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의 곳간52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는 기적―윤성희, 『베개를 베다』(문학동네, 2016) 1 윤성희의 『베개를 베다』를 읽다가 어째서인지 드문드문 언급되는 음식을 옮겨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곁에 노트를 펴두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의 이름을 적어가며 소설을 읽었다. 노트에 옮겨적으면서 기이할정도로 음식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그렇게 빈번하게 나오는 음식이 그토록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졌다. 단 한번도 ‘맛있게 먹었다’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의 목록을 이토록 강박적으로 등장시키는 이유는 뭘까. 소설을 읽어갈수록 음식의 목록은 많아졌지만 소설에서의 역할과 의미는 더 옅어졌다. 그렇고 그런 음식들, 먹어도 그만이고 먹지 않아도 그만인 음식들, 너무 맵거나 식어버려서 ‘맛’을 제대로 느낄 수도 없는 음식들, 먹다남은 것이거.. 2016. 10. 18.
<문학의 곳간> 2016년 2분기-"글을 쓰며 사는 삶" 2016년 2분기(4회) 문학의 곳간 × 김비 : (글을 쓰며) 사는 삶 9월 10일 김연수, (문학동네, 2014) 10월 1일 윤성희, (문학동네, 2016) 11월 5일 리베카 솔닛, (반비, 2016) 12월 3일 ‘( ) 하며 사는 삶’에 관한 자작 에세이 장소 : 중앙동 ‘히요방’(중구 대청로 131번 길 8-1) 시간 : 첫째주 토요일 오후 3시(9월만 둘째주 토요일!) 참가비 : 회당 1만원 문의 : 010-9610-1624 betweenscene@hanmail.net 주최 및 주관 : 생활예술모임 2016. 8. 23.
기도하는 사람들-김훈, 『흑산』(학고재, 2011) 1. 앞질러 엎드려 절하는 겁박하며 숨통을 죄는 폭력 앞에서 오늘의 사람들은 말을 잃는다. 무릎 꿇리고 굴복당해 말을 빼앗긴 이들은 차마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그 곁에 앞질러 낮은 자리로 내려가 엎드려 고하는 이들이 있다. 꺼질 것을 알지만 매일 매일 말없이 촛불을 켜는 이,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이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쉬 말하지 않으며 모르는 것을 쉽게 묻지도 않는다. 기도란 절대자 앞에 엎드려 세속의 욕망을 희구하는 제의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촛불 하나를 키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일이다. 각자의 기도로 지켜낸 작은 염원이 암흑의 침묵을 지나갈 수 있게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된다. 나약하고 연약한 순간 없이는 가닿을 수 없는 장소도 있다. 낮아지는 일, 비상하는 자아의 욕망을 나직이.. 2015. 12. 23.
안녕하세요―김연희, 『작은 시집』(꾸뽀몸모, 2015) 2015. 4. 25 안녕하세요.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이별을 예감'하지만 그럼에도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건넬 때 그것은 당신이 지금 내 앞에 ‘있음’을 알리는 말이 된다. 그 사실을 알리면서 당신의 ‘있음’을 내가 기꺼이 증명하겠다는 말이 된다. '당신이 여기에 있음을 내가 알아요, 그것을 알고 있는 나 또한 이곳에 함께 존재함을 당신께서 목격자가 되어 말해주시겠지요.' 상대에게 안부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녕하세요’는 얼핏 그 무엇도 지시 하지 않는 텅 빈 말처럼 보이지만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바로 그 존재의 있음에 대한 알림의 말이다. 공평하며 문턱이 없고, 맑다. 우리 삶 속에 이런 말이 있다는 것, 우리가 자주 이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우리.. 2015. 5. 15.
보이지 않는 환대 : 백년의 걸음, 백년의 기억, 백년의 이야기―W. G. 제발트 『현기증. 감정들』(배수아 옮김, 문학동네, 2014) 2015. 3. 21 1 별강문을 쓸 때 작가나 작품 분석에 집중하는 것보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릴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써둔 문장을 읽고, 밑줄을 치면서 나는 동시에 그 누군가를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문장을 읽고 밑줄을 친다는 것이 어쩌면 그 누군가를 떠올리기 위한 예비 행동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그간 썼던 별강문의 어떤 구절과 어떤 문장은 곁에 있는 그 친구가 없었다면 쓸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익명의 그 친구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별강문 한 귀퉁이를 채워가게 되는 것이다. 그 문장이 당사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없었으면 쓰지 못했을 문장은 별강문 한 귀퉁이에 자리 .. 2015. 4. 2.
<문학의 곳간> 2015년 상반기 ------ 2015년 상반기 안내 ---------- 2월 부터 6월까지 에서 함께 읽을 책 리스트가 나왔습니다. 이번 은 한국 소설, 해외 소설, 시, 인문학 등 조금 더 다양한 범위의 책들을 선정해보았습니다. 겨울의 끝에서 초여름까지 한달에 한번, 문학 작품을 함께 읽고 나눌 수 있는 자리이니, 함께 곳간을 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올해에도 이어지는 을 통해 각자가 보살펴온 이력을 잘 나눈다면 사귐 속에서 서로의 자리를 비추는 작은 등불을 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시: 2월 28일~ 6월 27일,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3월만 셋째주 토요일입니다) -시간: 오후 3시 -장소: 미정 (추후 공지할 예정입니다) 참여비: 5회 신청시 4만원, 1회 1만원 입금처: 101-2013-2486-06 (생활.. 2015. 2. 16.
대피소에서, 곁의 사람에게-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 2005) 2014. 11. 29 1. 편지의 알짬은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내밀한 내용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 건네고 싶다는 마음의 촉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 수신자라는 단 한 사람이야말로 편지의 알짬인지도 모릅니다. 편지에 ‘무엇을 쓸 것인가’나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는 부차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보다 편지를 쓴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러니 세상의 모든 편지엔 누군가에게 가닿고 싶다은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담는다니요. 그것이 가능할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편지를 쓸 때 멋지고 화려한 문장보다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문장을 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마음을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 2015. 1. 28.
고장난 기계-황정은, 『백의 그림자』(민음사, 2010) 2014. 9. 12 새벽에 깨어 한참을 누워 있었음에도 여전히 새벽이었다. 일어나 미루어 두었던 별강문을 정리하기 위해 일년 반동안 매달 1회씩 진행하며 쓴 10편의 별강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A4 44장, 원고지 274매. 매회 10~15명의 동료들이 문학의 곳간을 함께 열어주었기에 그에 응답하고자 쓴 글들을 다시 매만졌다. 내가 쓴 글이었지만 홀로 쓴 글이 아니었기에 생경한 문장들이 많았다. 뒤늦게 도착하는 문장들, 시간들. 아니 어쩌면 제 시간에 도착하는 편지들. 특이한 것은 최근에 쓴 별강문일수록 생경함이 더 크다는 점이었다. 올 봄, 에 초대되었던 한 작가가 사석에서, 에서 선물 받았던 별강문을 지금도 종종 읽어본다는 말을 전해주었을 때는 그렇게 다시 읽고 기억해주어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었는데,.. 2014. 9. 12.
시를 함께 읽는다는 것-환대와 초대 2014. 4. 5 사람들로 붐비는 고속버스터미널로 누군가를 마중나가는 것. 저는 ‘시를 읽는 것’이 꼭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인’을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웃는 것,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으로서의 시 읽기. 누군가를 먼저 알아본다는 것을 ‘최소한의 환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시 읽기를 통해 ‘문학적 환대’라는 자리로 어렵사리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문학적 환대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환한 미소로 손을 내미는 것은 상대를 향해 불을 비추는 것입니다. 아니 상대가 비추고 있는 불빛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과 내가 서 있는 장소를 함께 환하게 불 밝히는 일. 어쩌면 ‘내가 당신을 먼저 알아봤다는 것’은 ‘환.. 2014. 4. 5.
그 웃음 소리 2013. 9. 9 지난 날 하루에 두 탕, 세 탕까지 일을 하셨던 내 어머니는 자투리 시간엔 동네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셨다. 어떤 날은 잃으시고 또 어떤 날은 따시기도 하면서 거의 매일 고스톱을 치셨는데, 훗날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날은 당일 일당을 모두 잃은 날도 있었다고 하길래 아깝지 않았냐고 물으니 내겐 백원짜리 하나도 허투루 주지 않으신 분이 아무렇지 않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 뭘 그러냐'며 무척이나 쿨하게 말씀 하시지 않은가. 그러니까 새벽 3시에 일어나 신문 배급소에 나가 신문 광고지를 넣고 6시에 돌아와 도시락 4개를 싸고 아침상을 차린 뒤 잠깐 주무신 후 11시에 식당으로 나가 3시까지 식당일을 하시고 다른 일이 없으면 저녁이 늦도록 고스톱을 치시는 것이다. .. 2013.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