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는 볼 수 없음428

삼척(1) 2013. 9. 18.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장호리 2013. 9. 20.
‘사이’의 동력(학) 1. 또 다시 검은 구름이 몰려와 한바탕 비를 뿌린다. 얼마나 내리고 또 언제 그칠 것인지 이미 데이터가 나와 있지만 설사 비가 그치지 않는다 해도 놀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측가능한 시스템에 익숙해질수록 외려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무덤덤해지기 때문이다. 아니 이 말은 다음과 같이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을 믿는다. 수많은 데이터는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사태들을 보조할 뿐이다. 오직 보이는 것만을 믿는다. 그러니 긴 장마로 붕괴되는 것은 ‘둑방’만이 아니다. 세계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믿음, 또 믿음에 대한 믿음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실패’가 없는 세계. 서둘러 종말과 파국이라는 말로 핏대를 세우기 전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의 짝말이 무엇.. 2013. 9. 18.
별 수 없기에 경이로운, 어떤 힘들 밤이 오래된 마을의 가르마를 타 보이고 있다 청파동의 밤, 열에 둘은 가로등 열에 여덟은 창문이다 빛을 쐬면서 열흘에 이틀은 아프고 팔 일은 앓았다 두 번쯤 울고 여덟 번쯤 누울 자리를 봐두었다 열에 둘은 잔정이 남아 있었다 또 내가 청파동에서 독거(獨居)니 온실이니 근황이니 했던 말들은 열에 여덟이 거짓이었다 이곳에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당신이 보고 있을 내 모습이 보인다 새실새실 웃다가도 괜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둘 다시 당신을 생각해 웃다가 여전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여덟이었다 남은 청파동 사람들이 막을 떠나가고 있었다 이제 열에 둘은 폐가고 열에 여덟은 폐허였다 -박준, 「2 : 8-청파동 2」 전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 2013. 9. 16.
음악가라는 동료(1) 2013. 9. 15 오전 10시, 부산역에서 음악가 김일두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통화 중이었다. 반갑게 다가가 말없이 그의 어깨를 감쌌다. 천천히 나를 돌아보고는 전화를 급히 끊고 열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3분간 대화를 했다. 그리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헛개차'를 따서 내게 먼저 건냈다(바로 이게 김일두 식 인사라는 것을 그를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은 안다. 내가 먼저 알아봐도 언...제나 그가 더 환대한다). 어제 부산대 앞 축제에서도 나는 그를 먼저 알아보고 어깨를 감싸는 것으로 4개월간의 인사를 대신했다.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건네는 것은 별 볼일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늘 내가 먼저 그를 알아보고 다가가 인사를 건네야.. 2013. 9. 15.
잘못 들어온 햇살 2013. 9. 14 오후 5시 침실로 잘못 들어온 잠깐의 햇살을 우두커니 짐짓 모른척 흘겨보다 약속 시간에 늦어버렸다. 2013. 9. 14.
도둑 고양이와 함께 살기, 곰팡이에게 안부를 묻기 2013. 9. 13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쓰레기종량제 봉투 속에 있던 닭뼈를 고양이가 파헤친 것이다. 다 튿어져 널부러져 있는 종량제 봉투 주위로 씹다가만 닭뼈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나는 잠깐 그 잔해들을 내려다볼 뿐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여러번 씹히고 씹혀 앙상하게 남은 닭뼈와 옆구리가 터진 종량제 봉투를 어쩌지 못했다. 새벽,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며 주변에 흩어져 있던 닭뼈의 잔해들을 다소 신경질적인 몸놀림으로 차버렸다. 닭뼈들은 흩어졌지만 잠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관문 앞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일구기는 어렵지만 잠깐만 손을 놓아도 속수무책으로 마모되고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썩어버리는... 살림들. 쓸고 닦고, 뚝딱뚝딱.. 2013. 9. 13.
"Make a better place" 2013. 9. 11 *지리한 원고를 마감하고 일주일 정도 노느라 하루 4시간정도 밖에 자지 못했다. 어제는 아름다운 친구들과 새벽 4시까지 통음했고 집으로 돌아와 8시까지 또 이것 저것 구경하고 펼쳐보고 만져보고 끄적이다 잠들었다. 변함없이 나는 12시에 깨었지만 다른 날과 달리 다시 잤다. 일어나니 마이클 잭슨 앨범이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cd가 파손되어 있지 않은가? 내일 반품할 때까지 오늘 하루는 들을 수 있겠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make a better place'라고 간명하고 정확하게 비평한 동료의 말을 떠올리며 음악을 듣는다.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거하게) 밥을 지어야겠다. **요즘은 '글' 구상보다 '말' 구상(?)에 더 열심을 부리고 있다. 지난 월요일 수업을 마친 뒤 몸이.. 2013. 9. 11.
그 웃음 소리 2013. 9. 9 지난 날 하루에 두 탕, 세 탕까지 일을 하셨던 내 어머니는 자투리 시간엔 동네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셨다. 어떤 날은 잃으시고 또 어떤 날은 따시기도 하면서 거의 매일 고스톱을 치셨는데, 훗날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날은 당일 일당을 모두 잃은 날도 있었다고 하길래 아깝지 않았냐고 물으니 내겐 백원짜리 하나도 허투루 주지 않으신 분이 아무렇지 않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 뭘 그러냐'며 무척이나 쿨하게 말씀 하시지 않은가. 그러니까 새벽 3시에 일어나 신문 배급소에 나가 신문 광고지를 넣고 6시에 돌아와 도시락 4개를 싸고 아침상을 차린 뒤 잠깐 주무신 후 11시에 식당으로 나가 3시까지 식당일을 하시고 다른 일이 없으면 저녁이 늦도록 고스톱을 치시는 것이다. .. 2013. 9. 10.
일상의 균형과 신비 2013. 9. 7 이사온지 1년 2개월이 넘어가는 내가 사는 집의 화장실 수도꼭지는 아무리 힘을 주어 잠궈도 한 두방울의 수돗물이 뚝뚝 떨어진다. 수돗물이 떨어지는 자리에 세숫대야를 받쳐두면 잠들지 못하는 새벽 '똑똑'하고 떨어지는 수돗물 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릴 때가 있다.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보면 어느새 아침이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보면 세숫대야엔 물이 넘치지 않을 정도로 가득 모여 있다. 나는 그 물로 세수를 한다. 신기한 것은 외출을 하고 돌아온 저녁 혹은 밤에도 세숫대야엔 물이 넘치지 않을 만큼 모여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물로 다시 세안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은 기이한 균형과 신비로운 반복으로 쌓여 간다. 어쩌면 내가 세숫대야에 물이 넘치기 전에 화장실문을 여.. 2013. 9. 7.
비평의 쓸모(1) : 책날개 2013. 9. 6 누군가 내게 다른 이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곤 '안부'를 전해달라고 한다. 나는 '매'가 되거나 적어도 '비둘기'가 되어 '안부'를 전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 무사하다. 전해야할 '안부'의 목록을 손에 쥐고 잠깐 생각해본다. 누군가 내게 다른 이(것)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 '나의 안부'가 아닌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이(것)들에 대해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상태. 매개자가 된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이지만 해볼만한 일이다. 비평이 '매개 역할'에 충실해본적이 있었던가. 용접 하는 것과 매개하는 것의 거리. 아니 매개로서의 용접. 박완서의 연작을 읽다가 문득 보게 된 책날개의 소개를 옮겨둔다. 박완서는 삶의 곡절에서 겪은 아픔과 상처를 반드시 글로 쓰고야.. 2013.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