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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선명해지는 삶 2013. 2. 16 며칠을 숨죽이고 지냈다. 숨죽이고 자다가 벌떡 깨어 보일러를 껐다. 보일러를 틀어놓고 잠들어버릴 땐 어김없이 1시간도 되지 않아 잠에서 깨어 보일러를 끄고서야 3~4시간정도를 내리 잘 수 있었다. 불침번처럼 정확하게 깨어 뜻한 바를 수행한 뒤 낭비 없이 잠들 수 있어야 한다. 메모를 하지 못한 날이 길어진다. 숨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숨통은 누군가를 만나야만 트인다. 그래야 또 조금 쓸 수 있다. 그간 애를 써가며 꾸역꾸역 홀로 썼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는 글(삶)이 아니다. 글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중요한 도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희망 하는 세계를 향해 던지는 노동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그런 글들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더 많은 만남을 가질 .. 2013. 2. 16.
잡담의 급진화 : (1) 인용한다는 것 언젠가 철학자 김영민 선생님과의 환담 중에 선생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언젠가부터 신경을 써서 지켜 보았는데 김 선생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번도 나쁘게 말하는 경우가 없는 거 같아요.” 김영민 선생님은 나를 ‘이 선생’이라고 부르실 정도로 둘 사이엔 딱히 친분이라는 것이 형성되지 않은 관계이지만 이처럼 과분한 말씀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해 비판과 비난, 험담까지 아주 잘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께서 절 너무 좋게 보신 거 같습니다.” 맞다. 나겐 여전히 나이에 걸맞지 않는 ‘원한’이 남아 있어 다른 이들에게 그 원한을 투영하는 경우가 잦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기 때문이란 이유만큼 자신의 허물을 정당화하는 흉물스러운 말도 없으리라. 이어 이런 말을.. 2013. 1. 26.
‘그곳’의 유산과 미래의 생활정치 2012. 8. 13 1. 다시, 생활정치로 아마도 꿈을 꿨던 것 같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 지인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으며 지난 밤의 꿈을 헤집어 봤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누운 상태로 전화를 받다가 더 편한 자세를 찾아 이리저리 꼼지락거려본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러다 별안간 허리를 곧추세워 바른 자세로 앉는다. 20분 간 통화에‘만’ 집중해본다. 멀티태스킹이 문명의 진보가 아니라 외려 퇴화에 가깝다고 한 말에(한병철) ‘응’한 것이라기보다 어떻게 해도 무관한 일상적인 행위에 나름의 형식을 부여하고 그 행위를 통해 작은 의미를 조형해보기 위해서이다. 무용한 원칙을 세워 그것을 근기 있게 해보는 것이야말로 자본제적 체계 속에서 나름의 버릇과 습관을 벼려가는, 생활정치의 수행방식.. 2013. 1. 21.
‘말’과 ‘행위’로 짜는 “천 하루의 퀼트” : 작은 공동체에 관하여 한 철학자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는 이 강연문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연구 주제 및 대상을 ‘연구’라는 영역에 가둬두지 않고 매번 삶의 현장을 불러내는 태도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의 말’과 ‘현실의 말’, ‘연구의 말’과 ‘현장의 말’은 분명 하나의 언어 체계 아래에 있는 것이겠지만 이 말들은 서로 교통/교환되지 못하고 각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영역을 강고히 하며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언어체계 아래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교통/교환되지 않으니 서로에겐 차라리 외국어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겝니다. ‘이방의 말’을 듣는 것이 ‘이방의 말’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회통이나 소통이라는 .. 2013. 1. 15.
말들의 향방 2012. 7. 9 '없는 길'을 가본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고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아울러 '가보는 것'과 '가는 것'의 명백한 차이에 대해서도 새삼 자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보는 자'는 아무 것도 믿지 않거나 모든 것을 순진하게 생각해버리는 실착을 동반자로 삼을 것이지만 '가는 자'에겐 오직 '함께 걷는 이들'을 '동반자'로 가지게 되겠지요. 참조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실은 그 '의구심의 동반자'야말로 지금 걷고 있는 길의 의미를 보증하는 '증인'일테지만 '그/녀'와 늘 친하게 지낼 수만은 없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힘든 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 '소규모'의 모임.. 2013. 1. 6.
이름 없는 자리 1. 어떤 관계 속에서는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것으로 통용되기도 하고 구체적인 것이 추상적인 것으로 타매 당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추상도 구체도 아닌 오롯이 관계에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꿔 말해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우선 ‘형식’에서 찾아야겠습니다. ‘의도’가 아닌 ‘수행’으로, ‘내 마음’의 ‘고백’이 아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에 내려 앉아 있는 ‘습관’과 ‘버릇’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관계’는 만리장성처럼 결코 하루 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입니다. 2. 아직 형성되지 않는 ‘관계’에 ‘습관’이 먼저 깃든다는 사실을 저는 모르지 않습니다. 말을 시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말을 시작하고 말을 거는 사람은 언제나 말을 걸지요. 그리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2013. 1. 5.
무한한 하나 : 노동자들의 문서고 1. 용접한다는 것 내 아버지는 용접공이었다. 결혼을 한 이듬해 고향이었던 강원도 삼척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다 어깨 너머로 배운 용접일로 한 시절을 보냈다. 당연히 용접 자격증 따위는 없었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 팀을 꾸려 언제, 어디라도 불러만 주면 달려갔다. 야무지고 기술이 좋다는 입소문 덕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새벽에도, 휴일에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일거리가 생기면 달려 나가 용접을 했다. 식사 시간을 뚝 떼어내고, 잠자리를 뚝 떼어내서 철골들을 이어붙이고 무수한 구멍과 빈틈들을 때웠다. 그렇게 떼어낸 삶을 밑천으로 세간을 꾸렸다. 살림은 밖에서도 훤히 다 보일정도로 말갰고 삶 또한 단 한 번의 우회 없이 직립의 방향으로, 이렇다 할 감춤이 없었다. 다만 점.. 2012. 12. 24.
메모에 관하여(1) 쓰기를 일상으로 내려앉히는 연습을 해가면 갈수록 써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보다 선명하게 체감하게 된다. '쓰기'란 내 앞까지 오지 않는 것들, 왔다가 금새 사라지는 것들, 도착한지도 모르게 온 것들 쪽으로 나아가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아니 차라리 완고하게 지키고 있었던 '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나는 그 사실을 메모를 일상화하는 연습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청탁에 의해서만 글을 쓰는 습관은 마감날이 다 되어서야 쥐어짜듯이 글을 쓰는 악습으로 이어지고 그 습관의 패턴들이 가리키는 것은 제도의 단말기가 되어가는 내 글-몸이었던 것. 글-쓰기와 몸-쓰기가 다르지 않은 것임을 알아버린 이상 '메모'란 그저 단상을 기록하고 아이템을 보관하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메모'는 '글/몸-.. 2012. 12. 19.
삶-연구, 문학 밖에 서 있는 문학주의자, 거세된 남성성, 그리고 훌륭한 세션맨 : 090411 세미나 후기 2009/04/12 공부에 관해서는 혼자서 잘 하지 못하는 저는, 이번 세미나가 많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왜 혼자서는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내가 계획하고 있는 연구가 나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도 하구요, 그보다 ‘연구’의 당위를 제도권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닌, 내 삶을 설명하고 아울러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써의 당위로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론과 개념에 대한 이해와 적용은 라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때라야 더욱 정확하게 엄밀해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개념과 이론에 대해 흐지부지하거나 두루뭉술하다는 것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와 삶과의.. 2012. 12. 19.
박카스와 핫식스 1. _박카스 광고 _핫식스 광고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에너지 음료’의 소비율이 작년에 비해 12배 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롯데칠성의 ‘핫식스’나 동서식품에서 수입하는 ‘레드불’ 같은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는 단지 밤을 새워 공부를 할 때만 마시는 것이 아니다. 클럽에서 밤새 놀기 위해서도 이런 고카페인 에너지 음표를 즐겨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강남과 홍대 클럽에서는 에너지 음료 폭탄주도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양주와 에너지 음표를 1대 3비율로 섞어 한 잔에 7000~12000원에 판다고 한다). 공부를 할 때도 ‘핫식스’, 클럽에서 놀 때도 ‘핫식스’인 셈인데, 이는 원기를 회복하고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었던 ‘자양강장제’와 성격을 달리한다. ‘타우린’이 함유되어 있던 박카스(생생톤, 구.. 2012.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