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는 볼 수 없음431 약속이 키운 장소, 약속을 키우는 마을 2014. 2. 10 며칠 간 붙들고 있던 후기. 늘 그렇지만 써야 할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붙들고 있을 때 각종 아이디어들이 놀라울정도로 왕성하게 샘솟는다. 바로 그것이 글을 쓰는 숨겨진 이유 중 하나이며, 바로 그것이 굳이 마감을 하지 않/못하고 오랫동안 글을 붙들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써야 할 후기들이 산적해 있다. 누구도 청탁하지 않고 부탁하지 않은 글을 홀로 마감한다는 것. 그 막연함보다 그렇게 쓴 글들이 대개는 이상하고 가끔씩만 읽을만 하다는 것. '약속'이라는 명사와 '약속 하기'라는 타동사를 오가며 '든든'이라는 부사에 손을 뻗어보았다.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듯이, 마을이 키운 '마을 작가'의 탄생을 축하하고 또 기념하는 마음으로 한 문단 한 문단 써내려 갔다. 다.. 2014. 2. 10. 강원도 주문진 2014. 2. 1 2014. 2. 4. 익숙해서 가난한 발걸음-<우묵배미의 사랑>의 민공례가 홀로 찾았던 비닐하우스 2014. 1. 22 배일도와 민공례의 새살림이 '새댁'(유혜리는 극중 이름이 없다)에게 발각된 후 이 둘은 불가피하게 이별을 하게 된다. 배일도는 그의 가정으로 돌아가지만 민공례는 '차마'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살아간다. 몇 계절이 지난 후 민공례로부터 전화를 받은 배일도는 기쁜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나가고 민공례는 여전히 아름답고 다소곳한 자세로 배일도를 맞는다. 이 둘은 마치 어제처럼 익숙한 암호를 주고받으며 그간의 시간을 단숨에 극복하는 듯보인다. 새벽, 잠에서 깨자마자 떠오른 기획안을 정리해 카페에 올리다 배일도가 식탁 아래 민공례의 발을 지긋이 밟으며 애교와 익숙한 신호를 동시에 보내고 있는 클로즈업 쇼트가 새삼 사무치게 떠올랐다. 흰 양말에 랜드로버 구두를 신고 있는 배일도와 슬리퍼.. 2014. 2. 1. 한받(1) 대지 위의 심폐소생술 2014. 1. 6 ⓒ백두호(사진 출처 한받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vad.hahn) 추수가 끝난 논 바닥. 다시 벼가 자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척박한 땅 위에서 자립음악가 아니 민중음악가 한받(Vad Hahn)이 행하는 퍼포먼스는 대지의 가능성을 길어올리는 심폐소생술인 것만 같다. 조폭(마피아) 국가가 겁박하며 삶의 터전을 뿌리뽑고 그 자리에 송전탑이라는 좆대가리를 박으려고 할 때 대지 위에서 이(루)어지는 온몸의 퍼포먼스가 전류가 되어 사람들을 타고 흐르는 듯하다. '아직' 감전(감응)되지 않았더라도 '이미' 전류가 흐르고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이라도 하듯이. 흥얼대며 노래하고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는 것은 땅 아래에 흐르는 전류를 땅 위로 길어올리는 어울림의 노동과.. 2014. 1. 24. 편지들(2) 2013. 12. 14 "자네 편지를 받고 매우 감동했네. 한편으론 그 편지가 내게 슬픔을 더해 주었는데 자네가 내 편에 서지 않았다고 여긴 나의(이기적인) 의심 때문이라네. 이 인터뷰 기획은 일 년 전에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네. 항상 그렇듯이 내 자신이 계획적이지 못해 혼란상태가 결국 현실이 돼 버리고 말았네. ... 우리 둘이(일종의 '영화-자서전'이라 부를 수 있는) 이 기이한 기획을 실행할 수 있었으면 하네. 가능한 빨리." _세르쥬 다네가 그의 친구 세르쥬 투비아나에게 보낸 편지. 세르쥬 다네(정락길 옮김),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 이모션 북스, 2012, 12쪽. 2014. 1. 22 편지라는 조난부호. 이행불가능한 약속. 오래된 미래라는 주소. 짐작하지 않.. 2014. 1. 22. 편지들(3) 2014. 1. 1 네 편지(인사)에 대해 답장을 쓴다. 나는 이 인사(편지)가 네 인사(편지)에 대한 응답임을, 또 답장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언제나 네가 먼저 말을 건네 주었으며 먼저 '선물'을 건냈기에 이 '답장'이라는 표지는 그런 너의 건넴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정'이야말로 '답장'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 먼저 받는 것, 그리고 그 건넴을 잘 돌려주는 것으로서의 우정. 너와의 시간 속에서 내가 익힌 것은 먼저 건네는 것보다 부족하나마 충실히 '답장'을 하는 것 정도인 것 같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앞으로도 얼마간은 그렇게 '충실한 답장'을 보내는 정도의 깜냥밖에는 발휘하지 못할 듯하다. 나는 네게 '답장' 밖에 보내지 못하는 게 미안하고, 그럼에도 충실한 답장.. 2014. 1. 1. 단골 가게(1)-우정의 증인 2013. 12. 1 막차 버스에서 동료가 건넨 껌을 야무지게 씹으며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휴지 한장을 조심스레 뜯어 그 껌을 곱게 싸서 버린 후 술 안주로 나왔던 귤 하나를 돌아가는 내게 건넨 또 다른 동료의 선물을 아껴 먹으며 함께 있었던 광복동의 '미뎅'이 우리들의 '단골 가게'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고작 4-5번정도 밖에 가지 않았던 곳을 '단골'이라 하기엔 민망함이 있지만 그곳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지금 우리를 있게 한 중요한 밑절미가 되었기에, 아울러 우리가 오늘 자연스레 그곳을 '다시' 찾았던 이유가 황홀하기까지 한 그곳에서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나는 광복동의 '미뎅'을 우리들의 단골 가게라 부르고 싶은 것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오뎅탕과 골뱅이 무침,... 그.. 2013. 12. 15. 우정의 목격자 2013. 12. 3 박광수의 데뷔작 (1988) 중 가장 흥겨운 시퀀스. 김수철의 베이스 슬래핑이 돋보이는 영화 음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이 영화 음악에서 한국 최초의 랩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칠수'와 '만수'가 2인용 자전거를 함께 타고 일터로 향하는 여정이 주는 감흥 때문일 것이다. 2인용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정겨운 모습이나 높은 빌딩을 등지고 자가용들의 질주 사이에도 주눅들지 않고 오르막 아스팔트를 힘차게 오르는 이 둘의 역동적인 호흡보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한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칠수와 만수가 함께 사는 동네의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그 아주머니가 기쁜 마음으로 이 둘이 일터로 나가는 장면을 눈으로 배웅하는 장면 말이다. 나는 그 포장마차 아주.. 2013. 12. 3. 마트라는 세계(1) 2013. 11. 18 국제시장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수세미를 발견했었다. 풍성한 거품과 함께 깨끗해지는 그릇들을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에 꼭 들었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가격을 치루고 돌아서는 순간, ‘마트에서 사면 더 싸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건너편 가게에서 본 기가 막히게 예쁜 컵들을 만지지도 못하고 가격만 눈으로 살피기를 반복하며 내가 ‘(대형) 마트의 세계'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트에 잘 가진 않지만 항상 물건의 가격을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더 싼 물건을 사기 위해 기억력과 주의력을 동원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알뜰한’ 습관들이 실은 세상의 사물(대상)들을 온통 가격표가 부착된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 설사 ‘마트’를 거부한다 해도 고작 슈퍼를.. 2013. 11. 30. 담포포(1) 전문가의 혀와 연구자의 정좌 2013. 11. 22 나는 한 노인과 외출을 했다. 노인은 라면 연구만 40년. 지금부터 내게 라면 먹는 법을 가르쳐 줄 참이다. “선생님, 국물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면이 먼저입니까?”... “우선 그릇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형태를 감상하고 향기를 음미해 보십시오. 국물 위에는 기름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죽순이 빛나고, 해초가 천천히 가라앉고 양파가 표면 위를 부유하죠. 편육 세 조각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죠. 핵심 역할을 담당하지만 겸손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우선 라면의 표면을 어루만지고 젓가락 끝으로 살짝 만져주세요.” “왜요?” “라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겁니다. 그리고 고기를 살짝 찔러주세요.” “고기 먼저 먹는 겁니까?” “아니 만지기만 하세요. 그리고 고기를 들어 내어 국물에 .. 2013. 11. 26.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