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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비평론-공동체론이라는 보로메오 고리―김영민, <<비평의 숲과 동무공동체>>(한겨레출판사, 2011) 사람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친구[동무]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적들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 ―롤랑 바르트,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41쪽. [ ]는 인용자 삽입) ‘안다는 것’은 필시 ‘비용’을 요구한다. 그 비용이란 앎에 다가서기 위해 행한 ‘나의 노력’ 따위들만으로는 치를 수 없는 성질의 것인데, 그것의 요체는 바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좋든 나쁘든, 안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짓이다.”*). 이 돌이킬 수 없음은 비단 ‘앎’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휘의 문제와도, 생활양식의 문제와도, 공동체의 문제와도, ‘새로운 의욕’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김영민의 글을 ‘읽는다는 것’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것’에 가깝다.. 2011. 8. 27.
일요일 아침 자다깨어 범죄의 전말을 실토해야하는 취조실의 용의자처럼, 그럼에도 결코 '전말'을 진술할 수 없는, 그러나 '전말'을 구축할 수 없는 바로 그 사실이 그가 범인임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취조실의 구조' 속에서 떠올린 몇 마디의 생각, 골절된 생각, 떨어지지 않고 너덜거리는 생각, 아직 아무 것도 아닌, 그러나 거의 전부인 바로 그 생각, a. '삶의 반경'이란 선택지의 다양함이나 물리적인 공간의 확장 유무를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 '지속력'을 통한 '자기 확신'(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기 확신은 자기 확장과 이어진다)의 정도를 의미한다. 문제는 얼마나 더 집중할 수 있느냐이고 얼마나 더 많은 에너지를 투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늘 만나는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느.. 2011. 7. 24.
범일동(4) 범일동 공구상가(2008) 2011. 7. 20.
Lo-culture: 남은 어떤 것 어떤 이름을 만들고 그 름을 부르기 위해 오랜 시간 암중모색의 시간을 거치는 사람들과 수년간 함께 공부하며 징글맞게 부대끼며 생활하고 있다.* 나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들의 인내로, 그들의 호의로(lo), 나는 오늘도 무사하다. 그 무사의 부채를 언젠가는 갚을 수 있을 거란 오만한 생각보다는 '비평'의 방식으로 돌려주는 것이 온당한 주고 받음일 것이다. 내가 비평가일 수 있다면 바로 '그 호명'에 얼마나 결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일 테다. 낮은 자리에(low) 남아 있는 어떤 것(culture)이란 바로 스스로가 서 있는 지반을 살피고(그것은 곧 '관계 양식'을 돌아보는 것이다) 지금껏 자신이 해왔음에도 여전히 무엇을 하고 있는 알지 못하는 아둔한 '자아'와 대면하는 것이다. 그.. 2011. 7. 13.
떨림과 견딤 1. 긴 시간 비가 왔고, 나는 내내 빗소리를 들었다.* 구경하고, 듣기만 했다. 운동화는 젖지 않았다. 열어둔 창문으로 빗방울이 들어와 재본한 책들이 흠뻑젖어버렸다. 그쪽에 머리를 놓아두고 잤던 나 역시 젖었을 테지만 어쩐 일인지 깨지 못/않고 내내 잠만 잤다. 연구실에 습기가 가득하다는 사실을 조미김을 먹으면서 알았다. 밥을 먹기 시작한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방금 뜯은 김이 금새 눅어져버렸다. 내게 연구실이 덥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에어콘을 한번도 틀지 못한 이번 여름동안 덥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던 거 같다. 그게 내 문제다. 김이 놀라울정도로 빨리 눅어버리는 것을 보고 연구실에 습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 2. 무더위와 무관하게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시절이다. 내게 쏟아지는.. 2011. 7. 11.
어떤 편지, 그리고 어떤 보병 뒤늦게 받은 답장. 그러나 나는 그곳에 없었다. _시인 진은영으로부터 2011. 7. 5.
2011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그렇기 때문에 잊어서는 안 되는 날 1. 종일 연구실 문을 열어 두고 있었다. 에어콘이 고장나서가 아니라, 그저 문을 열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그렇지만 나는 내가 거주하는 곳의 문을 거의 열어두지 않는다. 며칠 간 연구실 문을 열어두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듯했고 마지 못해 아는 척 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했다. 요며칠 문을 열어두고 음악을 들으면서 논문 몇 편을 읽고, 한 시인이 보내준 시 몇편을 읽고, 보다가 둔 소설도 몇 장 읽었다(정확하게는 화장실에서 읽었다). 2년전에 발표했던 논문 한 편을 학술지에 투고하기 위해 손 보았고, 남은 시간은 대개 업무를 보는 데 보냈다. 종일 연구실 문을 열어 두었고, 자꾸만 그러고 싶었다. 2. 언젠가, 청탁 원고를 더 이상 받지 않고 시집 해설만 한달에 두 편,.. 2011. 7. 5.
리얼한 ‘쇼’와 리얼하지 않은 ‘전쟁’ ‘리얼리티 TV 쇼’의 미디어 장악은 객관적인 실제에 대한 신념의 상실을 반영하는 당대의 문화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반인과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엿봄으로써 즐거움을 제공하는 대중문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날 것 그대로를 여과 장치 없이 노출 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표면적인 특징과 달리 ‘리얼리티 TV 쇼’는 역설적으로 불확실한 사건을 제어하는 데 집중한다. ‘리얼리티 TV 쇼’는 ‘위험’에 대한 대중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지만 사건을 예측하고 제어함으로써 불안을 제거한다. 바꿔 말해 ‘리얼리티 TV 쇼’는 관객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 다만 위험이 주는 쾌락을 선사할 뿐이다. 올리비에 라작의 주장처럼 ‘리얼리티 TV 쇼’는 낯선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환원.. 2011. 7. 4.
범일동(3) 범일동(2008) 1 방문을 담벼락으로 삼고 산다. 애 패는 소리나 코고는 소리, 지지고 볶는 싸움질 소리가 기묘한 실내악을 이루며 새어나오기도 한다. 헝겊 하나로 간신히 중요한 데만 대충 가리고 있는 사람 같다. 샷시문과 샷시문을 잇대어 난 골목길. 하청의 하청을 받은 가내수공업과 들여놓지 못한 세간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간밤의 이불들이 걸어나와 이를 잡듯 눅눅한 습기를 톡, 톡, 터뜨리고 있다. 지난밤의 한숨과 근심까지를 끄집어내 까실까실하게 말려주고 있다. 2 간혹 구질구질한 방안을 정원으로 알고 꽃이 피면 골목길에 퍼뜩 내다놓을 줄도 안다. 삶이 막다른 골목길 아닌 적이 어디 있었던가, 자랑삼아 화분을 내다놓고 이웃사촌한 햇살과 바람을 불러오기도 한다. 입심 좋은 그 햇살과 바람, 집집마다 소문을.. 2011. 7. 3.
거울과 사진, 고백과 글쓰기 스무 살이 한참 지난 나이지만 ‘∼씨’보다 ‘∼양’이라 불리기를 원하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틈만 나면 거울을 보고 주변사람들이 진절머리를 칠정도로 열성을 다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고백’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거울 보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사람들 앞에 설 ‘자신감’은 없지만(‘∼씨’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그/녀와 마주본다는 것이다) ‘자신’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듯(‘∼양’이라는 호칭 주변에는 그래도 ‘난 소중해’라는 유아적인 정서가 둘러싸고 있다) 쉼없이 거울을 보고 고백을 하는 그 여성의 손에는 늘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영화 (이경미, 2008)는 볼이 빨개지는 콤플렉스를 가진 ‘양미숙’이라는 인물.. 2011.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