관 매점 옆엔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 같은 곳이 있다. 아이들은 거기서도 논다. 자갈을 던지며 놀기도 하고 하나의 핸드폰을 돌려가며 놀기도 한다. 열람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숨은 거칠고 귀밑머리와 뒷목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그리곤 다시 '앉은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소근거린다. 애쓰면 논다. 학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차마 다음 페이.. 2012. 10. 20.
‘둥근' 말의 역사 ‘이곳이 불타고 있어요’ 분명 ‘그곳’은 불타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자신이 자신을 태워 자꾸만 위로 ‘비상’하려는 불꽃이 있는가 하면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단 한번도 꺼지지 않은 장작더미 아래의 ‘남은 불씨’로 내내 타는 불도 있었다. 불과 불이 서로 엉겨 붙어 이내 꺼져버리기도 했고 불을 끄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함께 타버리기도 했다. 때론 함께 타올랐고 때론 홀로 타들어갔다. 말이 있었고 쉼없이 그 말들을 주고 받는 응(應)하기가 행해졌으므로 그곳에서는 ‘먼지조차 타서 불길이 되곤’ 했다. 타오르는 말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았지만 그 말이 언제라도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재(灰)가 남았(었)다. 바닥에 깔려 있는 재 위로 다시 불을 찾기 위해 들어선 장작들.. 2012. 10. 18.
인용한다는 것 : "비상에서 보행으로"(1/계속) "철학 선생에게 들은 적이 있지만, 혹자는 내가 데카르트나 칸트에 대해 서술한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도, 논문에는 나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나의 사고와 닮은 외국인을 찾아서 인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책은 영어로 나와 있어서, 외국에서 작업할 경우에는 내 이름을 인용하는 편이 오히려 편할 것입니다. 일본인으로 서양의 것을 하면서 서양흉내만 낸다면 부끄럽지요. 그러나 연구대상은 외국인이라고 해도 결국 일본의 입장만 생각하고 있지요. 예나 지금이나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해왔는데,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_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2006), 182쪽 2012. 10. 5.
아직 정치가 아닌, 구조적인 쾌락 : 영화 <광해> 단상 2012 / 9 / 16 영화(추창민, 2012)를 보면서 도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쉬운 일이다. 왕이 된 광대를 보면서 ‘안철수’를 떠올리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다. 와 ‘안철수’를 연결시키는 것은 통찰의 성과라기보다 체계화되어 있는 구조적인 쾌락에 불과하다. ‘정치적인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다문화’나 ‘관용’이라는 용어만큼이나 오염된지 오래이고 이는 중도 좌파 따위의 리버럴한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이 ‘진보’와 ‘좌파’를 독과점하고 있는 사정과 다르지 않다. 영화 를 보며 ‘광대’가 행하는 ‘정치’에 감동한다는 것은 이명박 시대에 노무현을 그리워하고 문재인에게서 다시 희망을 발견함으로써 이명박에 열광했던 과거를 은폐하려는 것과 유사하다. 아니 차라리 이명박과 노무현.. 2012. 10. 5.
김기덕의 '식탁' (김기덕, 2011)이 김기덕에 '의한'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김기덕을 '위한' 영화인 것만은 아니다. 모놀로그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김기덕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출구없는 상황에서 어떤 '길'을 내려 애를 쓰고 있는데, 그것을 이라는 틀로 설명해볼 수 있겠다. 자신과의 대화는 자문자답의 형태를 띄고 있을 수밖에 없기에 고백을 반복하거나(자기 감정에 도취) 나르시시즘의 골짜기로 빠지기 쉬운 형식인 것은 분명하나 '카메라'의 개입으로 '나-너'라는 이자관계, 고백관계, 나르시시즘적 관계가 아닌 삼자 관계의 조건이 마련된다. 은 차라리 '자기와의 결별'을 지향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극중에서 김기덕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기에 '자신'을 '영화의 조건'으로.. 2012. 9. 20.
메모와 상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메모'에 열중한다. 그만큼 소득이 없는 상념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메모는 언제 글이 되는가? 김영민이나 벤야민은 많은 메모를 남겼지만(남기고 있지만) 우리는 그 메모들을 '글'로 읽고 있다. 나는 무엇을 계획하고, 아니 무엇을 꿈꾸며 메모에 열중하는가? 상념이 많다는 것은 열중하고 있는 메모가 일상을 부지하기 위한 안간힘이거나 일상을 정당화하는 허영일 수 있음을 넌지시 가리키는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좀 더 깨어 있고 싶다. 좀 더 '옮아가고' 싶다. 한밤 중에 남긴 메모 한 자락 :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참을 수 있다." _아이작 디네센(한나 아렌트, 5장 中) 위의 한 문장은 '문학'이 품고 있는 규정할 수 없는 힘.. 2012.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