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는 볼 수 없음428 보이지 않는 환대 : 백년의 걸음, 백년의 기억, 백년의 이야기―W. G. 제발트 『현기증. 감정들』(배수아 옮김, 문학동네, 2014) 2015. 3. 21 1 별강문을 쓸 때 작가나 작품 분석에 집중하는 것보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릴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써둔 문장을 읽고, 밑줄을 치면서 나는 동시에 그 누군가를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문장을 읽고 밑줄을 친다는 것이 어쩌면 그 누군가를 떠올리기 위한 예비 행동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그간 썼던 별강문의 어떤 구절과 어떤 문장은 곁에 있는 그 친구가 없었다면 쓸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익명의 그 친구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별강문 한 귀퉁이를 채워가게 되는 것이다. 그 문장이 당사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없었으면 쓰지 못했을 문장은 별강문 한 귀퉁이에 자리 .. 2015. 4. 2. 오솔길 2015. 4. 1 송도 암남공원 2015. 2015. 4. 1. "포동포동한 손"―엄마 시집(1) 2015. 3. 30 포동포동한 손 보드랍고 흰 손 뜨거운 밥알에 데인 손 우리 아기 손 우리 아기들의 손 내가 만져본 아기들의 손 ―김연희, 「손」 전문, 『엄마시집』, 꾸뽀몸모, 2013 포동포동한 손은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천천히 조용히 그러나 틀림없이 내리는 눈송이처럼 포동포동한 손은, 만져도 만져도 포동포동하다는 촉감이 사라지지 않고 포동포동함이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그 손은 축복인듯 슬픔인듯 보드랍고 하아얀 것이어서 내내 잡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 있음(生)의 의지를 피력하는 손, 그러나 삶의 의지를 피력하는 순간 그 손은 세상의 혹독함과 마주해야 한다. 그리하여 포동포동한 손은, 보드랍고 흰 손은, 붉은 손이 된다. 뜨거운 손이 된다. 그 붉고 뜨거운 손이, 생의 의.. 2015. 3. 31. "배부른 꿈" 2015. 3. 29 "우리가 사는 이게 모두 꿈인지 몰라요. 그러나 꿈이더라도 깨우지는 마세요. 나는 지금 좋은 꿈을 꾸고 있어요. 여러분 모두 나와 같이 좋은 꿈을 꾸어봅시다." ―박영호, 『다석전기-류영모와 그의 시대』, 교양인, 2012, 81쪽.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지 112년이 되고 개신교가 들어온지 22년이 된 1905년 봄부터 류영모는 서울 연동교회 예배에 참석한다. 그 시절 선교사 게일의 설교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는 류영모의 기록을 권나무의 음악을 들으며 읽었다. "난 좋은 꿈을 꾸었네요"라는 소절이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향한 처연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그런 꿈을 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배부른 꿈'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놀라운 표현인.. 2015. 3. 29. 영혼에 이르는 길 2015. 3. 28 좋은 글에 이끌렸던 시간이 짧았던 것,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살이) 사이의 낙차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전에 글을 의심하게 되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바로 그 글을 쓰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쓰는 글과 나(삶) 사이의 낙차를 들여다보면서 글을 맹신하는 것이 무척 위험한 일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말에 이끌리게 되었던 것은 사람의 말에는 사람살이(생활)가 묻어 있었고 온기가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음성'과 '표정', '몸짓'이 말을 타고 내게 전해질 때 그간 볼 수 없었고 알 수 없었던 세계가 '물질성'을 띄고 나타나는 듯 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말을 타고 나타날 수도 있음을, 그런 희망을 품었다. 사람의 말이란 어쩌면 뜻이 있는 소식을 전하는 복음(福音.. 2015. 3. 28. 내밀함의 풍경 2015. 3. 23 아침 7시, 드릴 소리에 놀라 잠 깨다. 무언가를 뚫고 부수는 소리가 집 전체를 흔드는 것만 같다. 이 소음을 '리모델링'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니 몇 달 꾹 참고 넘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난 데 없이 '멱살을 잡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음이 아니다. 무언가를 짓고 부수는 방식의 탐욕스러움 속에 사람살이의 가치과 존중 또한 무너지고 뚫리는 중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간 옮겨다녔던 집들이 예외 없이 공사의 참사를 겪었음을 알게 된다. 쇠락한 지역을 전전하며 나름 알뜰하게 생활의 터전을 잡아갔으나 그 알뜰함이라는 것이 건물주와 자본가들에겐 누가 낚아채기 전에 서둘러 독식해야 하는 눈 먼 보따리처럼 보였나보다. 내가 살았던 집들이 죄다 재개발.. 2015. 3. 23. 다정함의 물결 무늬 2015. 3. 19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 2015. 3. 19. 용접하는 '현장' 2015. 3. 18 “예수의 민중의 현장과 복음서를 쓰고 있는 사람의 현장이 유리가 안 됐다는 거지요. 즉 마르코는 지금 자기자신의 얘기를 울면서 쓰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동시에 예수의 얘기다 그거예요. 그 현장이 아니었으면 예수에 대해서 그렇게 못썼을 거다 그거지요. 마르코 자신의 현장이 예수의 현장을 똑바로 보게했던 거죠. 우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오늘의 현장이 텍스트의 그 현장을 보게 만든 거죠. 이것 없으면 저것이 안 보이는 거죠.”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1990, 72쪽. '텍스트(성서)와 컨텍스트(현장)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안병무의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대목. "우리가 역사 속에 속해 있으면 역사를 객관화할 수 없듯이, 내가 나의 컨텍스트에서 .. 2015. 3. 18. 입구가 좁은 깡통, 된장국, 호마이카상 2015. 3. 17 봄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곳이 아닐까, 이곳은. 고개를 숙이고 열심이 무언가를 적고 있는 사람과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해 연신 두리번 거리는 사람과 학교에 있을 수도 없고 학원으로 갈 수도 없어 이곳으로 온 애띤 사람들을 스쳐지나며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봄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곳일 수도 있겠구나, 이곳 시립도서관은. 봄볕 아래에 내어 말린 성긴 의욕은 투명해져가고 나는 아무런 조바심 없이 글을 읽고 메모를 한다. 서고를 뒤지다 유물처럼 감춰져 있는 친구들의 글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나 같이 단호한 표정으로 단단한 문장을 쓰고 있지만 천천히 읽어가니 말랑한 감정의 과육이 흥건하다. 그 마음들을 애써 감추고 단호해져야만 했던 스무살, 단단해지고 싶었던 그 시절이 괜히 서글프다. .. 2015. 3. 17. 백년을 걷는 걸음 2015. 3. 16 1. 제발트의 문장이 빽빽한 숲에 들어선 것처럼 걸음을 옮기는 게 쉽지 않다면 그것은 그 숲이 누구가의 기억 속에 들어서는 입구이기 때문이다.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배수아 옮김, 문학동네, 2014)을 읽는다는 것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 시간 속에 들어가 시간의 더께로 뒤덮여 있는 기억의 숲을 천천히 걷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걸음은 잠들어 있는 기억을 깨우는 발자국 소리며, 닫힌 동굴의 문을 여는 주문이다. 2.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K 박사가 베네치아에서 나흘을 머물렀다는 것, 그런 다음 산타루치아 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로나를 향해 떠났다는 사실뿐이다."―142쪽. 은 1913년의 카프카 행적을 뒤쫓고 있는 글이다. 제발트는 카프카가 남긴 기록들을 징검돌.. 2015. 3. 17. 이전 1 ··· 24 25 26 27 28 29 30 ··· 43 다음